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 그림이다

손철두, 이주은 지음

by 노충덕

다, 그림이다


고교시절 클라리넷을 부는 친구의 꼬임(초대?)에 빠져 버스 타고 대전까지 원정가 시민회관에서 공주고, 동아공고의 관악부의 경연을 볼 수 있었다. 그 녀석이 “재, 틀렸다. 틀렸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어떻게 수많은 악기 중 한 악기의 소리를 골라 듣고 틀렸는지 잘하는지를 알 수 있는가 궁금할 만큼 난 음악에 음치다. 미술도 그렇다. 예능에는 모두 치자를 붙여야 할 정도 수준이다.


‘다, 그림이다’는 좋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림을 말과 글로 풀어 준다. 그것도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그러니 그림과 말과 글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림은 전시회장에나 가야 보는 것이라고 살아왔는데 책을 통해 그림을 보게 될 줄 몰랐다.

우선 동양 미술에 대해 그림을 풀어준 손철주와 서양 미술을 맛깔나게 풀어준 이주은이란 분을 보고 싶다. 관리자가 되면 이 분들 모셔다가 더 많은 그림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다, 그림이다’는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이란 부제로 열 가지 주제에 따라 동양화와 서양화를 선정하고 각자가 그림을 풀어주는 형식으로 책이 꾸며졌다. 서문을 김훈이 써준 것도 멋지다. 아마도 손철주님과 김훈님의 뿌리가 기자였던 연결고리 때문일 꺼라 생각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서문을 썼기에 더욱 좋다.

그리움, 유혹, 성공과 좌절, 내가 누구인가, 나이, 행복, 일탈, 취미와 취향, 노는 남자와 여자, 어머니, 엄마가 열 개 주제다.


책 뒷부분에 두 분이 동양 미술(거죽보다 속을 높이 칩니다)과 서양미술(거울 속 세상을 열망합니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풀이도 쉽게 이해하도록 남겨두고 본문에 사용한 그림 목록도 따로 붙여두었다.

두 분 다 어떻게 이렇게 어렵지 않게 그림을 이해하도록 배려한단 말인가. 이 정도가 되려면 그림, 미술에 대한 내공이 넘쳐야 할 텐데. 그런데 둘 다 화가인 듯, 화가 같은, 화가 아닌 기자출신 작가와 언어학을 전공하고 따로 서양미술사를 공부한 분이다.


두 작가가 대화하며 주제에 맞는 그림을 하나 골라 그림을 소개하는 것이 마치 찻집에 앉아 편안하게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듯하다. 품격 있되 삶에서 떠나지 않은 말투로. 나는 두 분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청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다. 화장실에 갈라치면 대화가 저만치 진행돼 있을 거라는 생각에 책을 들고 가야 했다. 그림풀이에 함께 꺼내 놓은 시도 멋지게 어울린다.


임제와 기생 한우의 대거리를 옮겨 본다.


북천이 맑다 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 비 온다.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 찬 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혼이 그대를 따라가 버리니

텅 빈 몸만 대문에 기대네

나귀가 더뎌 내 몸 무거운 줄 알았더니

하나가 더 실려 있었구려, 그대의 혼


신윤복과 김홍도의 풍속화가 재미있고, 프란츠 빈터할터가 그린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와 안나 안처가 그린 부엌에 있는 여인이 좋다.


‘다, 그림이다’는 2011년 초판이 나왔고, 내가 본 것은 초판이 나오고 18일 만에 초판 3쇄로 나온 것이다. 문학 동네에서 펴내고 이봄에서 임프린트 한 것으로 본문 285쪽 분량이다. 책을 구성한 방식도 멋져 탐난다.


895461647x_3.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