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막탄에서는 솜사탕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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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높은 산들이 서리로 하얗게 물들어 있었던 어느 겨울날. 나는 동기들과 함께 너른 들판에서 각개전투 훈련을 하고 있었다. 각개전투란 '각각의 개인이 별개의 전투를 하는 방법'을 줄인 말로, 흔히 철조망 아래를 기어가거나 통나무와 같은 장애물을 뛰어넘는 행위들이 바로 그런 훈련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겠다.


여하튼 나와 동기들은 10명이 한 조가 되어 100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를 구르고, 기고, 소리치면서 도착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일을 계속 반복했다. 고된 훈련내용 때문인지 시작지점으로 돌아올 때마다 입고 있던 전투복은 녹은 얼음과 진흙으로 점점 물들어갔는데, 훈련 중에는 전투복을 갈아입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축축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계속 훈련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번 정도를 쉼 없이 달려갔다 오기를 반복했을 무렵. 거친 숨을 내쉬며 각개훈련 시작절차인 총검술(총을 가지고 근접에서 전투를 하는 무술)을 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교관님의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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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학교장님께서 지금 각개전투 교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학교장님'이라는 직책은 언뜻 보면 그냥 초, 중, 고등학교의 최고 책임자와 같은 푸근한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육군학생군사학교(줄여서 학군교)에서의 학교장님이라는 직책은 그 결이 다르다. 마치 회사의 대표이사님과 같이 학군교 내에 있는 모든 간부들의 평정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기에 훈련을 맡고 있는 간부들은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학교장님은 얼마 전까지 특수전사령부(줄여서 특전사)에 있다가 오셨기 때문에 훈련을 대충 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셨다.


무전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교장에 있는 모든 교관님과 조교들은 일제히 미어캣처럼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선임 교관의 지시가 내려지자 말자 일사불란하게 훈련용 교보재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 훈련교장 가득 틀어놓았던 총성과 전투음은 뻥튀기가 된 듯 볼륨이 한껏 높아졌고, 교관님들의 다그치는 소리 또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그리고는 좀처럼 쓰지 않던 연막 수류탄(줄여서 연막탄)을 교장 이곳저곳에 터트렸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하나만 터트려도 충분한 연막탄을 세 개씩이나 터트려 내 발 밑에 던졌다는 것이다.


연막탄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자면 크기는 500ml 에너지 드링크와 유사한데, 하나만 터트려도 축구장 하나 크기의 면적을 모두 가릴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연막탄이 터지면 TV에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정말로 수 초 안에 1미터 앞에 있는 사람조차 분간이 안될 정로도 짙은 연기가 피어나는데, 하나만 터트려도 충분할 것을 세 개나. 그것도 내 발 밑에서 터트렸으니 나는 생전 처음 맞이한 광경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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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콜록) 어우.. 이게 뭐야!?




주변 풍경은 사라지고 하얀 연기만 자욱하게 보이는 상황. 그곳에서 나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교관님의 목소리 뿐이었다. 교관님은 총검술을 하라고 외쳤지만 나는 총을 잘못 휘두르다가 옆에 있는 동기가 맞을까 봐 그냥 소리만 "앗!, 앗!"하고 지르기만 했다.


동기들은 실제로 총검술을 했던 것인지 주변에서는 서로에게 맞았다는 아우성이 들렸는데, 나는 혹시나 내 옆에 있던 동기가 나를 때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학교장님이 이곳에 오시기는 한 건지, 우리가 속한 조의 순서는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하나도 가늠하지 못한 채 10분여 동안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있는데, 문득 코를 스치는 달달한 향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옷에 묻은 진흙 냄새만이 가득했었는데, 갑자기 솜사탕을 만들 때 나는 그 달콤한 설탕 냄새가 난다니. 나는 어디서 온 것인가 싶어 숨을 크게 들이마셨는데, 이 기분 좋은 냄새의 발원지가 바로 연막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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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계속 맡아도 되려나?



한참 동안 연막탄의 냄새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관님께서 훈련을 종료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연기가 다 걷히고 난 이후에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과도하게 터트린 연막탄 덕분에 우리는 (시야에 보이지 않아) 각개전투에서 제외되었고, 다른 조의 동기들만이 연속해서 훈련을 진행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더해 (나는 보지 못했지만) 학교장님께서도 실전과 같은 훈련 모습에 만족을 하시고는, 각 교관님들에게 칭찬을 해주신 덕분에 우리의 피치 못한 농땡이도 어영부영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쾌재를 부르며 숙소를 향해 돌아갔고, 그날 새롭게 깨달은 정보를 머릿속에 남겼다.



연막탄에서는 솜사탕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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