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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22. 2023

뉴턴의 프린키피아

어떤 학문이든 역사를 알아야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먼저 읽는 것이 바른 순이다. 문과 출신으로 고전을 하나씩 읽어가며 더는 미룰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하학>과 <프린키피아>는 넘어야 할 산이다. <프린키피아>를 읽는 것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보려는 시도다.  저자의 프로필과 책으로 보아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100% 이해하고,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의 프린키피아 번역사까지 파악하고 썼다. 저자 안상현은 글을 재미있고 쉽게 쓴다. 덕분에 무지한 독자가 <프린키피아>에서 일부분이라도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거다.      


   뉴턴이 말한 ‘내가 조금 더 앞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에서 어떤 학문이든 역사를 알아야 함을 확인한다. 천재의 생각과 발명도 앞서 누군가 짧고 엉성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했었음을 알고 배워 발전시킨 거다. 이양연의 시가 떠오른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기하학(geometry)은 '도형의 모양, 크기, 위치, 그리고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 분야'다. 중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평면기하학은 기원전 300년경 <기하 원론 The Elements>에 바탕을 둔 거다. <기하 원론>은 비잔틴 세계에는 알려져 있었으나 서유럽에는 1120년, 중국에 16세기말에 전해져 ‘얼마냐?’라는 뜻의 중국말인 ‘지허(幾何)’에서 착안하여 산술과 기하를 아우르는 수학이란 뜻의 마테마티카 mathematica에 기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청의 강희제도 기하학을 배우면서 “이 책 보다 짧고 쉬운 책은 없는가?” 불평했단다.

   유럽의 기하학은 17세기 르네 데카르트가 좌표계를 발명함으로써 ‘해석기하학’이라는 새로운 기하학 분야가 성립된다. 해석기하학은 현대의 대수기하학, 미분기하학, 전산 기하학의 기초가 된 중요한 발명이란다. 해석기하학은 좌표기하학, 데카르트 기하학이라고도 하며,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게 이거란다. 요런 건 처음 듣는 소리다. 데카르트 기하학의 이해를 위해서 공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 공리란 ‘증명이 필요 없거나 증명할 수 없지만, 항상 참인 명제’다. 데카르트가 철학의 공리를 찾는 데 사용한 방법이 ‘방편적 의심’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각은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의심할 수 있으나, 그러한 의심을 하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주체인 나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은 증명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참이라는 공리를 발견한 거다.” 데카르트는 이 공리를 바탕으로 우주 만물을 연역적으로 서술해 <철학의 원리>를 내놓았다. 책은 인간 지식의 원리와 물질의 원리를 서술한다. 모든 주장에 하나씩 번호를 매기고 그 각각에 대해 유클리드가 명제를 기하학으로 증명한 것처럼 논증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도 기하학처럼 논증한 거다.

   정신세계는 목적을 가지나 물질세계는 목적을 가질 수 없으므로 정연한 역학(물리학)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모든 물체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전혀 다른 거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과가 원래 땅에서 기이한 물체이므로 원래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목적이 있다고 ‘떨어지는 사과’를 설명하는데, 데카르트는 떨어지는 사과가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물리 법칙에 따라 운동할 뿐이라는 거다. 이렇게 저자 안상현은 쉽게 설명한다. 

   데카르트를 꺼내는 이유는 뉴턴도 데카르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제목을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에서 따올 정도였다. “뉴턴은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에 도입된 ‘공리 체계’와 같은 방식으로 ‘물체의 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을 공리로 세운 다음, 그것을 기초로 하여 우주 삼라만상의 운동을 다룬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저술한 것이다. 이 공리 체계는 유클리드가 <기하 원론>, 톨레미가 <알마게스트>에서 사용한 방식으로 고대 학문을 근대 학문으로 탈바꿈하게 한다. 대표적인 예로 ‘수학을 과학의 언어’라고 하는데, 수학이 가진 ‘공리 체계’가 자연과학이나 공학, 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우리 지식을 체계화하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공리 체계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고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수학을 배우는 까닭이란다.      


   중학교 수학에서 배우는 평면기하학은 유클리드의 <기하 원론>에서 요점만 추린 것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대표적이다. 저자 안상현은 도형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나 ‘공리 체계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거라며 공리에 포함된 ‘정의, 상식, 공준’을 설명한다. 설명 과정에 ‘주어진 유한한 직선 위에 정삼각형 작도’, ‘삼각형에서 각의 이등분선’, ‘삼각형의 닮음 조건’, ‘삼각형의 합동조건’, ‘삼각형의 내심과 내접원’, ‘오심(무게중심, 수심, 내심, 외심, 방심)에 대한 도형을 그려가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수학과 담쌓은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 배려한다. 중학교에서 기하학을 배울 때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작도(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만 가지고 점, 선, 면, 각도, 도형 등을 그리는 작업)라며, 작도하면 기하학 지식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고 40년 전에 좀 알려 주시지……. 여기까지가 <뉴턴의 프린키피아> 제1장 기하학의 내용이다.      


   원뿔은 직각 삼각형의 빗변이 아닌 한 변을 축으로 하여 회전시킬 때 생기는 입체도형을 원뿔이라 하고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 등을 원뿔곡선이라 한다. 태양계 천체들의 궤도가 원뿔곡선이라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이해하기 위해 원뿔곡선과 관련된 기하학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정신 차리고 읽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폴로니우스가 <원뿔곡선>에 대한 명제를 여덟 권에 오로지 기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최초다. 1710년에 옥스퍼드대의 에드먼드 핼리가 나름대로 복원하고 번역하여 출간하는데, 내용이 너무 훌륭해 후대의 톨레미, 케플러, 뉴턴, 데카르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원뿔곡선은 중국에 알려져 천문도나 지도를 제작할 때 사용한 평사도법이 기하학적 원리를 담고 있단다. 원을 평사도법으로 투영시키면 크기는 달라져도 평면에 원으로 그려진다. 

