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품격

안대회 지음

by 노충덕

문장의 품격


17,18,19세기 조선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저 영·정조 시대에 학문이 성했다거나, 사극이 다룬 사도세자의 죽음과 장희빈, 규장각 정도다. 국사에서 가볍게 다뤘고, 사학계의 연구층이 두텁지 못한 까닭과 친일 사학이 뭉개버린 탓이다.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18세기 지식 총서를 내고 있다. 사학계가 다루지 못한 부분을 한문학자 안대회가 중심이 돼 여러 권 내놓고 있다. 지난 10월 25일에 <문장의 품격>과 <조선의 명문장가들>을 사두었다. 앞 책은 300여 쪽이고 뒤 책이 800쪽이 넘어 앞 책부터 읽는다. 살펴보니 앞 책의 내용이 뒤 책에 중복돼 있다. <조선의 명문장가들>만 사도 됐을 것을…….


<문장의 품격>은 18세기 척독을 다룬다. 척독이란 짧은 글이다.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이 일상을 한문으로 짧게 지었다. 이를 한문학자 안대회가 시대감각에 맞게 한글로 풀어 놓았다. 한문으로 지은 원문은 <조선의 명문장가들> 뒷부분에 부록으로 달아 두었다. 7명 중 이용휴와 이옥은 이 책에서 처음 만난다. 이덕무의 척독은 <책만 보는 바보>에서 맛보고 다시 만난다.

머리말이 ‘일상을 담은 문장의 힘’이다. 7명, 51편의 척독으로 본문을 구성한다. 책은 인물과 글을 평가하고, 척독, 안대회의 해설로 짜여있다. 밑줄 친 내용을 옮겨 배운다.


1. 두려움 없는 저항의 목소리, 허균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중엽은 산문사에서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의 허균 산문은 소품문 성격이 짙다. 허균의 척독(尺牘)은 짧은 글이지만 유머러스하고 정서적이다. 소품문이 유행하던 18~19세기 이전에 소품의 미학을 이해하고 창작에 옮긴 문인이다. 허균의 시도는 100~200년 동안 묻혀 있다가 18세기 이후에야 인정받았다고 한다. 허균은 18세기 문학을 선도한 것이다. ‘푸주간 앞에서 입맛을 쩍쩍 다시다’는 음식을 주제로 한 가장 오래된 산문이다. 선비의 글쓰기가 유가(儒家)의 삶과 부합돼야 한다는 관례로 볼 때, 쓸모없거나 사치 조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허균은 전통적 관점을 버리고 흥미로운 일상사에 시선을 둔 개성을 발휘한 거다.


2. 자기다운 삶을 찾는 글, 이용휴

이용휴는 아주 짧고 가장 쉬운 어휘를 선택해 기발한 발상으로 선명한 주제를 글로 썼다. ‘미인의 얼굴 반쪽’은 짧은 비유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한다. ‘살구나무 아래의 집’에서 “이 작은 방에서 몸을 돌려 앉으면 방위가 바뀌고 명암이 달라지지. 구도란 생각을 바꾸는데 달린 법, 생각이 바뀌면 그 뒤를 따르지 않을 것이 없지. 자네가 내 말을 믿는다면 자네를 위해 창문을 밀쳐 줌세. 웃는 사이에 벌써 밝고 드넓은 공간으로 올라갈 걸세.” 이 문장을 읽으며 이덕무가 책 읽던 상황을 떠올렸다. ‘외안과 내안’에서 외안은 사물을 살피고, 내안은 이치를 살핀다. 외안은 현혹되기 쉬우므로 반드시 내안에 의해 바로 잡혀야만 한다. 내부를 보는 눈이 더 온전하다. 내부의 주체성과 내면의 진리를 지킬 것을 강조한다. ‘이제는 한가롭겠구려.’라는 제문이다. 죽음으로 잃는 것도 많지만 얻는 것도 많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생의 힘겨움에 깊은 한숨을 내뱉게 한다. ‘남을 따라 산다.’는 처세에 대한 현명하고 명쾌한 답변이다. 대동(대동)하는 마당에 시세를 위배할 수 없는 일이니. 양심에 비추어보아 옳은 일이라면 세상의 추이를 따라 행해도 무방하다. 세상사를 따르되 합당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된다’는 식상하지 않게 교훈을 준다.


