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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13. 2023

나무의 말이 좋아서

한 권의 책에서 특정한 내용을 뽑아 쓴 주제 서평 04


산은 숲이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카프카의 얼음을 깨는 도끼는 이미 클리세다. 책이란 독자가 배울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고르고 글을 쓴다. 에세이란 것이 대개는 살아가는 이야기라서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긴다. 책을 고를 때 에세이는 순위에 없거나 슈퍼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사지 않다. 이런 생각이 편협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책을 읽었다. 김준태의 <나무의 말이 좋아서>를 읽고 든 생각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유한준(1732~1811)의 말이고 글이다. 나무를 사랑하고 숲을 사랑하는 사람, 저자는 이 문장을 실천한다.   

  

   우리는 산에 간다고 말한다. 나무를 보러 가던, 꽃과 숲을 보러 가던 산에 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운동 삼아 간다.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으리란 기대로 가기도 한다. 모두 산에 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등산이다. 

   독자는 지형학을 배운 탓에 산을 조산운동이나 침식작용으로 형성 원인을 파악하고 높이가 얼마인가, 몇 시간이면 오르고 내려오는가로 산을 이해한다. 보통 사람들은 경치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것으로 산을 판단한다. 저자는 산을 말하며 산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숲으로 본다. 산을 고도의 차이로 보는 사람과 숲으로 보는 사람이 있음을 배운다. 이 책은 산을 숲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저자가 쓴 글이다. 독서가 다양한 관점을 갖게 해야 한다고 할 때,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그 몫을 단단히 해낸다. 그러니 흔한 에세이가 아니다.      


   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책이다. 식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쓴 전문 서적도 아니다. 한두 해 삶을 담아서 쓸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식물학에 대한 지식이 15년 이상이라는 시간 쌓음 속에서 저자의 삶에 버무려져 있다. 베이비 부머로 살아온 과정의 경험치를 숲과 연결하고 문학에도 연결한다. 생각은 언제나 안으로 나를 향하고, 밖으로는 교육과 미래라는 목표에 맞닿아 있다. 게다가 질소와 광합성, 꽃과 나무 이름, 뿌리의 역할, 수피 분류 등 전문 지식을 쉽게 풀어 독자가 어렵다고 느낄 수 없다.     


   사계로 구성한 장을 따라가 본다. 에세이를 카프카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따라가다가 저자에게 혼날지도 모른 생각을 한다. 혼이 나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는 습성이다.

사람이 예뻐 보이고 내 마음이 넓어지고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면, 봄이 가져다준 선물이란 생각에 공감한다. 겨울과 봄이 함께할 때 생강나무에서 봄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자연에서 생명의 섭리, 존재 이유를 배운다. 벚꽃과 목련, 동백의 마지막을 묘사한 부분은 김훈의 에세이를 보는 듯하다. 검불 사이의 꽃, 키 작은 나무, 키 큰 나무의 순으로 잎눈을 연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꽃은 그리스인 조르바가 말한 ‘아물지 않는 상처’다.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단어가 가장 아름답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에서 합스부르크  립을 이어주고 타감 작용에서 계급적 멍에를 연결한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생활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글이다. 다람쥐와 청설모의 공존을 배우면 여름으로 간다.      


   참숯의 과학을 배우고, 측백나무와 가로등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거둔 저자가 자랑스럽다. 독자에게 올여름을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를 구분하지 못한 마지막 해로 만들게 한다. 팽나무의 수관에서 어디서 태어나 누구와 사느냐를 숙명과 연결한다. 덩굴식물, 칡에서 성장과 갈등만이 아니라 멈추기, 나를 바라보기를 배워야 타산지석이다. 숲에서 자신을 만났으니 가을로 간다.     


   밟히는 도토리 몇 알을 주워 숲 속으로 던지는 일은 사소한 일일 수 없다.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독자가 동참하길 저자가 바라지 않을까. 열매에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의 메시지를 골라 부모 수업받지 않아 그렇다는 핑계를 대지는 말라고 경고한다. 행복을 미끼로 경쟁을 부추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겨울이다.     


   뿌리와 곰팡이의 공존을 배우니 숲에서 뿌리를 피해 걸어야 하겠다. 저자는 나를 객체로, 대상으로 보려 시도하는 관점을 갖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을 일시 끊어내고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아야 번 아웃이니 우울을 떨칠 수 있다고 보는 독자의 시각과 연결해 본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고 공존의 원칙이다. 올겨울에 숲에서 하늘을 배경으로 겨울나무를 올려다보리라.      


   봄, 여름, 가을의 꽃, 나무, 숲 사진 수십 장. 열매와 수피 사진 수십 장과 상고대 사진의 아름다움을 따로 적지 않는다. 사진 배치와 설명은 둘 곳과 뺄 곳을 알맞게 정해 두고 있다.   

  



사람들이 이 책으로 숲길과 친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응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보탬이 되기를 기대하는 저자의 마음도 응원한다.

숲길에서 저자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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