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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17. 2023

근사록

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

   좋은 책은 글 속에서 다른 책을 추천한다. 자신이 최고라고 하지 않는다. 꼬리 무는 책 읽기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으니 독자가 성장하게 돕는다. 

   오월에 읽자고 사둔 <근사록>과 <심경>을 쉽게 봤다. 실수다. 책을 읽는 순서가 틀렸다. 원문과 해석을 본 후에야 연구물을 보는 것이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 하는 생각이다. 심경을 읽고 근사록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심경>을 이해하고 내놓은 책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바른 순서는 진덕수의 <심경부주>를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심경>,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내놓은 <근사록>을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내놓은 <근사록>을 읽어야 마땅하다. 이걸 거꾸로 하고 있다.     


   <근사록> 제4장 공동체에서 이동희의 머리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의 사상을 비난하지 말라아리스토텔레스를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무리한 비판이다유교 사상이 가진 시대적 제한을 유교의 결정적 오류로 몰아붙이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분별한 발상이다유교가 가진 시대적 한계가 무엇이고, 유교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초시대적인 보편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 알아야 한다. 이는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부른 시기에서 영감을 얻으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에서 인류는 한 번도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유학에 대한 관점을 바르게 갖게 된 일만으로도 한 권의 <근사록>을 읽은 보람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의 <근사록>은 도(道), 공부, 가족, 공동체, 정치라는 5개 장으로 구성한 연구물이다.

   제1장 도(道)는 <근사록>에 담긴 ‘학문’의 구상이란 장 제목을 두고 있다. 삶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이 근대 이후 과학 기술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 왔으나 근본적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고 시작한다. 반성이란 전통에 대한 무시에서 근대에 맞지 않는 것을 간과하거나 버렸다고 본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새길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20세기에 서양을 따라가려 앞만 보던 자세에서 우리의 전통 안에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지혜를 찾는 전환을 시도한다. <근사록>은 주자학의 입문서이자 교과서라는 지위를 가졌었다, 20세기에 잊힌 <근사록>은 율곡 계통의 기호 학인들이 중시했다. <근사록>에서 말하는 학문이란 자신을 가다듬고 덕성을 키워나가는인격을 도야하는 방법과 기술이다. 본격적으로 태극도설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는데, 이 지점에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내놓은 <근사록>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다.      


   제2장 공부는 생명의 의미에 대한 자각과 실천을 다룬다. 학문은 내적 자각에 이르는 길이다. “학문의 기초는 먼저 몸과 마음이 되어야 한다.” ‘학문은 그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과 결합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힘써 도에 가깝도록 자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근사록>의 이해를 위해서 주역의 괘상(卦象)이 가진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독자에겐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학문의 목표와 관련해 기억할 문장은 맛있는 음식이 몸을 해치지 않듯이 “공부로 인해 마음의 병이 들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공부하지 않으면 늙고 쇠약해진다”는 말이다. “글을 읽어서 자득함이 없다면 많이 읽어도 소용없으며구구하게 알아본들 터득한 것이 없다.”도 와닿는다. 인식의 수평적 확대 못지않게 수직적 깊이도 중요하다. 학문의 방법으로 욕심을 없애고 마음과 본성을 보존하고 기르며 극기하라 한다. 수양의 목표를 매슬로우의 욕구의 위계 중 자아실현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3장은 가족의 주자학적 구상을 살핀다. 송대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아버지 중심의 가족 질서에서 소외된 존재가 있었고 배제된 가치가 있었다. 현대 가족의 개념에 비추어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려 한다. 

<근사록>이 추구한 가족에 대한 구상은 첫째자손들을 한 곳에 모여 살게 하고 종자(宗子)가 통솔하는 사회조직이었다둘째가묘(家廟)를 세우고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셋째가법(家法)으로 가족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다. 구상은 “송대의 혼란 속에서 예악이 붕괴하는 국면을 타개하고 내성외왕을 추구하던 송대 사상가들의 이상”이 담겨 있다. 가족은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중요한 마디로 보았다. 송대는 여성의 상황이 약화한 시기였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남성)와 어머니(여성)를 모시는 도가 달라야 한다고 여겼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질서를 보완하는 존재로 여겼다. 아버지와 군주에게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고, 주자학에서 가족에겐 결속과 질서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현대 개인주의와 가족 개념에서 여성으로부터 가장 비판받는 대목이다.     


