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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최고기온이 36도에 육박하고 체감온도는 40도를 넘어섰던 어느 여름날. 나는 동기들과 함께, 앞으로 있을 긴 행군을 대비하기 위한 30km 정도의 짧은 행군을 실시하고 있었다.
30kg이 훌쩍 넘는 군장과 K-2 소총을 어깨에 둘러매고 하염없이 앞을 향해 걷기만 하던 우리. 보통 행군이라 하면 지역 주민분들께서 사용을 허락해 주신 농로(농사에 이용되는 길)를 걷거나 지역 변두리의 한적한 땅 위를 걷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행군 연습이라는 명목 때문인지 우리는 밖을 나가지 않았고, 그저 산등성이를 따라 굽이굽이 나있는 훈련교장의 도로를 계속해서 걸을 뿐이었다.
약간의 아스팔트를 제외하면 회백색의 콘크리트만이 끝없이 이어져있는 길. 태양이 머리 위로 떠오르는 시간이 되자 도로에는 짙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낡은 전투모를 벗어난 땀방울이 지면에 닿자마자 증발되어 버릴 정도로 바닥은 지글거렸다.
처음 행군을 시작했을 때 들리던 가벼운 이야기 소리가 어느덧 침묵으로 변해가는 사이. 우리 모두의 얼굴은 햇빛과 열로 인해 새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낡은 알루미늄 수통에 채워두었던 물은 이미 컵라면을 끓여도 될 정도로 뜨거워진 상황이었지만 그마저도 없어선 안될 만큼, 지독한 갈증은 우리를 괴롭혔다.
동기들과 같이 목마름이 찾아왔지만 주변에 더 힘들어 보이는 동기들을 위해 물을 나눠주었던 나. 결국에는 내가 마실 물마저 없게 되어 나는 계속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내 앞을 걷고 있던 동기가 고개를 몇 번 돌려 나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너 괜찮아?
이미 꽤 오래전부터 어지러움이 있었던 터라 내 낯빛이 이상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는데, 그것이 동기가 보기에는 꽤 심해 보였었나 보다. 거리를 떠도는 좀비와 같은 내 모습에 걱정이 든 동기는 안쓰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내왔는데, 나는 대답할 힘조차 나지 않아서 그 동기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후 그 동기는 자신의 손을 슬쩍 뒤로 뻗었는데, 둘 다 말은 안 했지만 이것이 서로 간의 생존신고라는 생각에 나는 그 손에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느덧 마지막 오르막길만을 남긴 상황. 사실 오르막길이라고는 하지만 트래킹 명소로 유명한 인왕산 보다 더 높은 봉우리까지 단숨에 올라가야 했기에 거의 등산에 가까웠다. 미끄럼틀을 거슬러 오르듯 가파른 비탈길만이 눈앞에 계속 펼쳐지고, 어느 순간부터 내 몸에서는 땀이 단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면 뜨거운 공기가 입안을 익혀버리는 것만 같았고, 침샘이 말라버린 것인지 입 안에서는 조금의 침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내 몸에서 쉼 없이 울리는 위험 신호가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나는 이내 내 몸에 있는 모든 피부들이 바짝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순간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와.. 인간 족발이 되는 것 같네 진짜.
내 몸을 족발에 비유한 것이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긴 했으나 그 당시에는 정말로 (전투복 안에서 익어가는) 내 몸이 족발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심해져 가는 찜통 같은 더위에 한계를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인지, 저만치 뒤에 있는 행군 대열에서는 하나둘 쓰러지는 사람들이 발생했다. 또 드문드문 보이던 군용 앰뷸런스가 점점 더 자주 우리 옆을 지나치기 시작했다. 어찌 됐든 해발 400미터 가까이 되는 이 고개를 넘어가야 종착지인 병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 동기들은 아스라이 사라지는 엠뷸런스를 보며 그냥 포기하고 이 자리에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이 악물고 벼텨낼 것인지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행군을 이어가는 내내 꽤 많은 수의 동기들이 중간에 행군을 멈추거나 자동차에 몸을 싣기는 했지만, 나와 대부분의 동기들은 결국 버텨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인간으로서 참아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엠뷸런스에 몸을 실은 동기들의 안녕을 바라며 그저 말없이 뚜벅뚜벅 걸음을 지속했다.
병영에 도착한 뒤 짐을 내려놓는데, 생활관 스피커에서는 일사병과 열사병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빠르게 의무실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어지러움이 몰려와서 치료를 받을까 고민했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달려 나가는 동기들을 보며 그 마음을 접기로 했다. 그리곤 곧장 샤워실로 가서 10여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찬물을 맞으며 회복을 했다.
증상을 생각하면 그날 나는 틀림없이 열사병에 걸렸었고 신체적으로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훈련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픔을 꾹 참았던 것 같다. 여하튼 컨디션이 최악인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입맛은 하나도 없었기에, 옆에 있던 동기가 가지고 있던 식염 포도당 두 알만을 먹으며 저녁을 보냈다.
짭조름한 알약을 천천히 녹여먹으면서 저녁 점호를 기다리던 나는 오늘을 잘 이겨낸 자신에게 감사하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불침번이 언제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