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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by 노충덕


몸은 더워졌다 식기를 반복한다. 콧물도 생긴다. 약 기운이 힘을 쓰면 나은듯하다. 다시 식은땀이 나면 약 기운이 다됐다는 신호다. 6주밖에 시간이 없는데 30권은 더 읽어야 100권을 채운다. 쉽지 않지만 포기하기도 이르다.


김훈이 뜨거운 여름과 겨울 고갯길에서 페달을 밟던 힘처럼, 주말과 일요일만이라도 감기 몸살 정도는 잊고 폐문독서 하련다. 감기가 6주를 버텨낼 리가 없다. 아무나 간서치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자전거 여행 2>를 내 집에 들여 놓은 때는 2009년 2월 초순이다. <자전거 여행>과 함께 와 책꽂이에 올려두고 잊고 있었다. 박웅현님이 이 책들을 먼저 읽게 해주었던 거다. <자전거 여행 2>는 <자전거 여행>보다 4년 후에 세상에 나온다. <자전거 여행2>를 읽으며 <자전거 여행>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중간쯤에 있다는 느낌이다. 1, 2권을 내놓은 시간차 때문인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의 영향 탓인지, 김훈이나 유홍준이나 독자들이 읽기 쉽게 글을 잘 쓰기에 고수가 되면 비슷해지는 것인지를 아둔한 독자로서 알 수 없으나 느낌은 버릴 수 없다.


<자전거 여행>에서처럼 관찰한 것을 언어로 묘사하는 김훈의 매력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밑줄 친 것을 옮겨 담아두려 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와 다른 까닭이고 독자가 감동하는 이유다.

<자전거 여행 2>는 김훈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지역을 22개로 묶는다.

조강, 김포평야, 전류리 포구, 고양 일산 신도시, 중부전선, 파주는 한강하류 강안과 임진강을 타던 자전거가 김훈의 입과 언어로 생산한 결과물이다. 남양만 갯벌, 장덕 수로, 선재도 갯벌, 염전, 경기만 등대는 경기도 서해안 갯바람 속에서 김훈이 관찰하고 공부한 기록이다. 광릉 숲, 가평 산골 마을, 남한산성 기행, 여주 고달사, 양수리, 광주 얼굴 박물관, 모란 시장, 수원화성, 안성 돌미륵은 개별성으로 다르고 경기도 일원이라는 지역성, 역사 일군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으로 같다.

독자가 눈여겨보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밑줄 치며 읽어야 했던, 그래서 김훈 글의 독특한 표현을 닮고 싶은 욕심과 의도를 숨길 수 없다. 숨길 필요도 없다.


“자전거는 노을에 젖고 바람에 젖는다.” 젖는다는 표현은 습이나 물기만이 원인이나 시작이지 않다는 거다. 분위기나 상황에 취하는 것도 젖는 거다. 마른 상태로 있어야 온전한 것이 젖으면 가치를 잃어버리는 젖음이 아니다. 푹 빠져 버리는 거다.


“풍경은 사물로서 무의미하다. 풍경은 인문이 아니라 자연이다. 풍경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풍경은 아름답거나 추악하지 않다. 풍경은 쓸쓸하거나 화사하지 않다. 풍경은 자유도 아니고 억압도 아니다. 풍경은 인간을 향해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이 문단은 인간이 풍경에서 느낀다는 말을 하기 위한 준비 상태다. 한 장을 넘기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풍경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인간이 풍경을 향해 끝없이 말을 걸고 있다. 그러므로 풍경과 언어의 관계는 영원한 짝사랑이고, 언어의 사랑은 짝사랑에서 완성되는데 그렇게 완성된 사랑은 끝끝내 불완전한 사랑이다. 언어의 사랑은 불완전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풍경을 서슴없이 이윤으로 바꾸는 인간의 개발은 풍경에 대한 배신이고, 이기적인 나르시스인 거다.


“오른 쪽으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진행감은 거의 없다.” 김포평야를 달리는 자전거에서 느끼는 저자의 마음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자란 독자는 자동차로 호남평야를 달리 때 방향감각이 무뎌져 당황한다. 복잡한 업무를 처리할 때 해결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도 같은 거다. 오리무중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겪는 혼돈은 결국 방향성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같다.

