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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by 노충덕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독자는 무신론자다. 창조론은 들어 보았으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란 단어가 생소하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라는 책이 나온 배경을 살펴본다.


시애틀에 있는 지적설계 선전 본부 디스커버리 연구소(Discovery Institute)를 중심으로 창조론의 변종인 지적설계를 홍보하고 있다. 연구소 리더 중 하나인 조너선 웰스는 오랜 세월 통일교 신자였다고 한다. 연구소의 공동창립자인 조지 길더란 사람은 “지적설계 그 자체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캔자스와 펜실베니아 주에서 지설 설계에 대한 홍보가 대중에게 먹혀들고 있고, 급기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수준까지 와 있는 상황이란다. 각 분야의 최고 과학자 열여섯 명이 진지하게 반론한 에세이를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로 엮었다.


다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수단에 의한 진화를 이론으로 발표한 이후 150여 년 동안 과학적 방법에 의해 검증 되었다. 생물지리학의 연구 결과, 세균의 항생제 저항성, DDT에 대한 곤충의 저항성,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HIV의 저항성도 진화의 증거다. 변이의 원천은 DNA의 돌연변이다.


지적설계 옹호론자들은 ‘물질과 에너지로 환원될 수 없는 영적인 힘이 유목적적으로 DNA를 조종해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다양한 생물과 행동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적 설계론은 아무런 원리도 방법론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진화론의 주장은 고사하고 그 자신의 주장도 맞는지 틀린지 체계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진화론은 지적 설계론의 교묘한 거짓 진술들을 평가할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틀을 제공하며, 이에 따르면 그 진술들은 명백하게 틀렸거나, 아니면 과학적으로 무의미할 정도로 모호하고 해석하기 나름인 것으로 밝힌다.

-팀 D. 화이트 : ‘진화를 부인하는 것은 그 동기가 아무리 좋아도 증거의 부정이고 이성에서 무지로의 후퇴다’ ‘우리의 미래는 새로운 질병들과 변화하는 기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이 현실을 무시한다면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리처드 도킨스 : 지적 설계 옹호론자들이 허무맹랑하게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하는 논증이 ‘불가능성 논증’이다. 불가능성 논증은 박테리아의 편모나 눈과 같은 자연 현상은 도저히 일어날 성싶지 않은 일이라 확신한다. 그러므로 그런 현상은 불가능함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과정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실수는 그 특별한 과정이 ‘설계’라는 결론으로 도약한 것이다. 사실 그 특별한 과정은 ‘자연선택’이다.

‘개인적 불신에 기반한 논증’ : 이론 A가 어떤 면에서 실패라는 이유로, 같은 면에서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고 이론 B를 부전승으로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지적 설계론자들의 수준이다.

다윈도 한 때는 지적 설계론을 믿었었다고 한다.

다윈은 우연히 토머스 맬더스의 <인구론>을 읽고 영원한 생존 투쟁에서 유익한 성질을 지닌 아주 사소한 변이들이 자연적으로 선택되고, 이것이 생존율을 높여 적응 형질의 증가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외딴 섬에서 외래종이 일관되게 우세함을 보여주는 증거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예측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갈라파고스내 종의 감소)

스콧 애트런 : 종교가 번성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깊은 정서적 갈증과 사회의 근본적인 도덕적 필요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븐 할둔(아리비아 역사가) : 상처받기 쉽고 스트레스로 가득한 시대에는 자기보존 욕구가 공익 추구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 : “폭군에 대한 반항은 신에 대한 복종이다”

스티븐 핑거(『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저자) : 무신론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종교가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추론이다. 무신론이 부정의 진술 –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특정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 뿐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무신론이 다리를 건설하거나 암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 종교가 그러한 것들을 할 수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세스 로이드가 쓴 에세이(아무 도움 없이 생명을 진화시키는 우주 컴퓨터)는 이해하기 어렵다.

마크 D. 하우저의 에세이(학교에서 지적 설계론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에서 역사는 학문의 초기부터 현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모든 교과에서 다루되 ‘수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데카르트적 세계관 : 베이컨, 뉴턴, 갈릴레오, 데카르트 같은 16, 17세기 과학자들의 세계관이다. 자연세계를 점점 더 작은 부분으로 분해해서 이해해야하는 기계로 간주한다. 이러한 통찰에는 자연을 존중이 아닌 점령의 대상으로 보는 왜곡된 시각이 따랐고, 이런 왜곡은 전 지구적인 지속가능성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는 바다출판사에서 2012년 1월 초판을 내놓았고, 독자는 2017년 9월 개정판 2쇄, 본문 335쪽 분량을 통해 배운다.


P.S. 2017.1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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