3. 그 자체로 문체가 된 이름, 박지원

연암체의 특징은 대상에 대한 다면적 접근과 입체적 묘사. 격식과 투식, 진부하고 상투적인 글자와 어투의 배격. 얕고 들뜬 문장, 용렬하고 속된 병통의 제거. 비유와 반어, 속어의 빈번한 사용. 장난기와 유머러스한 분위기다. ‘큰 누님을 보내고’는 지금 읽어도 울컥한다. ‘말똥구리 시집’이란 글은 참되고 올바른 견해는 참으로 옳음과 그름의 중간쯤에 있단다. 비단옷 입고 밤길 가는 격과 소경이 비단옷을 입은 격을 견준다. ‘하룻밤에 물을 아홉 번 건너다’에서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로 늘 귀와 눈에 누를 끼쳐 사람들이 똑바로 보고 듣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경계하라 한다. 마음을 고요히 가지는 것, 즉 명심(冥心)은 연암이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문제를 다룰 때 자주 사용한 말이다. 명심하여야 잘못된 선입견과 그릇된 가치관의 혼란을 이길 수 있다. “삼정승과 사귀지 말고 네 한 몸조심하라”는 속담을 소개한다.


4. 문단을 뒤흔든 낯선 문장, 이덕무

이덕무 소품문의 특징은 기존의 문학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개척. 사물을 대상으로 할 때 선입관을 배제하고 치밀하게 관찰한 글을 쓴다. 가상에 빠지지 말고 인정물태의 진실을 드러낸다. 예민하고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청장관전서>가 솔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절판돼 아쉽다. 간서치전의 핵심 문장은 ‘그의 방은 협소하다. 하지만 동쪽에도 창이 있고 남쪽에도 창이 있고 서쪽에도 창이 있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쫓아가며 햇볕 아래서 책을 읽는다.’에 있다. 인생 예찬에서 벗을 ‘안방을 같이 쓰지 않는 아내요 동기가 아닌 형제 사이’로 표현한다.


5. 눈빛이 살아있는 붓끝, 박제가

‘꽃에 미친 김군’에서 통해 벽(癖)에 대해 긍정적 소신을 드러낸다. 남과 다른 취향을 가진 것은 입맛의 차이에 비교할 수 있다고 하여 획일주의를 지양하는 관점을 보인다. 학문, 문학, 사상, 사회에 다양한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다원주의에 기초한 열린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암에게 보낸 척독이 압권이다. “열흘간의 장맛비에 밥 싸 들고 찾아가는 벗이 못 되어 부끄럽습니다. 200닢의 공방(孔方, 돈)은 편지를 들고 온 하인 편에 보냅니다. 수령은 일없습니다. 세상에 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


6. 자유로운 저잣거리의 본색, 이옥

속담 “평지에서 낙상한다”를 소개한다. “몸은 죽어도 문장은 죽지 않는다.” ‘시장(市記)’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시장 풍경을 단조롭게 묘사한다. 어떤 목적의식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저 무료하므로 글을 쓴다는 표명은 그의 희작적 글쓰기의 전제다. 시장은 의도적 관찰이 아니라 우연히 눈에 들어온 현상을 썼다. 땔나무를 진 자가 우연히 문틈을 막은 채 쉬고 있기에 작자도 보기를 쉰다. 보기를 그친 것도 우연이다.


7. 거장의 따뜻한 시선과 멋, 정약용

‘竹欄詩社帖’ 죽란시사의 약속이 가장 멋진 글이다. 언제 모이고, 누가 먼저 모임을 마련하는가를 적은 글이다. 수년 전 어가삼루회 규약을 만들었던 추억이 떠오르고, 분위기도 죽란 시사의 약속과 비슷하구나.



<문장의 품격>은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휴머니스트에서 2016년 5월에 1판 1쇄, 7월 3쇄, 본문 298쪽 분량으로 내놓은 것을 읽었다. 책의 뒤표지에 7인을 조선의 파워 블로거로 비유한다.


P.S. 2018.1.30.(화) 안대회 지음


P.S.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 출간 1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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