김포평야의 농수로를 보며 저자는 “인간에게 절실한 것들, 인간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한다.

러브호텔의 성업과 주부들의 분노에 “어느 한 지역의 주민 전체가 다른 지역 주민보다도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저열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시대도 마찬가지여서, 한 시대는 다른 시대보다 도덕적으로 우열하거나 저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독자는 요즘 뉴스를 보면서 저열한 방향으로 한국 정치가 가고 있고 저항하는 촛불이 있다는 점에서 시대성에 관해서는 김훈의 생각과 다르다. 촛불이 우월하다고 믿어야 한국 사회에 희망이 있는 것 아닌가.


고양 일산 신도시를 표현한 “10만 년 된 수평과 30년 된 수직사이에서”는 시공간을 언어로 담아낸 거다. 10만 년, 30년은 시간을 수평과 수직은 공간을 담아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신도시를 수직으로 표현한 거다.

“지도는 시계(視界) 너머의 산하를 개념화 하고, 육안으로 더듬는 산하는 늘 시계 안에 갇힌다.” 지리 전공자인 독자에게 더없이 기쁨을 준 문장이다.

“갯벌의 법률적 지위는 공유수면이다. 공동체 것이 아니라 국가의 독점소유라는 뜻이다.”

“먼 쪽은 저녁의 어스름 속으로 풀어지면서 언어의 추격권을 벗어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마산포는 “김춘추가 한반도에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러 중국으로 갈 때 이 포구에서 떠났다. 임오군란 때는 명성황후의 요청을 받은 청나라 군대가 이 포구로 상륙하였다.”

“소인국의 해안 풍경으로 백미러를 흘러나간다.”


“갯벌에는 시간이 쌓이지 않고 시간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갯벌은 역사를 이루지만, 갯벌은 신생하는 순결한 시간의 힘으로 역사를 넘어선다.” “갈매기가 바지락을 쪼아 먹고 인간이 바지락을 주워 먹을 때 인간과 갈매기는 먹이사슬 곳에서 조개 이하의 하층 주조에 대해서 동격이다.” “어촌계의 바지락 수확은 1인이 아니라 한 가구가 생산과 분배의 단위다. 그래서 노동력이 왕성한 젊은이들이나 친척이 많은 집에서 어장을 휩쓸어갈 수 없고 근력 없는 할머니들도 잡은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 그러니 “이 마을의 생산과 분배의 법칙은 인문적이다.”

“갯벌의 생태는 끝없이 질퍽거리고 뒤섞이는 불안정성이다. 이 불안정이 갯벌의 안정성이다.” 갯벌에 관한 글을 보며, 권혁재 교수님의 ‘자연 지리학’강의와 책이 떠오른다.


시간을 기르는 밭으로 정한 염전 글은 염전을 3개 문단으로 기술하는데 이보다 더 멋지게 염전을 해석하고 글로 표현할 사람은 더 없을 듯하다. “염전의 생산방식은 기다림과 졸여짐이다.” “염부들은 기다림의 구조 안으로 물을 끌어와서 펼쳐놓고, 그 기다림을 바닥을 훑어서 시간의 앙금을 거둔다. (중략) 고무래로 밀고 곰배로 긁고 삽으로 퍼 담는다. 염전 노동의 이 단순성은 소금이 인간의 노동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저절로 빚어지는 결정체이기 때문일 터인데, 이 노동의 단순성은 소금의 원초성과 닮아 있다. 염부의 노동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전개되고, 소금은 먹이의 재료를 시간의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서 거기에 시간의 맛과 무늬를 새겨 넣는다. 젓갈과 김치의 맛은 소금이 매개하는 시간의 맛이다.”


