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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15. 2023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

한 권의 책에서 특정한 내용을 뽑아 쓴 주제 서평 05

   2023년 여름 여러 선생님이 스스로 먼 나라로 떠났다. 아니다. 이 문장은 떠난 선생님과 남아 있는 이를 남남으로 보거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내팽개친 표현이다. 2023년 여름 우리는 절벽에 매달려있던 선생님들의 손을 놓아 버렸다.

   악성 민원을 반복하는 학부모가 생겨나고,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선생님의 사명감을 떨어뜨린다. 우리의 과거 문화와 단절된 서양식 교육방식과 고학력 사회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다. 조선의 가정교육은 서양문화와 교육방식에 밀려나 흔적조차 없고, 학부모의 학력 인플레이션은 교사의 전문성을 하찮은 것으로 인식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만들었다. 학부모의 인식 문제는 일반화하기 어려우니, 현재의 교육을 치유할 방안을 과거와의 단절에 제한을 두고 해결방안을 생각한다.


 조선 시대 종가의 교육철학은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라며, 지식의 습득보다 예절 있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인성 공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 선비의 가치관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우리의 현실은 아동학대, 학교폭력, 교사 폭행, 여성 혐오, 악성 민원, 자살, 갑질이 드물지 않다. 우리 교육의 서구화로 민족의 정신적 가치가 사라진 탓이다. 공부의 목적을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로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은 조선 시대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나에 주목하고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고리타분한 이야기 하지 말라며 눈을 감거나 귀들 닫지 말고 들어보자.


   조선의 교육방법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공부는 자기가 목적이 되고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이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선함을 끌어내는 것이다. 논어 <양화> 편은 인간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후천적인 습관이나 외부적 환경, 노력 정도에 따라 서로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가 성선설로 체계화되고 인의예지라는 마음의 요소를 기르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다. <동몽선습>은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 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가장 귀한데, 그 이유는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현대적 변용이 필요하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미래는 남을 이기는 것이 경쟁력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경쟁력이라고 한다.


   전통교육은 먼저 사람 공부를 하고 나서 글공부를 하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교육은 해방 이후 서양에서 계발된 교육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존해 왔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 소통(교학상장)이 사라진 채 주입식, 따라가기 교육이 공교육 전부가 되었다. <중용>의 “학문이란 먼저 널리 배우며, 자세히 따져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명확하게 분별하며 독실하게 실천하는 것이다.”라는 기준이 성찰하라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어렸을 때 무엇을 읽고 배웠을까? 전통교육에서는 지식보다는 생활습관과 예절을 먼저 가르쳤다. “하학이상달(수신, 언어예절, 응대 예절, 효도, 공경교육 등의 기본예절)” 아래로부터 배워 위로 통달하는 교육이다. 학 공부를 게을리하고 천리 공부를 하면 결국 성공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어릴 때 가르쳐야 한다. 선인성 후지식 교육이 공자가 중시한 교육철학이다. 아이의 나이에 따라 예절교육의 내용이 달랐다. <예기> ‘내칙’ 편은 아기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열세 살에 이를 때까지 나이별 가르치는 내용이 달랐다. 8살부터 형식 교육을 했다. <소학> ‘입교’ 편도 같은 내용이다.


   조선의 아이들은 무슨 책을 배웠을까?

   전통교육의 순서와 방법은 <천자문>, <유합(類合)>으로 기초 문자를 익히고, <계몽 편>, <동몽선습>, <격몽요결>, <명심보감(또는 효경)>을 읽게 했다. <사자소학>, <계몽 편>, <동몽선습>은 교훈적 교재였다. 어린이 생활예절 교과서로 <사자소학>, <계몽 편>은 산문 입문서로 문장을 익히게 하는 교재였다. <동몽선습>은 박세무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교과서다. 오륜과 중국, 한국의 역사를 동등하게 다룬다.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의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정’과 ‘예의’가 사라져 버린 오늘날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인성을 길러주는 교재라고 평가한다. 율곡은 아동 교육의 핵심을 기본생활습관교육으로 보았다. <격몽요결>은 1577년 율곡이 삶의 목표를 세우는 법과 실천을 가르쳤던 교육서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라며 뜻을 세우는 교육을 강조한다. 이덕무가 1775년에 지은 <사소절>은 품격 있는 사람으로 길러주는 인성교육서다. 이덕무는 사람의 도리와 예절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시와 노래를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교육이 흥미 유발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

    <사자소학>은 조선의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인성 갖추기를 가르쳤던 책이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아이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상대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예절, 효도,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이란 8대 덕목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예절이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올바로 하는 것이다. 무리를 지어 사는 사람들이 약속해 놓은 생활 방식,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가 예절이다.

모든 교육은 효도로부터 가르쳐야 한다. 생활 속에서 부모, 어른의 말에 ‘응하고 대답하기’, ‘경청의 예절’을 지키는 것이다.

바른 마음가짐은 정직에서 나온다. 화가 날 때는 반드시 뒤에 어려워질 것을 생각한다. 정직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다.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려면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도록 좋은 환경을 선택해야 한다.

원만한 인간관계는 상대의 존중에서 비롯된다. 지식 교육만 받다 보니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이 존중받는 법을 안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다.

내 마음을 비쳐 타인을 살피는 것이 배려다. ‘기소불욕 물시어인’하라.

인간관계에서 성공은 소통에 달려있다. 배려와 존중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마음과 힘을 보태주는 것이 협동이다.      


   <동몽선습>은 평생의 처세법을 가르쳤다. 조선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인간관계의 질서를 배웠다. 윗사람이 먼저 예의를 알고 지켜야 아랫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하다. 예의 지키기를 위계질서를 세우려 했다거나 권위의식에 찌들었다는 등으로 비난할 것만은 아니다. 서양에서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가장 적게 노력하고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 했다. <동자례> <예기>는 품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예절 학습서였다. <격몽요결>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삶의 지침서였다. 사람이 살면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며 평생 해야 할 일은 공부라고 권한다. <사소절>은 이덕무가 1775년 지은 것이다. 사회생활을 위한 사소한 예절 지침서다. 어릴 때의 몸가짐이 바른 사람을 만드는 길이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의무다. 시와 노래로 마음을 북돋아 예절을 익히게 하고 글을 가르칠 때 많이 읽기보다 정독하여 잘 익히게 하고 자질과 성품을 헤아려 역량에 맞게 가르쳐야 하고 반복하여 학습하게 해야 한다. 학습역량보다 여유 있게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가정교육에서 이런 책들을 읽고 소화해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학교 교육에서는 이런 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가르치거나 시험에서 출제조차 하지 않는다. 성찰할 기회조차 없다.      



   누군가는 “조선에서 배울 게 뭐가 있느냐!?” 말할 수 있다. 조선의 교육에서는 더욱 무얼 배운단 말이냐고 폄훼하기가 쉽다. 대한제국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과 미국식 민주주의의 도입과 독재를 거치며 우리의 전통교육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해 버렸다. 과거로부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기회도 얻지 못하고 외래의 기준과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해 버렸다. 오늘날 세대의 단절이 학교 교육과 사회질서에 끼친 무질서와 부작용을 생각할 때 전통교육의 장점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가치를 가진다.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은 우리가 무가치하다고 버린 것 중에서 되살려야 할 전통교육의 모습을 그렸다. 물론, 구체적으로 살펴 현대의 가치와 크게 갈등을 빚을 내용이라면 공론을 거쳐 내려놓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2023년 여름을 잊지 않고,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뒤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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