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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19. 2023

키케로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키케로의 의무론


   카이사르의 「내전기」를 읽고 키케로의 「의무론」을 읽는다. 왜 키케로가 카이사르를 증오하고 폼페이우스의 편을 들었을까? 우리는 승자의 편에서 기술한 역사를 배운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의 패권을 쥐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후세까지 전한다.

키케로는 공화주의자였다. 그의 눈에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히스파니아는 물론 그리스와 이집트까지 폼페이우스를 쫓아가 그를 없앰으로써 삼두정치를 끝내고, 제정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되는 카이사르가 못마땅했다. 철학자인 키케로(Cicero)의 기준으로는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파괴한 독재자다.     


   키케로의 의무론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로마 시대의 시민, 원로원, 철학자들의 도덕적 수준이 어느 정도였으며, 무엇을 지향했는가를 알 수 있다. 내가 읽은 것은 제1권 도덕적 선에 대하여. 제2권 유익함에 대하여. 제3권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상충이라는 세 권의 라틴어 원전을 한국 키케로학회장인 허승일님이 1권으로 묶어 서광사에서 출판한 것이다. 본문 256쪽인데 뒷부분에는 라틴어 원전이 실려 있다.     

   밑줄 친 몇 줄을 순서 없이 옮겨본다.

- 연설이란 꼭 들어맞고, 명료하고, 잘 꾸며진 단어들을 구사하고, 말로 하는 것

- 철학은 차분하고도 절제된 연설의 형태

- 도덕적으로 옳고 선하고 명예로운 모든 것은 의무를 이행하는 데 달려 있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나쁘며 불명예이며 추한 것은 의무를 이행치 않는 데 있다.

- 정의의 기초는 신의이다

-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첫째,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 둘째, 공공의 이익에 따르도록 하는 것

- 어떤 약속이나 계약은 약속을 한 자나 약속을 받은 자에게 불리하게 되면 파기될 수 있다.

- 불의란 법의 자의적 해석에서 발생한다.

- 신의와 관련된 사례 : 만약 사정상 어쩔 수 없어 개인 자격으로 적에게 약속했다면, 심지어 그러한 경우에도 신의를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제1차 포에니 전쟁 시 카르타고인에게 포로가 된 레굴루스는 포로 교환 문제 때문에 다시 돌아오기로 맹세하고 로마로 파견되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우선 원로원에 가서 카르타고의 포로들을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나서, 친척과 친구들이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비록 적에게 한 약속이지만 그것을 어기느니 차라리 고문당해 죽는 편이 낫다고 카르타고로 되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 가장 미천한 자들에 대해서조차도 정의가 구현되어야 한다(노예들에게 심하게 일을 시키기는 하되, 의식주와 같은 근본 문제는 해결해주어야 한다)

- 선행하거나 호의를 베푸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친절이 베푸는 자의 재산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되며, 각자 받을 만한 가치에 따라 베풀어지도록 해야 한다. 

- 의무는 최우선 국가와 부모에게 주어져야 한다.     

 

   <키케로의 의무론>은 그가 아들 마르쿠스에게 보낸 편지다.

이 편지는 그리스로 유학을 간 아들에게 보낸 것인데,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었다.

키케로는 로마에서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잡다]

키케로는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학은 충효를 강조하고, 마호메트는 코란을 통해 부모를 공경하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 공양은 자식의 의무이다.     


   키케로가 말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공자의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과 다르지 않다. 서구의 ‘계약’ 문화가 로마에서도 당연했고, 파기할 가능성도 열어 두었다.  

   

   ‘가장 미천한 자들에 대해서조차도 정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문장을 읽으며,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다 얼어 죽은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삶이 떠오른다. 한국 농장주는 역사 이래 가장 악독한 독재자와 다르지 않다.      


   “선행하거나 호의를 베푸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친절이 베푸는 자의 재산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되며, 각자 받을 만한 가치에 따라 베풀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문장은 

 “굳이 베풀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다면 차라리 베풀지 않음만 못할 수도 있다. 베풂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와 다르지 않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을지라도, 지나친 칭찬은 사람을 버릴 수 있다.


2013년 1월 20일 에 쓴 메모에 덧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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