겸명호 지음
역사에서 한민족을 여러 차례 괴롭혔고, 한때는 이데올로기가 달라 적이거나 소원하거나 했지만 우리 역사에 영향을 많이 준 건 누가 뭐래도 중국이다. 역사 속의 중국과 공맹은 이미 박제와 같고 관광지와 북경올림픽 말고 20세기 중국에 대해 장제스, 마오쩌뚱, 저우언라이, 등소평, 후스, 루쉰, 옌안장정 이외엔 아는 바가 없다.
웹에서 어느 신문사의 기획기사를 보면서 김명호 교수님을 알게 됐고, 그분이 발로 뛰고, 귀로 담아둔 것을 책으로 펴냈다기에 구입한 것이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2, 3]이다. 중국인 이야기 1은 본문이 547쪽이며 2, 3권은 약 450쪽 내외로 분량이 만만치 않다.
일요일에 작심하고 읽었는데, 생생한 이야기를 옆에서 들려주는 것 같아 재미있다.
뒤표지에 소개된 이야기가 멋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9년 10월 1일 오후 3시, 중구공산당은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개국대전 의식을 거행했다. 이른 아침 타이완의 장제스 관저에는 개국대전 공습 명령을 하달해 달라는 공군사령관 저우즈러우의 전화가 빗발쳤다. 장제스는 출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좀 기다려라”가 회답이었다. 저우즈러우는 “출격이 지체되면 제시간에 목적지 도달이 불가능하다”며 재차 명령을 청했다. 그제야 몸을 벌떡 일으킨 장제스는 “임무를 취소하라”라고 단호히 말했다. 공산당에 패해 타이완으로 철수했지만 당시 국민당은 막강한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습계획도 장제스가 직접 지휘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장소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죽고 사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천안문과 자금성이었다. 장제스가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천안문은 절대로 공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오가 확신했기 때문에 천안문광장에 수많은 인파를 모아놓고 개국을 선포했다고 흔히들 말한다. 또 장제스가 출격 명령을 내렸다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는 것도 중론이다.”(아내에게 멋지지 않은가 하면서 보여 주었더니 사람 목숨이 중요한 거지 하면서 핀잔을 주기에 나와 생각이 다름을 알게 됐다.)
‘하나의 중국’엔 언제나 의견일치 -
(전략) 신속을 기하려면 국민당 해군과 미국 7함대가 장악한 타이완 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마오쩌둥은 증원부대에 통과 명령을 내렸다. 중국 해군 함정 4척이 타이완해협을 통과하려 한다는 전문을 접한 병중의 장제스는 “시사군도의 상황이 급박하다”며 즉각 결정을 내렸다. 그날 밤 중국군 동해함대 소속 군함 4척이 타이완해협을 통과했다. 국민당 군대는 포격은 커녕 탐조등까지 켜 군함들이 신속히 해협을 통과하도록 도왔다.
[중국인 이야기 1]에는 참새 소탕전의 추억,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속마음을 읽지 못했다, 정쟁을 하면서도 학문과 자유를 키운 시난연합대학, 두부와 혁명, 최고 권력자 장제스의 쟁우 후스, 영원한 자유주의자 레이전, 장춘차오를 감옥문에서 기다리던 원정, 중국 현대미술의 반역자, 예술은 사회와 인민의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화가들, 짜고 친 포격전, 아편과 혁명, 성경을 든 첩보의 영웅, 정보의 천재 리커눙, 댄서들의 난동, 강산을 사랑했지만 미인을 더 사랑한 사람 등 총 35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김명호 교수는 경상대, 건국대교수를 거쳐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있다. 그의 40년 가까운 중국연구를 이야기로 풀어놓은 것이다.
무지하게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