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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Oct 05. 2023

행복과 불행은 함께 온다(서양편)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 세 번째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7,000자)

- 길가메시 서사시는 바빌로니아로 서양으로 분류할 수 없음을 알려드리며, 예정보다 이틀 앞서 공유합니다.     

여러 권의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 책들을 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


  

   행복한 인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삶은 행복해 보일 수 있으나 내면에 고통이 있을 수 있다. 불행해 보이는 사람 중에도 남이 알지 못하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한다. 행복은 남의 눈에 비치는 대로 평가할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온다고 하지 않는가. 불행이라는 고통과 시련은 이겨낼 때 더는 불행이 아니며, 더 큰 행복으로 느낄 수 있다. 하늘을 날 듯이 기쁜 날도 있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이겨내는 것은 자기 일이나 기쁘고 슬픈 일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외부의 조건과 상황의 문제를 극복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일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의 굴곡이 나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에게도 굴곡은 있음을 보여 준다하물며 인간의 인생에 고통과 시련이 없을 수 없다이런 문제의식으로 책을 읽고 인생을 꾸며간다     

   서사시에서 읽어 낸 인생의 굴곡, 역사 속 인물이 증명하는 인생의 어려움과 이겨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을 찾는다. 우리는 어떤 삶이 부럽고,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누구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질문에는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전제가 있다.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삶을 살아간 53건의 사례들이다.   

  



고대인이 보는 신과 인간의 삶

   고대 서사시를 통해 서양인의 인생살이를 살펴본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에서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은 금양 모피를 찾아와 이아손이 왕좌에 앉게 되어 성공적으로 끝난다. 성공을 본 오비디우스는 “금양 모피 역시, 손에 넣는 수고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라고 말했다. 모험은 절대 쉽지 않아 수고로웠다. 

   <변신 이야기>에서 여신 팔라스와 베 짜기 시합을 벌인 아라크네는 훌륭한 작품을 짰으나 여신의 노여움으로 거미가 되어 지금도 베를 짜고 있다. 니오베는 신보다 행복하다고 떠벌리다가 신에게 자식들을 모두 잃고 대리석이 된다. 테레우스의 욕정이 처제 필로멜라를 범하고 가둔다. 필로멜라는 탈출하여 언니를 만나고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자매의 복수로 자식(이튀스)을 먹은 테레우스는 후투티라는 새가 되었다. 프로크네는 테레우스의 아내였다. 

   다이달루스는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이어 붙여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하늘을 난다. 아버지의 충고를 잊은 이카로스는 높게 날아가다 밀랍이 녹아 날개를 잃고 바다에 추락한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 스틱스강을 건너 저승에 머무르는 신에게 청하여 아내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데려갈 것을 허락받았다. 오르페우스는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조건을 어겼다. <변신 이야기>의 수많은 이야기는 고통과 시련을 빼놓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영웅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오디세이아, 아가멤논과 아카이오이족을 돕는 헤라, 아테네,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의 신들이 프라아모스, 헥토르를 중심으로 하는 트로이아를 돕는 아폴론과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의 신들이 벌이는 인간의 전쟁이요, 신들의 전쟁이다. 전쟁에는 승패가 있다. 패가 없으면 호메로스라는 서사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의 전쟁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든 신은 인간이 패하면 신도 패한 것이다. 승패에는 신에게도 예외가 없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홍수 이야기는 성경의 노아의 방주와 유사하다. 시기적으로 이 서사시가 오래된 것임으로 노아의 방주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모방이 아닐까?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는 길가메시를 통해서 우정을, 이시타르를 통해서 선과 악을 함께 갖는 신의 모습과 이후 크리스트교의 하나님이 선과 악을 공유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는 것처럼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구 역사가 오랜 것임을 알게 한다. 신은 죽지 않을 뿐이지 선과 악을 함께 갖고 있다.     


