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정관정요 2
2025. 10. 10일~22일
권6 도덕 교화와 풍속 개량
겸손과 사양
태종이 받아들인 주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군자의 준칙은 교만과 자만을 싫어하고 겸허와 공손을 숭상하는 것”이다.
인측仁惻 어짊과 측은함
궁녀들에게도 배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태종은 후궁과 궁녀 3000여 명을 차례로 궁궐에서 내보낸다. 죽은 신하를 자기 자식처럼 애도하고 병사의 죽음에 천자가 곡을 한다.
신소호愼所好 좋아하는 바를 삼가라
위에 있는 자가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아래에 있는 자들의 취향이 결정된다. 군주는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속내를 결코 보이지 말아야 통치는 더욱 견고해진다. 군주는 그릇이고 백성은 물이다. 이는 시대정신이란 국민의 삶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라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언어愼言語 말을 삼가라
법가 사상가 韓非가 말한 군주와 신하 사이에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글이다.
“저의 말이 주상의 뜻을 좇아 유창하고 아름다우면 보기에 화려하지만 부실하다 생각되고, 공경스럽고 삼가며 강직하고 신중하면 보기에 옹졸하며 순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말을 많이 하고 번번이 사물을 거론하며 비슷한 것을 열거하여 사물을 비유한다면 그 내용은 공허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정미한 부분만을 꼬집어 요지로 설명하며 간략히 말하고 수식을 더하지 않는다면 언사가 생경하여 말재주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상의 측근에 있는 자를 비판하며 다른 사람의 의중까지 살펴 안다면 남을 비방하며 겸손을 모른다고 여겨지고, 말하는 뜻이 넓고 심원하며 오묘하고도 멀어 헤아릴 수 없으면 과장되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집안의 이익을 계산하여 상세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수를 헤아리려 말한다면 소견이 좁다고 여길 것입니다. 또한 말이 세속적인 것에 가깝고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다면 목숨에 연연하여 주상께 아첨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고. 말하는 것이 세속과 동떨어져 괴이하고 허무 맹랑한 사실들만 늘어놓는다면 망령되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임기응변의 민첩하고 말재주가 뛰어나며 꾸밈이 많다면 사관(史官)으로 여길 것이며 문학적인 것을 특별히 버리고 진심을 말하면 천하다고 여길 것이고, 언제나 경전에 있는 말을 하고 고대 법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하면 옛 사실들을 들먹인다고 할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삼가야 함을 말한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말을 하기가 두렵다. 말을 삼가라는 장은 군주의 모든 것은 기록된다라고 말하며 군주의 말과 백성의 말은 그 미치는 범위가 다르니 군주는 신중하게 말해야 함도 말한다. 또한 가장 뛰어난 말재주는 눌변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은 말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성인은 말하지 않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고 한다. 노자는 이를 가장 뛰어난 말재주는 눌변과 같다고 했고 장자는 지극한 도는 꾸밈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모두 번거로움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아첨과 무고를 단절하라
인간의 선악은 확실히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당 태종의 말이다.
회과悔過 허물을 뉘우침
공자는 논어에서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의 지적과 조언이 필요하다. 그것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허물을 뉘우치는 데 있어서 배우지 않는 것은 담벽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명분을 지킬 때 안전하다. 자신이 잘못을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탐욕과 비루
구차스러운 재물을 경계하라. 재앙과 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권7 유학과 예법
숭유학崇儒學 유학을 숭상하라
유학은 공자의 학설을 숭상하는 유가학파의 주장이다. 당태종은 유학을 숭상하여 공자에 대한 남다른 존경을 표했을 뿐만 아니라 오경의 교정 작업에 착수하여 오류를 바로잡았다. 태종은 즉위 초기에 정전의 좌측에 홍문관을 설치하여 문인과 유학자를 선발하고 그 본관 이외에 홍문관 학사를 겸하도록 하였고, 정관 2년에는 주공을 이전시대의 성인으로 삼아서 존중했던 것을 중단하고, 새롭게 공자의 묘를 수도의 학교인 국학 안에 세워 이전의 제도를 본받고 공자를 선성先聖으로 삼아 존중하며 공자를 존중하는데 예의를 갖추었다. 국학에 강의를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1만 명에 이를 정도로 유학이 창성해졌다.