‘모른다’를 표현하는 작가의 방식이 다음과 같다. “새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고, 새들의 몸을 경험할 수 없는 나는 늘 책 속에 씌여진 말들이 멀고 희미했다”거나, “나는 상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어도 믿지 못하는 아둔함을 저승까지 가지고 갈 모양이다.” 또, “나는 몸이 입증하는 것들을 논리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 있을 만큼 명석하지 못하다.”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만 가야 할 목표를 가늠해서 뱃머리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이것이 항해술의 핵심부이다.” “내가 나의 위치를 외계와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나는 동서남북의 절대적 방위를 알았다하더라도 어느 쪽을 향해 몇 도의 각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나의 진행 방향으로 삼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나의 위치를 알아야 나침반의 방향을 따라서 진로를 설정할 수가 있고 지도 속에서 나 진신을 편입 시킬 수가 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거니와 현재 내 인생이 통과하는 불확실성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카톡에 “Paradise is Where I am”이라 적어두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뇌까리는 것이다.


인간관계론의 핵심일 수 있는 표현, “ 나는 너의 존재와 너의 위치에 의해서 나 자신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는 거점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다.”은 따돌리고 당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임에 틀림없다. “모든 등대는 저마다의 고유성을 섬광에 실어서 반짝거린다. 등대는 선박에게 항로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선박의 목적지는 등대가 아니다.”


2장의 글과 1장의 사진으로 바다의 바람의 표현하는데 2장 4문단으로 풍향계, 1문단으로 바람을 표현하는 것을 읽으며 또다시 감탄, 감탄할 수밖에 없다. 외울 수도, 필요도 없지만 12가지 바람에 대한 정의, 기술은 기가 막힌다.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들바람, 흔들바람, 된바람, 센바람, 큰바람, 큰센바람, 노대바람, 왕바람, 싺슬바람 순으로 바람의 세기를 구분한다. 바람이 미치는 영향의 크기도 같은 순이다. 바람을 느끼는 사람의 공간과 시간, 상황에 따라 다를 텐데 사람과 분리한 바람을 이처럼 구분하고 있다.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는 두 장반의 글과 두 장의 사진으로 독자를 쓰러뜨린다.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한다. “『수목생리학』에 따르면 물은 분자들 간의 상호 응집작용으로 이동하는 것이어서 나무는 물을 위로 올리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처럼.


“수련은 빛의 세기와 각도에 정확히 반응한다. 그래서 수련을 들여다보는 일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의 숨 막히는 허송세월이 필요하다.” “여름 연못가의 하루는 돌이킬 수 없이 다 지나간 것이다.”

‘남한산성 기행’인 ‘살 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는 <남한산성>을 쓰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다닌 흔적의 일부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고,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어떠한 말도 다 말이었으되 어떠한 말도 온전한 말이 아니었으나 양쪽 모두의 수사학은 비통하고도 간결했다. ” 앞 문장보다 더 남한산성에서 47일간 농성, 버티기, 대책 없는 견딤을 행하던 인조와 신하들의 상황을 표한 할 수 있을까.

“욕망은 땅 위에서 찬란한 것들을 세우기도 하고 그 찬란한 것들을 폐허로 만들기도 한다.”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는 천진암이다. 정약용이 배교했음과 주문모 신부의 존재를 폭로하고, 황사영과 이승훈을 삿된 무리들이라고 저주했다. 최초의 영세인 이승훈도 배교자로 죽게 됨을 배운다. “형틀에 묶인 처남과 매부가 그렇게 서로를 저주하고 밀고하며 울부짖었다.” 그래서 김훈의 소설 <흑산>이 우울했던 거다.

얼굴 표정을 보면 기분이 어떤지 건강이 어떤지를 대개는 알 수 있지만 김훈은 얼굴이 작동하여 표정을 빚어내는 구조를 이렇게 표현한다. “얼굴이야 말로 살아있는 인간의 몸과 살아서 작동되는 마음이 만나서 빚어지는 또 하나의 완벽한 자연이다.” “표정들은 전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들려오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형해화되어가고 있다.”는 ‘앙상한 모습처럼 부실해졌다.’ ‘형태만 남기고 실질적인 것이 없다.’ 는 표현이다.


<자전거 여행2>는 2004년 9월 초판이 나왔다. 독자는 2008년 12월 개정판 4쇄, 본문 295쪽 분량의 글로 경기도 일대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즐긴다. 독자는 행복하다.


P.S. 2016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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