서양인이 보는 인생이란 1

   서양에서 현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도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마지막 문단이 이렇게 끝난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독배를 들어야 했던 소크라테스의 삶은 불행한가? 가르침을 남겼고, 플라톤과 같은 훌륭한 제자를 두었으니 행복한 삶이었다고 평가할 만한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안티고네>에서 소포클레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모두 알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낸다. 고통을 통해 마침내 지혜를 얻고 초연한 마음으로 죽음에 임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위대성과 존엄성을 드러낸다. 안티고네의 삶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엥케이리디온>에서 에픽테토스는 기원후 1~2세기에 로마 노예 여성의 아들로 태어나 ‘운명적 불행’을 즐기며 살았던 스토아 철학자라고 알려져 있다. 철학자의 삶을 살았으니 행복한가? 노예라는 신분의 제약이 있었으니 고통과 시련이 많았지 않을까?

   <세네카의 행복론>은 인생의 길이는 얼마나 유용하게 시간을 사용하느냐 본다.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장수하는 것이 무조건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카이사르 내전기>를 통해 카이사르는 자기 철학이 있는 진정한 군인의 삶을 살았음을 안다. 내전기를 읽어 카이사르의 판단력과 전략을 대하니 대단한 군인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당시 서양의 전쟁은 적을 전멸시키거나 패잔병을 노예 삼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음에도 카이사르는 대부분 적을 풀어준다. 약탈도 절제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적군의 지휘관을 생포하고도 거취를 적에게 맡겨 새로운 전장에서 다시 적으로 만나고, 그를 다시 잡아도 다시 놓아준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이 내전을 상정하고 지어져 적을 전멸시키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항복을 받아 내는 것이 최고라고 평가하는 것과 통한다. 그 후 제정 시대를 열어 황제가 되었으나 공화주의자였던 키케로의 눈에는 독재자로 보였다. 

   <명상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친다. 부러울 것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로마 제국의 일인자가 양심적이며 실천적인 황제로 거듭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 자기 정화의 참모습을 보여 준다.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삶에 대한 혜안과 인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쓴 명상록이다.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 스토아학파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본보기가 될 만한 교훈 성격의 짤막한 경구와 인용문,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 도덕적 정진 등 인류에 대한 관용을 다짐하는 자세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의 삶이야말로 본받고 싶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에밀>을 남긴 루소는 자식을 보육원에 맡겨 버리고 양육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인간 본성론을 탐구한 역사철학이다. 300년 전, 장 자크 루소는 당시의 사회에 만연해 있던 권력의 횡포와 부패한 사회를 살며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에밀>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루소의 삶은 행복하기만 하지 않고 불행만 하지 않다.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평가가 함께 한다.

   <리바이어던>은 홉스가 혁명과 혼란의 시기에 왕과 귀족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여러 세력 간의 투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구축할 방안을 모색한 결과 탄생한 것이다. 1651년 영국 런던에서 출간된 <리바이어던Leviathan>은 한때 영국에서 금서였다. 자신의 역작이 금서였으니 행복과 불행의 척도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

   <프랭클린 자서전>의 프랭클린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 변변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으나, 신문을 발행하고 번개와 전기의 방전에 관한 실험을 하고, 피뢰침을 만들었다. 미국 독립전쟁 때는 혁명가 중의 한 사람으로 제퍼슨을 도와 독립선언 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아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와 반대편에 서 있었으나 아들을 염두에 두고 자서전을 썼다. 한국에서 20세기 산업화 이전 시골 출신들이 겪었을 가난보다 더한 빈곤 속에 살면서도 검약하고, 절제하고, 희망을 품고 살았다. 프랭클린의 삶을 행과 불행 중 한쪽으로 판단할 수 없다.     


서양인이 보는 인생이란 2

   현대 서양인의 인생살이는 어떨까?

