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체험, 화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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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화생방'이라는 단어는 화학, 생물학, 방사능 무기의 줄임말로써 보통은 이런 무기에 대응하거나 안전하게 조치하기 위한 말로써 많이 쓰인다. 특히나 TV 등에서 간혹 보이는 화생방 훈련 모습을 보면 눈물 콧물을 쏟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번에 남길 기억의 단편은 내가 겪었던 바로 이 화생방에 대한 이야기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어느 날. 나는 동기들과 함께 넓은 잔디밭 위에서 화생방 교관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사용되는 화학무기들은 무엇인지, 또 우리의 신체에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배우고, 이를 제독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를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항상 군장을 쌀 때면 한쪽 허벅지에 단단히 매던 방독면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빠르게 착용하는 방법 등을 익혔다.


그렇게 두어 시간 동안 계속 "가스! 가스! 가스!"라는 말을 외치며, 방독면을 얼굴에 대었다 때기를 수십 번. 굵은 땀방울이 이마를 가르며 떨어질 때 즈음 교관님께서 우리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했다.




자, 이제 곧 화생방실에 들어가니까 방독면 이상 없는지 확인해.




나는 교관님의 말에 'TV에서 봤던 그곳에 들어가는 보다.' 하며 화생방실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했다. 그리곤 계속해서 내 허벅지를 자극해 온 방독면을 얼굴에 대어보며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어설픈 기대를 했다.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생각조차 못 한 채.


조별로 줄을 맞추어 10여 분을 걸어가니 능선을 따라 커다란 수돗가와 함께 대형 컨테이너 두 개를 합친 크기만 한 콘크리트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저곳이 화생방실이구나.' 하며 차근차근 올라갔는데, 저 멀리서 '크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수돗가 쪽으로 달려 나가는 한 무리의 동기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나와 같은 조에 속한 동기들은 "뭔데?"라는 말을 연발하며 걸음을 멈췄다. 길을 안내해 주던 조교는 "방독면을 잘 쓰시면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라면서 우리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동기들은 그 말이 전혀 와닿지 않은 것인지 "아이 씨.. X 됐다."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멀게만 보이던 건물 앞에 다다르자 파란 팻말에 쓰인 '화생방실'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그리고 고작 건물 옆에 서 있을 뿐인데도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매캐한 가스가 코를 찔렀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이 정도의 자극이 오는 것이라면 안에서 느끼게 될 고통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이런 걱정은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어느 한 명이 자신의 정화통이 불량인 것 같다면서 조교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조교는 우리에게 이제 곧 들어가야 한다면서 "교체는 힘들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몇 초 뒤.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린 거대한 철문이 우리를 맞이했다.





으아아악!!!




그저 문에서 한 걸음 들어섰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화생방실 안은 바로 앞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고, 시야를 밝히는 것이라고는 손바닥만 한 창문에서 새어드는 옅은 빛이 전부였다.


멀미가 날 것 같다는 느낌에 최대한 숨을 참고 있는데, 마치 사찰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을 보는 듯, 우리 앞에 우뚝 서있는 조교와 교관님은 우리에게 마스크를 벗을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는 곧장 팔 벌려 높이뛰기와 군가 부르기 등 숨이 찰만한 여러 활동을 시켰다.


CS가스(최루가스)의 고통은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매운 실비 김치를 가루로 만들어 폐에다가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화생방실 안에서의 호흡은 마치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와 같았는데, CS가스 때문에 자연스럽게 숨이 가빠지고, 이는 다시 깊게 가스를 마시는 호흡으로 이어져 고통스러운 순환이 반복되었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듯, 눈물과 콧물 그리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던 화생방실. 그 지옥과 같은 시간이 얼마 즈음 흐르니 교관님은 헛기침을 한 번 하며 마스크를 착용한 이후에 화생방 훈련을 끝내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만 하면 끝이다!'라는 생각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 집중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연습했던 것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방독면 마스크를 썼는데, 같은 조의 동기들 중 한 명이 무척이나 더디게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것을 본 다른 동기들은 "야! 빨리하라고!"라면서 크게 소리치거나 출구 문을 향해 달려 나가기도 했는데, 조교들은 멋대로 행동하려는 동기들을 제압하며 "혼자 나가지 않습니다. 동기들이 다 완료된 후에 같이 출발합니다!"라면서 One Team 의식을 강조했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난 후에 출구의 문이 열렸는데, 오랜만에 밝은 빛을 보아서 그런지 정말로 천국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동기들은 화생방실을 벗어나자마자 모두가 하나같이 수돗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는데, 다들 길게 늘어진 콧물을 씻어내고 검게 물들어 있던 눈물자국을 지워갔다.


우리를 데려온 조교는 "지금 가만히 계시면 CS 성분이 남아서 계속 따가우시니 팔 벌려 높이 뛰기를 해주시면 좋습니다."라고 했고, 우리는 유치원생이 된 것처럼 다들 그 말에 순응했다. 그러고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서로의 얼굴을 보며 크게 웃었다.


이후 모든 소란이 끝나고 나는 걸어온 비탈길을 다시금 걸어 내려가면서 저 멀리 펼쳐진 산등성이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나지막이 외쳤다.



두 번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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