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볼부 감독이 되다
도서관 업무로 한창 컴퓨터와 씨름을 하던 어느 날 한 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선생님. 저희 티볼대회가 5월 말이라 담당 선생님을 찾고 있는데 혹시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간간히 공을 던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대회가 따로 있었던 것을 몰랐던 나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는 체육 선생님께서 따로 계신데 어째서 나에게 담당자 자리를 권유한 것인지를 그 학생에게 물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지금 체육 선생님께서는 평소 수업과 더불어 축구, 농구, 배드민턴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요 스포츠종목의 대회를 준비하고 계셨던 터라 티볼까지 맡기에는 일과가 무척이나 분주하셨던 같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교과 과목 선생님이 아닌데, 담당자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했고 그렇게 티볼부의 임시 감독이 되었다.
처음 티볼부원들을 확인하러 갔을 때는 정말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절반 이상의 부원들이 축구나 농구등에 겸임을 하고 있어서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고, 현재 남아있는 학생들도 분위기가 그리 간절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나에게 담당을 해주실 수 있는지를 물었던 주장 학생과 몇몇 학생만이 열의를 불태우고 있을 뿐이었는데, 마치 주인공의 패배가 정해져 있는 어떤 스포츠 만화의 클리셰를 보는 듯했다.
나는 우선 각자가 잘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학생들이 지금까지 해온 연습량을 확인했다. 운동신경이 좋은 학생들은 곧잘 자신의 실력을 뽐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티볼을 좋아하지만 몸이 느린 학생. 공을 잡는 게 서툴러서 수비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배우려 하지만 몸이 깡말라서 원하는 만큼 스윙이 안 되는 학생. 여기에 자만심에 빠져 이름만 등록이 되어있고 훈련 참가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학생까지. 오합지졸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을 받은 나는 헛웃음이 났지만 그래도 해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장교였던 시절에도 이런 느낌을 받았고, 이를 이겨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야구나 스포츠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군복을 입었던 약 5년의 시간 동안 내가 겪었던 기초운동들을 떠올리고 이것을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유튜브나 책들을 참고하여 아이들에게 맞는 훈련 방식을 고민했다. 1달도 채 남지 않는 빠듯한 시간. 이미 낡고 해져있는 티볼 장비들. 그리고 어설픈 나의 지도 능력까지. 불안요소가 될 만한 것은 많았지만 어쨌는 나는 도전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티볼부원들을 맞이하고 난 다음날 아이들은 등교시간보다 훨씬 일찍 학교에 나와 연습을 했다. 어떤 아이는 6시에 일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아침잠이 많아서 나오지 않는 학생이 있었지만 과반수의 학생은 저마다 카톡방으로 모닝콜을 주고받으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준비했다.
이튿날부터 나도 아이들의 그런 열의에 감동이 되어 매일 다섯 시 반에 일어나 7시까지 꾸역꾸역 학교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사서로써의 일과에 더해 점심시간에는 농구부 아이들과 대회준비 친선경기를. 이른 아침과 방과 후에는 티볼부의 훈련을 하다 보니 하루가 무척이나 빨리 흘러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을 하기만 하면 몸의 긴장이 풀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일주일을 일찍 일어나고 빨리 잠들었을 뿐인데도, 나의 몸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데 아이들은 그런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에 많이 놀라기도 했다.
여하튼 어색한 시작을 하게 된 첫 주. 우리는 그저 서로를 믿고 본인의 역량을 믿으며 나아갔다. 첫 승이라는 형체도 없고 아득한 안개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