   다음부터가 골치 아프다. 박명(薄明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주위가 얼마 동안 희미하게 밝은 상태. ‘늑대의 시간’이다)을 구하는 데 여각 공식, 보각 공식, 음각 공식에 사인, 코사인, 탄젠트 함수가 나온다. 항복.      


   “원이란 그 도형 내부에 있는 한 정점으로부터 곡선에 이르는 거리가 똑같은 하나의 곡선에 의해 둘러싸인 평면도형이다” 이는 유클리드 <기하 원론>의 정의다. ‘원의 방정식’, ‘ 원주 각의 정리(원주 각은 중심각의 이 분의 일)’, ‘원의 지름에 해당하는 원주 각은 90도다’, ‘원의 접선과 접점을 지나는 (반) 지름은 접점에서 직교한다’, ‘원 위의 한 점에서 그 점을 지나는 원의 반지름과 직교하는 직선은 접선이다’, ‘원의 외부에 있는 한 점에서 원에 접하는 두 직선을 그릴 때, 그 점에서 두 접점까지의 거리는 같다.’, ‘원에 접선을 그렸을 때, 접선과 접점을 포함하는 현이 이루는 각도는 그 현의 원주 각과 같다.’, ‘어떤 원에서 현이 수직이등분선은 원의 중심을 지난다’, ‘원의 중심’, ‘세 점을 지나는 원’, ‘원 위의 한 점에서 접선 그리기’, ‘원 바깥의 한 점에서 원에 접하는 두 직선’, ‘주어진 두 원에 바깥에서 접하는 직선’, ‘주어진 두 원의 안쪽에서 접하는 직선’까지는 작도 과정을 증명을 따라갈 수 있겠다. 그러나 원의 원멱 정리는 개념부터 막힌다.      

 

   타원은 ‘두 점 F, F'에서 떨어진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들의 자취’라고 정의한다. 타원을 그리려면, 일정한 길이의 실을 두 초점에 고정하고 연필로 실을 팽팽하게 하면서 빙 둘러 곡선을 그리면 된다. 

‘빛의 입사각과 반사각은 같다’라는 타원 반사의 법칙은 ‘빛은 최단 경로 또는 최소 시간 경로를 따라간다’라는 페르마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기하학은 병원에서 체외 충격파 쇄석술로 용용한다. ‘타원의 접선’, ‘타원의 켤레지름’, ‘타원의 수직지름’, ‘타원의 중심과 초점 찾기’도 작도를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된다. ‘타원의 원멱 정리’와 ‘타원에 외접하는 평행사변형은 143~169p까지 설명이 나오는데, 따라가지 않고 넘겼다. 포기했다.     


   쌍곡선은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진 두 점으로부터 거리의 차이가 같은 점들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정의가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으니 이해할 수 없는 거다. 그러니 ‘쌍곡선 반사의 법칙’, ‘쌍곡선의 접선’, ‘직각쌍곡선의 특성’, ‘쌍곡선의 원멱 정리’, ‘쌍곡선의 켤레지름’, ‘쌍곡선의 중심과 접근선과 초점 찾기’도 이해 불가다.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포물선은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해석기하학의 정의를 써 놓았는데, 정의조차도 모르겠다. 그러니 ‘포물선의 접선’, ‘포물선의 초점’은 알지 못하겠으나 ‘포물선의 수직지름’, ‘포물선의 반사 법칙’은 작도한 도형을 보면서 간혹 끄덕였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손전등의 반사경 단면이 포물선 모양인 것은 빛을 흩어지지 않고, 포물선 축 방향으로 beam을 이루어나가니 멀리까지 빛이 전달됨을 알겠다. 파라볼라안테나의 접시는 전파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파가 초점에 모이도록 해 주는 거다.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은 물체 각각의 중력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잡아당기는 힘이다.” 요건 도시 간의 영향력을 설명하는 도시지리학에서 응용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뉴턴이 대단한 천재라서 어느 날 갑자기 중력 법칙을 발견해 낸 것이 아닙니다. 뉴턴 이전에 갈릴레이나 케플러와 같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몇 가지 사시를 바탕으로 중력 법칙을 찾아낼 수 있었다”라며 케플러의 행성 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으로 ‘타원 궤도의 법칙(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에 두고 타원 궤도로 공전한다)’,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이 단위 시간 동안 휩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일정하다)’, ‘ 조화의 법칙(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행성 궤도의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을 소개한다.

   갈릴레이는 ‘관성의 법칙(물체에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과 ‘낙체의 법칙(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떨어지는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을 발견했다. 뉴턴은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운동에 관한 공리를 생각해 내고, 그 공리로부터 ‘천체가 타원 궤도를 그리려면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 한 것이다. 뉴턴은 유클리드의 <기하 원론>,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를 본받아 <프린키피아>에 ‘공리 체계’로 이론을 서술한 것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으며,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공리 체계’를 세운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명확하게 이해했고,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를 재독 해야겠다는 동기를 얻는다. 더불어 ‘생각한다’, ‘방편적 의심’, ‘사고한다’, ‘사색한다’, ‘思而不學則殆’의 의미와 중요함을 알겠다. 나아가 ‘지식이 지혜에 이르는 PROCESS’에 ‘知思識見解’라는 절차적 개념을 사용하는 내 知論을 단단하게 할 수 있었다.

그 어렵고,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저자 안상현 덕분이다.      


2019.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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