당태종 때에 총 180권으로 ‘오경정의’라는 이름의 오경소의를 편찬했는데 국학의 주 교재로 사용했던 이 오경정의는 안사고라고 하는 학자의 노력에 힘을 입었다. 공부하는 자세와 관련된 아 일화를 소개하면 소진은 허벅지를 찔러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동중서는 책을 읽을 때는 휘장을 내렸고 3년 동안이나 정원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사文史 문장과 역사
문사는 사관의 직설을 강조한 부분이다. 태종은 상소문 가운데 정사를 논하고 말과 이치가 적절하고 바르며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익 있는 것들은 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간에 모두 기록하라고 명하였다. 태종의 문집을 편찬하자라는 신하들의 그 청에 뭐라고 얘기했냐면 “군주의 훌륭함과 그렇지 못함은 도덕과 품행에 있는 것이니 어찌 문장에 종사할 필요가 있겠소?” 라면서 문집 편찬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악禮樂 예절과 유악
예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방법이고 악은 인간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휘는 죽어서나 피하라’(관직 명칭이나 인명 및 공문이나 사사로운 글에서 ‘세世’자와 ‘민民’자가 있어도 두 글자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모두 피할 필요가 없다고 명한다. 당 태종의 이름이 이세민이다)라고 얘기했다. 가족 간의 위계의 질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상례의 규정도 마련하였고 스님이나 도사들도 부모가 최우선이다라고 하는 생각, 혼인은 당시 풍습에 반하여 장사하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가졌고, 공주라 할지라도 시집을 가면 며느리의 예절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서자들은 분수를 지켜야 하고, 복상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의 깊이에 따라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복상 제도를 개혁하였다.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생일은 부모가 수고한 날인데 연회를 열어 즐길 수 있는가라며 생일날 태종은 오랫동안 울었다고 한다.
권8 법규 정비
무농務農 농업을 장려하라
농사가 근본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길흉은 음향이 아인 인간에게 달려 있으며 농사철은 농민을 동원하지 말라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형법刑法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법을 집행할 때에는 반드시 관대하고도 간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당태종 입장이었고, 4품 이상의 고위직 관원과 삼공, 구경들과 함께 심의해서 억울한 재판이나 지나치게 엄한 형량을 피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종이 주인을 고발하면 수리할 필요가 없다. 고발하는 자를 모두 사형에 처하게 했다. 사형은 5번 신중하고 일상 업무에도 살얼음 위를 걷듯 긴장하라고 신하들에게 명화였다. 재앙과 복은 행위의 선악에 따라 결정된다. 재판을 할 때는 죄의 근원을 파헤쳐라. 법을 집행할 때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재앙과 복은 서로 붙어있고 길함과 흉함은 함께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수양한 사람은 편안할 때 위험을 잊지 않고, 존재할 때 멸망을 잊지 않으며, 태평할 때 혼란을 잊지 않은 까닭에 자신도 평안하고 나라도 보존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당태종이 걱정하는 것은 재판을 담당하는 관리가 사람을 사형시키는 것을 이익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해침으로써 귀함을 구하고 이로써 명예를 구하는 거다. 2025년 대한민국 사법부를 생각하니 천 년이나 뒤져 있다.
사령赦令 사면령
사면을 경계하고 법령은 간결해야 된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정사를 보았고 주역에서 ‘명령을 하는 것이 마치 몸에서 땀을 흘리는 것과 같아 한 번 나가면 거둬들이지 못한다’라는 생각으로 명령을 번복해서는 안 된다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부貢賦 공물과 조세
정관 18년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했는데 연개소문이 사신을 보내 백금을 바쳤다. 그때 신하들은 반역자인 막리지가 보낸 백금은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의견을 받아들였고, 정관 19년 고구려 왕이 미녀 2명을 보내왔는데 사신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들이 본국의 부모 형제를 떠난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만일이 여인들이 미색을 좋아한다면 그녀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오 나는 받지 않겠소라고 거절하고는 그녀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변흥망辯興亡 흥망을 변별하라
그림자는 형체를 따르고 메아리는 소리를 따르듯이 나라의 희망 흥망 또한 군주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권9 변방 정책
정벌征伐
정벌은 창업 시기에 하는 것으로 그치고 일단 나라를 세운 이후에는 보존하는 일에 열중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모반자들은 은덕으로 어루만져야 하고, 군대는 흉기이고 전쟁은 불행이다. 헛된 명예를 위해 백성들을 상하게 할 수 없다. 장례 기간에는 토벌을 피한다. 이민족과의 화친 정책도 필요하다. 혼란을 평정한 뒤엔 무기를 쉬게 하라. 정벌보다는 어루만져라. 장수의 일은 장수에게 맡겨라. 장수의 결단력이 승리를 느낀다. 백성으로 전쟁을 하는 것은 무모하다. 고구려 정벌은 나라만 상하게 한다는 신하들의 조언이 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패했다.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는다. 창업과 수성의 자세를 겸하라. 무력을 남용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고, 궁궐 건축은 백성을 고달프게 할 뿐이다. 진귀한 세공물은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도끼다라고 인식하였다.
