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손님

preparation

by 그리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1학기가 얼추 끝나갈 무렵, 나에게는 주민등록증이 생겼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학생증과는 다른, 번쩍이는 디자인을 가진 카드.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설렘에 마치 트로피를 자랑하듯, 주민등록증을 이곳저곳에 뽐내고 다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얼마 후 우리 집에 도착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인해 이 모든 행복은 공포와 절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편함에서 자주 보던 지로들과 똑같은 크기를 지닌, 평범하디 평범한 우편물 하나. 하지만 발신처는 생전 처음 보는 병무청이란 곳이었다. 혹시나 잘못 온 건가 싶어 봉투를 이리저리 확인하니, 투명하게 코팅이 된 곳 너머에는 나의 이름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기어코 내 집까지 찾아와서는 반송이나 답장, 혹은 거절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엄청난 힘을 가진 종이.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천천히 우편을 개봉하는 순간은 마치 잭 니콜슨 주연의 공포영화 '샤이닝(1980)'의 명장면을 연상케 했다.




"Here's Johnny~!"



그리고 이때 나는 깨달았다. 군인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시작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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