   제4장 공동체 : 공동체주의 윤리를 통해 본 주자학의 <근사록>은 “송대 신유학자들이 극단적인 개인주의 입장을 피해 도덕적 정신적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노장사상과 당시 불교가 개인적인 자아를 강조했던 것과 구별된다. <근사록>을 앤솔로지(anthology)로 보는 것은 해석학적 접근이며, 주자가 이것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의미와 통한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넓게 배우되 뜻을 독실하게 하여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의 근사(近思)를 책의 표제로 삼았다고 알려준다. 개인의 수양은 내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원리를 반영하는 사회 질서의 구현을 통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불교와 도교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확보하려 했다. <근사록>이 말하는 개인의 수양은 내부적으로 우주적 질서를 구현하고 그것을 공동체적 삶에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p.149) ”극기복례는 이기적 자아를 억제하고 자아를 도덕적 정신적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참가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p.156) 근사록에서 개인의 의미는 공동체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제5장 무위와 유위 : 주자학은 사서 가운데 <대학>을 중시하는데 근사록도 대학의 팔조목 순서를 따른다. “주자에 따르면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명명덕(明明德) 계열에 속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신민(新民) 계열에 속한다.” 명명덕이란 천()이 부여하였으나 인욕에 의해 가려져 있던 마음의 본성인 明德을 다시 밝히는 내적인 자기반성이다.(이제 명명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신민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주어져 있는 명덕을 다시 밝혀주는 외적인 교화(敎化활동이다5장의 연구자 최진덕은 “명명덕은 마음의 내면세계 즉 무위의 자연 세계로의 퇴행인 데 반해, 신민은 마음 바깥 타인들의 세계, 작위적인 교육과 정치가 요구되는 유위의 인간세계로의 진취이다.”라고 푼다. 독자는 퇴행이란 표현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만 뺀다면 쉽게 풀어준 것으로 판단한다.

   체와 용은 서로 다른 동시에 서로 같다는 것이 체용(體用) 론의 핵심논리다. 체에서 용이 나오고 용은 다시 체로 돌아가는 가운데 체와 용은 상호작용한다. “명명덕과 신민이 체용 관계라면, 명명덕은 신민의 체에 해당하므로, 신민을 잘하려면 앞서 명명덕부터 잘해야 할 것이고, 명명덕만 잘하면 신민은 저절로 될 것이다. ”(p. 180)  이것이 <대학> 팔조목과 <근사록>의 핵심 가르침이다. 마음공부 즉 심학(心學)이 천리를 체득하기 위한 이학(理學)이다. "주자학에서 小學은 禮學이고, 大學은 心學이다."(p183)

“주자학의 본체론은 무위무형(無爲無形)의 이(理)를 유위유형(有爲有形)의 기(氣) 보다 중시하고, 그 공부론은 미발(未發)할 때의 거경함양(居敬涵養)을 이발(已發)할 때의 궁리성찰(窮理省察) 보다 중시한다.”(p.187) 다시 말해 머물러 있음(處)을 나아감(出) 보다 더 주의하고 물러감(退)을 나아감(進) 보다 더 중시한다.(p.187) 

   義보다 理를 좇고 害를 피하려는 것이 천하의 상정(常情)이다. 천하의 상정은 인욕이다. 소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해를 극소화하려 ‘計較‘를 일삼는다. 인간 세계를 만들어가는 핵심에는 계교가 있다. 이기심에서 나온 계교야말로 이성(reason)의 본질이다. 무위란 ’작위 하는 바가 없음‘이다. 무위에 바탕을 두고 행하면 義이고 천리의 公이다. 반면 ’ 작위 하는 바가 있음은 유위다. 유위에 바탕을 두고 행하면 利이고 인욕의 私이다. 義와 利의 문제는 爲己와 爲人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하면 爲己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행위를 하면 爲人이다. 위기와 위인이란 예를 맹자는 망자를 위한 곡에서 본다. 

   주자학에서 幾(기미)란 靜과 動사이, 未發과 已發의 사이, 無와 有의 사이다. 때(時)는 기(幾)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기와 마찬가지로 때 역시 무위와 유위, 자연과 인간이 애매하게 교차하는 처와 출의 사이, 퇴와 진의 사이이다. (p.211) 이 우주는 음과 양, 정과 동, 미발과 이발, 무위와 유위이 시작도 끝도 없는 교육이다. 인간의 작위도 그런 우주적 교역의 일부일 뿐이다.     


    <근사록>은 ‘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12년 발행한 것이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내놓은 <근사록>을 공부하고 이 <근사록>을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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