안변安邊 변방을 안정시켜라
당태종은 회유정책으로 흉노를 다스렸고, 과도한 변방 수비를 경계하려고 했다.
권10 위기론과 경계론
행신行辛 지방 순시
태종은 정관 초년 대규모로 궁궐을 건축하고 지방 순시를 좋아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수나라 멸망이 주는 교훈을 되새기려는 뜻이다. 군주의 욕망과 민심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는 반드시 고달픔이 있다고 여겼다.
사냥 畋獵(전렵)
사냥은 군주의 중요한 오락거리였다. 군주는 무분별한 사냥 행위를 금하고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태종이 사냥을 나갔을 때 큰 비를 만나자 신하에게 묻기를 비옷은 어떻게 하면 새지 않게 할 수 있소?라고 묻자 신하가 말하기를 기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절대로 새지 않을 거라 답한다. 이는 태종이 자주 사냥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 말이었다.
재상災祥 재해와 상서로움
군주란 길흉에 근거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덕행의 수행과 대공무사함으로 다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종愼終 신중한 끝맺음
‘시종여일始終如一’라는 말이 있다. 처음과 끝이 하나같다는 말로 일관성 있는 행동을 의미한다. 대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든 공부를 하는 학생이든 간에 처음에는 큰 목표를 향해 한 길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각오가 퇴색 뛰어 이전 사람의 전철을 밟는 경우가 숱하며 군주 또한 창업 초기의 마음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편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처음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끝까지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정관 13년에 위징이 10 가지 항목으로 태종에게 상소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는 것보다 실천이 최우선이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함이 어렵다. 그것을 실천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견지함이 어렵다. 둘째. 조심하고 삼가라 라는 내용이며 셋째는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넷째 소인을 멀리하라. 다섯째 근본에 충실하라. 여섯째, 감정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지 마라. 일곱째, 빈번한 사냥은 재앙을 부른다. 여덟째, 군주와 신하 사이에도 예와 충이 필요하다. 아홉째, 겸손만이 교만과 탐함에서 구해줄 수 있다. 열 번째, 군주의 정성 앞에서는 재앙도 무색해진다라고 하는 항목으로 나누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위증의 상소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태종은 다음과 같은 말로 위징에게 화답하였다. “만일 신이 제시한 이러한 말을 위배하면 나는 또 무슨 얼굴로 그대와 만나겠소? 또 무슨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릴 생각을 하겠소? 그대의 상소문을 받은 후 나는 계속 연구하고 토론하였는데 말에 힘이 배어있고 도리 또한 정확하다고 느꼈서. 그것을 병풍에 붙여놓고 아침저녁으로 공손한 마음으로 보고 있소. 또 베껴서 사관에게 주어 천 년 이후의 사람들이 군주와 신하 간에 마땅히 준수해야 할 원칙을 알기를 바라오”(p.637) 라며 위징에게 황금 10근과 궁중의 명마 두필을 내렸다.
정관 16년 위증은 태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아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감정은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인 모두 한 가지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절제할 수 있어 한도를 넘지 않도록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방종하여 제어하지 못하고 부풀립니다. 폐하의 숭고한 덕행은 지극히 높고 원대하며 평안한 환경 속에서도 위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보니 폐하께서 항상 자신을 억제하여 끝까지 미덕을 지킬 수 있어서 자손만 대까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p.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