   <윌든>에서 묘사한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은 수많은 독자가 동경한다. 책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로우는 성경, 셰익스피어의 작품, 인도의 철학과 베다, 중국의 공자, 맹자, 논어, 대학 등의 인용을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다. 당시 미국 사람들이 생각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삶에 대해 비판하고, 하버드 대학과 크리스트교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몇몇 냉소적인 표현을 접할 때는 그가 세상과 어울리지 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불편한 진실>은 대통령 선거에 낙선하고 환경 운동가의 삶을 사는 앨 고어의 주장이다. 앨 고어는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관찰과 통계를 텍스트로 풀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공론화했다면 앨 고어는 슬라이드 강연 과정에서 그래프와 생생한 현장 사진으로 환경오염의 폐해를 고발한다. 앨 고어의 인생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에서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건강을 챙겨라. 나이 먹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노년의 시련과 고통은 금전의 문제보다 건강이 문제라고 한다.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실존하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가 다른 것처럼, 우리는 살면서 도덕과 관습, 권위에 억제된 나와 내부의 내가 다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산전수전 겪었고, 이 두 가지 나가 하나인 사람이다. 조르바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불행한가?

   <증여론>에서 코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너희들의 재산이나 자식들은 하나의 시련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탐욕을 누를 수 있는 자만이 번영하리다’ 자식이 많으면 ‘다복하시네요.’라는 인사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자식은 행복의 원천이지만, 불행의 씨앗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조건>을 지은 작가 앙드레 말로는 1901년 11월에 태어나서 1976년 11월까지 문학가와 모험가로, 때로는 정치가로 20세기의 한 시대를 살았다. 프랑스에서 어떤 사람은 말로를 기회주의자로 평하기도 한단다. 1959년 문화부를 신설하여 세계 최초로 문화부 장관이 되어, 이후 드골이 사임할 때까지 10년 동안 프랑스 문화를 이끌었다. 앙드레 말로가 오늘날 프랑스를 문화 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초석을 놓았다. 칭찬과 비난이 공존하는 삶, 이것이 인생이다.

   <하브루타로 교육하라>를 읽으며 준비 없이 사랑만으로 결혼하고, 아무런 준비와 대책 없는 아빠, 엄마가 됐다. 자식 교육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지 않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며 경쟁만 시키는 자식 교육을 되돌아본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부모로서 내가 얼마나 무책임했던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후회하니 불행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 노엄 촘스키와 안드레 블첵의 대화를 기록한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은 서구화, 근대화라는 것에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깨우친다. 두 사람은 밀란 쿤데라를 조국을 팔아 자본주의 서구사회에서 돈과 명예를 얻은 배반의 지식인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였다. 쿤테라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는가?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아들러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폐렴으로 고생했다. 1차 대전 후 빈에서 정신병원을 개원했으나 1932년 강제폐쇄 당했다. 열등감과 무력감을 극복하려는 권력의지가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한다는 개인 심리학을 열었다. 아들러의 인생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에서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이란 고통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는 방법이라 해야 할 듯하다. “행복은 몸에 좋지만, 정신의 강인함을 발달시켜 주는 것은 바로 슬픔이다.”라며 고통은 우리에게 암호화된 형태로 지혜를 준다는 것을 인식하라고 한다. 지혜를 주는 고통은 행복일까?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 솔로몬이 말했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도 톨스토이가 말한 ‘시간을 벗어나면 악은 없다’와 통한다. 행복과 고통과 시련이 만든 불행은 시간이 지나면 그리 중요하지 않고, 잊힌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에서 휴식을 누리는 기술은 자유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린 게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는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더 나은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주체적인 삶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말로 해석한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인생

   서양 문학작품은 인생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하니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말한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그 절반은 자는 것과 같지. 엉뚱한 것을 좇고 있기 때문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소란을 떠는 것은 우리를 자연 일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 말고 관계를 중시하며 의미 있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본다.

   <거미 여인의 키스> 중 슬픈 영화 이야기 끝에 주고받은 말이다.

“우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 좋은 일이 일어나면 오래가지 않더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해.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현실을 직시하고 좋은 일을 소중히 해야 불행과 거리를 둔다는 말이다.

   <인형의 집>은 결혼 생활 8년째인 주인공 노라가 인간으로 사는 삶, 여성으로 사는 삶을 자각하고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그린다. 130여 년 전 노르웨이(서구사회라고 일반화해도 무방할 듯)에서 살던 여성의 모습과 2023년 한국 사회에서 사는 나의 아내와 내 딸들의 삶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듯하다. 여성의 행복에 관한 시도를 본다.


무엇보다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인간은 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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