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paration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다섯 개의 단계가 있다고 하던가? 나 역시나 입대라는 슬픔을 앞두고 똑같은 혼란을 겪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을 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왜 군대에 가야 하는지를 떠올리며 '분노'했다가, 신체가 건강하니 가긴 가야겠구나 하는 '타협'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암울한 내 미래를 생각하며 '우울'함을 겪었는데, 바로 이 순간에 한 선생님이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가 나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임마 너거들 이왕 군대 가는 거 장교로 가는 게 좋지 않겠나?"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들에게 가차 없이 꿀밤을 날리시긴 했지만 호탕한 성격 때문인지 싫어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던 40대 중반의 국어 선생님. 그 선생님은 자신도 학군사관(ROTC) 출신이며 장교로 군대를 가면 혜택들이 많다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하셨다.
물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관심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거나 장교를 하면 군생활이 길어진다는 단점 때문에 쉬쉬하였는데, 나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 큰 종이 울린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차피 가게 될 거라면 대다수가 걸어가는 길보다 조금은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 나는 완벽한 해답을 찾았다는 희열 때문인지 수업시간 내내 '장교'라는 단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곤 하교 후 곧장 집으로 가서 A4용지에 크게 'ROTC'라는 글자를 쓴 뒤 현관문에 붙여두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집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보이는 그 단어에 의문을 표하셨다가, 의미를 말씀드리니 "니도 그냥 너희 형처럼 평범하게 다녀오지."라며 만류하셨다. 하지만 나는 명랑만화의 주인공이 된 듯 당찬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께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할 겁니다. 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