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문에 노크를 하고 온 날

preparation

by 그리다

다행히 나는 학군단(ROTC)이 설치된 학교로 진학을 하여 2학년 새 학기가 시작할 때 즈음 무사히 지원서류를 제출했다. 물론 지원서류는 입학을 하자마자 바로 낼 수 있었지만, 1학년 때는 신입생이라는 느낌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다는 욕심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원서를 제출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필기시험 날짜가 문자를 통해 공지되었다. 당시 필기시험은 대학교 강당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아득하게 넓었던 강당이 시험 응시 인원으로 인해 빈틈없이 꽉 채워졌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여하튼 필기시험을 여차저차 합격한 직후 학군단으로부터, 약 3주 정도 뒤에 체력시험이 있다는 문자를 통보받게 되었다. 당시 나는 학교 기숙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기숙사 지하에는 자그마한 헬스장이 있어서 나는 그곳을 활용하기로 했다.


체력 시험에서 평가를 받게 되는 종목은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1.5KM 달리기까지 총 세 가지. 그중 달리기는 전체 점수에 50%를 차지할 정도로 배점이 높았는데, 가장 중요한 종목인 만큼 합격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조건 1급을 받아야만 했다.


달리기 종목의 1급 기준은 1.5KM를 6분 8초 이내로 들어오는 것. 하지만 매일 노력을 해도 러닝머신의 시간은 계속 8분을 넘어갔다. 이대로라면 1급은 고사하고 즉시 탈락이 결정되는 '불합격' 등급을 받게 되는 상황. 나는 그렇게 체력 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배수의 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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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 위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을 보자.




나는 모두가 잠든 새벽 5시에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향했다. 그리곤 아무도 없는 깜깜한 헬스장의 불을 켜고, 항상 달리던 러닝머신 위에 올라 가장 빠른 속도를 세팅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점점 빨라지는 러닝머신. 이대로 무기력하게 시험에서 떨어질 수는 없다는 울분 때문인지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아파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긴 인내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1.5KM를 완주하였는데,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보였음에도 러닝머신의 화면은 언제나처럼 8분 15초의 시간을 띄우고 있었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기록에 나는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그동안 안일했던 나 자신에게 너무나도 화가 났다. 하지만 당장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숨을 쉬며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는데, 그 순간 갑자기 밀려온 통증에 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억!'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과 죽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 지금 와서는 이게 과호흡 증상이었단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정말 머리가 아찔했다. 기도에 이물질이 낀 것처럼 호흡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부족한 산소 때문인지 눈앞이 흐려지며 곧장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그리곤 갓 만든 종이 인형처럼 나의 머리는 이내 헬스장 바닥으로 추락했다.


'컥!, 컥!'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머릿속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남은 힘을 쥐어짜서 한 팔로 입구 쪽을 향해 기어갔는데, 당연한 것이지만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와.. 이렇게 죽는다고? 진짜로?



한여름 아지랑이를 보는 듯, 정신이 점점 아득해지자 나는 스치는 마음으로 '왜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여기를 왔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그리곤 온몸에 힘이 스르륵 빠지는 것을 느끼며 옆으로 꼬꾸라졌다.


기절을 한 것인지 아니면 금방 깨어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바닥에 누운 자세 그대로 눈을 떴다. 내가 느끼기로는 몇 초 정도 지나서 일어난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지는 않아서 실제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헬스장에는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정신이 드는 순간 나는 살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젖었다. 그리곤 한숨을 내쉬며 이내 나의 형편없는 달리기 실력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감각이 점점 돌아올수록 선명하게 느껴지는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의 촉감. 나는 어째서인지 이 느낌이 내가 맞이할 미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오늘은 더 이상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터벅터벅 어두운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체력검정 당일. 나는 1.5KM 출발선 앞에 섰다. 양옆으로는 자신감에 차있는 동기들이 보였는데, 나는 그 당당한 모습에 퍽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곤 떨리는 마음으로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라는 다짐을 했다.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앞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비교적 뒤쪽에서 시작을 했는데, 1KM에 다다를 무렵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전체 대열에서 꽤 앞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내 앞에 뛰는 인원은 왜 이렇게 적은 것이며, 나보다 뒤에 뛰면 나랑 같이 전부 탈락일 텐데 다들 괜찮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100M에서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뛰어들어왔는데, 시험 감독관이 나의 어깨를 툭 치며 들어온 순서와 기록을 말해주었다.




"22등! 6분 7초!"




나는 순간 나의 기록을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내 뒤로 들어오는 동기들의 기록을 들어보니, 내가 달성한 6분 7초의 기록은 틀림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 주자가 들어오길 기다리며 앉아있는 내내 다리에는 경련이 온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해냈다는 쾌감이 이 모든 것을 상쇄시켜 주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의 입은 귀에 걸릴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 기숙사 앞에 도착을 하자 문득 헬스장 생각이 났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 지하로 내려가는데, 키가 큰 장정 두 명이서 '수리 요망'이라 적힌 어떤 러닝머신 하나를 옮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헬스장 입구에 들어섰는데, 내가 매일 사용하던 그 러닝머신의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사감님께 여쭈어보니, 해당 러닝머신은 몇 달 전부터 계속 수리가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문의가 있었고, 이제야 수리업체가 와서 이를 수거해 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순간 나는 '그럼 내가 지금까지 고장 난 러닝머신을 쓰고 있었던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이 어이가 없는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고장 난 러닝머신 덕분에 내 마음은 더 간절해질 수 있었고, 기록은 기록대로 일취월장을 한 것이니 이 또한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밝게 불이 켜진 헬스장 복도를 당당히 가로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되는 건 없다. 그냥 이렇게 노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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