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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by 노충덕

중3, 야자 쉬는 시간, 친구 자전거를 빌려서 타는 법을 배우다 조회대에 부딪혀 넘어졌다.

빌린 자전거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누구 자전거였는지 기억에 없다.

형의 자전거를 타다가 부셔 놓고 모른 체 했다. 형도 알면서 혼내지 않았다.

오래 전 홍산중학교에서 모시던 장교감 선생님께서 운동하라고 새 자전거를 주셨는데, 가끔씩도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고교 동창생 신부장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가까운 직장이라는 것과 그의 딴딴해졌을 장딴지와 허벅지가 부럽다.


<책은 도끼다>를 읽고, 읽기를 미뤄둔 책을 꺼내 읽는다.

2009년 2월 7일에 받아 책꽂이에 내팽겨 두고 7년이 지나 읽는다.

저자 박웅현님의 글을 읽고 <자전거 여행>을 읽으니 허투루 읽을 수 없어 작심하며 정독해본다. 박웅현이 받은 느낌을 나도 받고 싶어서다. 가슴 졸이며 <남한산성>을 읽은 기억이 스친다.


김훈의 글은 사실에 기초한다. 작은 것에도 주목하고, 남다른 시선으로 깊고 넓게 관찰한다.

보통 사람들이 ‘자전거를 오래 타서 피곤하다’고 표현할 것을 김훈은 “기진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라고 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표현하는 것을 보자. “ 갈 때의 오르막이 놀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동백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 동백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 개별자로서 제작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목련이 피고 지는 모습을 “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목련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봄나물에 대한 관찰, “몸속으로 봄의 흙냄새가 자욱이 퍼지고 혈관을 따라가면서 마음의 응달에도 봄풀이 돋는 것 같았다.” 냉이와 달래를 비교한 묘사는 환상적이다.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 건더기와 인간은 삼각 치정 관계이다. 이 삼각은 어느 한쪽이 다른 두 쪽을 끌어안는 구도의치정이다. 그러므로 이 치정은 평화롭다.”


정자에 대한 묘사, “정자는 현실의 중압이 빠져나간 자유의 공간이다. 정자는 삶과 격절된 자리도 아니고 삶의 한복판도 아니다. 서로 말을 알아듣는 남자들끼리 모여서 시를 지으며 좀 노는 곳이다. 정자의 위치는 세상을 깔보지도 않고, 세상을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


대나무 숲에 대하여,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 안에 다 자라 버린다. 무기와 악기, 싸움과 안식이 모두 이 숲 속에 있다.”

“서해는 깊이 밀고 멀리 당긴다.” “공깃돌만 한 콩털게와 바늘 끝만 한 작은 새우들도 가슴에 갑옷을 입고 있다. 그 애처로운 갑옷은 아무런 적의나 방어의의지도 없이, 다만 본능의 머나먼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바다의 새들이 부리로 갯벌을 쑤셔서 게와 조개를 잡아 먹을 때, 그것들의 최후는 죽음이 아니라 보시이다.” 인간도 우주에서 보면 같은 처지이다.

도요새, “그것들은 고향이 없음으로 타향이 없다.”


안면도 소나무 숲에 대하여, “ 숲은 산이나 강이나 바다보다도 훨씬 더 사람 쪽으로 가깝다. 숲은 마을의 일부라야 마땅하고, 뒷담 너머가 숲이라야 마땅하다.” “숲은 그 숲에 가해진 정치적 치욕에 물들지 않는다.” “ 이 세상의 어떠한 숲도 초라하지 않다. 숲은 그 나무 사이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낯선 시간들의 순결로 신성하고, 현실을 부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불온하다. 유림의 숲은 불온하고, 유가적 가치와 질서로부터 소외되어 숲으로 모여든 무리로서의 산림은 더욱 불온하고, 소외된 무장 집단으로서의 녹림의 불온은 이미 작동하는 불온이다. 숲의 힘은 오래된 것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이어서, 숲 속에서 시간은 낡지 않고 시간은 병들지 않는다. 숲은 안식과 혁명을 모두 끌어안는 그 고요함으로서 신성하다.” “봄의 소나무 숲은 다른 활엽수림의 신록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들떠 있지도 않다. 봄의 소나무 숲은 겨울을 견뎌낸 그 완강한 푸르름으로 진중하고도 깊게 푸르다. 안면도이 소나무들에게는 안면송이라는 고유 명사가 있다.” “숲은 의사도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재활병원이고, 사람들은 이 병원의 영원한 환자인 셈이다.”


‘봄의 산은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서, 지나간 시간의 산이 아니다. 봄날, 모든 산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산이고 경험되지 않은 산이다.“

“비스듬한 각도로 멀고 깊게 비치는 동해의 아침 해는 산맥의 모든 계곡 구석구석에까지 닿은 것이어서 아침의 태백산맥에서는 숨을 곳이 없는데, ”

“죽음이, 날이 저물면 밤이 되는 것 같은 순리임을 아는 데도 세월이 필요한 모양이다.”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이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한다. 선암사 화장실은 이 지유의 낙원인 것이다.”

기억하고 싶어 밑줄 친 분량이 너무 많다. 그래서 더 좋다.


<자전거 여행>은 2000년 8월 초판 1쇄가 나왔고, 독자가 읽은 것은 2007년 12월 12일 한정특별판 1쇄, 본문 319쪽 분량이다. 2016년에는 새로운 표지로 판매중이다.


P.S. 자전거 여행 2016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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