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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ul 31. 2021

짬타이거 냥줍 하던 날(1편)

 6년 전 여름, 나의 기억에 남은 두 번째 고양이에 대한 회상을 해보려 한다. 당시에 나는 장교의 신분으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진급을 한지도 몇 달이 지난 시기 었기에 후배도 생기고 어느 정도 군생활에 노하우가 생기던 때였다. 평소처럼 7시 반에 출근을 해서 매일 있는 8시 상황보고를 무사히 끝내고, 내 사무실로 돌아와 오늘 해야 할 업무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인사과장님이 불쑥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인사과장님은 나보다 2년 선배로, 훤칠한 키만큼이나 굉장히 쾌활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정이 많아서 소대장으로 있을 당시 휘하 병사들에게 참 인기가 참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굉장히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 자리로 걸어왔다.


"야야야 지금 바쁘냐?"

"아닙니다. 지금 막 일 시작하려고 하던 참이라 괜찮습니다.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돕긴 뭘 도와. 딱 봐도 너 할게 더 많아 보이는데"


 햇살이 비치는 창문 옆에 살짝 기대어 만화 캐릭터처럼 '흐으~' 웃는 인사과장님. 분명 군생활이 지겨워질 만도 할 사람이었지만 그 미소는 모든 것을 해탈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처럼 보였다. 그러고선 잠깐의 뜸을 들인 뒤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 있잖아, 너 혹시 고양이 좋아하냐?"

"고양이 말씀이십니까? 음.. 키워본 적은 없는데 딱히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야 그럼 고양이 한 번 보러 갈래?"


 내가 있는 부대에는 속칭 짬타이거라 불리는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노란색과 검은색 털을 지니고, 염분 때문인지 몸매가 뚱뚱했는데 가끔 잔반 처리장에 나타났다가 후다닥 사라지는 녀석들이었다. 나는 인사과장님이 보자는 고양이가 분명 그 고양이 중 한 마리라고 생각했다.


"짬타이거 걔네들이 여기 있습니까? 보통 아침에는 잘 안 보이지 않습니까?"

"뭐? 아니 걔들 말고 새끼 고양이 보러 가자고"


 '걔네들 말고 다른 고양이가 있었나?' 나는 회로가 고장 난 컴퓨터처럼 순간 멍하니 정지하고 말았다. 그때의 얼굴은 분명 누가 봐도 분명 웃음을 지을만한 바보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새끼 고양이... 가 부대에 있습니까?"

"나도 처음 봤다니까? 아침에 출근하는데 보일러실 기름통 옆에 그 욕조 같은데 있잖아? 거기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빠져가지고 못 올라오고 있더라고?"

"아, 그 관사(간부 숙소) 구석에 있는 거기 말입니까?"
"어어. 구해줄까 하다가 어미 고양이가 오겠지 싶어서 일단 놔두고 왔는데, 혹시 있을지 모르니까 같이 가보자"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는 산책을 한 번 다녀온다는 생각으로 인사과장님과 둘이 부대 뒤편에 있는 간부들의 관사로 향했다. 관사와 부대를 구분 짓는 두꺼운 철문을 지나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3분. 마침내 인사과장님이 말한, 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보일러실로 왔는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에이씨. 진짜 데려간 건가? 아쉽네"


 인사과장님의 표정에는 후련하다는 감정과 함께 사뭇 아쉬운 감정이 묻어 나왔다. 나도 새끼 고양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러곤 못내 아쉬웠는지 주변을 기웃기웃 훑어보는 인사과장님. 30초 정도가 지났을까? 진짜 떠난 것 같아서 이제 돌아가자고 말하려던 찰나. 보일러실 안쪽 문을 열고 핸드폰 조명으로 곳곳을 비추던 인사과장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다.


"야야야 저거 봐봐. 내가 말한 그 새끼 고양이인 것 같은데?"

"예? 고양이가 여기를 어떻게 들어옵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네가 와서 한 번 봐봐 저거 고양이 맞는 거 같지?"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인사과장님의 뒤에 섰다. 보일러실 안쪽은 각 관사에 비치된 보일러들이 모여있는 공간인데 들어가려면 허리를 숙여야 할 만큼 작은 문을 지나야 했다. 불을 켜는 스위치가 어딘지 몰라서 캄캄한 보일러실 안을 핸드폰으로 비추자 구슬처럼 반짝거리는 두 개의 눈동자가 저 멀리 보였다. 그러나 나는 경악했다. 그 이유는 고양이가 보일러와 벽 사이에 5cm도 안 되는 공간 사이에 끼어있었때문이었다. 기름 냄새가 가득한 검은 공간 안에 샌드위치처럼 비스듬히 눌려있는 고양이. 그것은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없을 만큼 울음소리도, 미동도 없었다.

 

"저거 어떡하지? 일단 여기 우리밖에 없으니까 일단 구해보자"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기어가듯이 들어가 새끼 고양이를 짓누르고 있던 보일러를 조심스럽게 벽에서 떼내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새끼 고양이를 받쳐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보일러를 옮기며 낑낑대는 순간에는 몰랐으나 밖으로 나오고 보니 두 사람의 손은 물론이고 옷과 신발이 모두 기름 때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빛이 잘 들어오는 관사 마당에 새끼 고양이를 놓으니 이 녀석의 몰골도 만만치 않았다. 털 이곳저곳에 묻은 먼지와 기름때로 인해서 마치 비 맞은 생쥐꼴처럼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심각했던 것은 이 녀석에게서 아무런 미동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에 젖은 인형처럼 네 발은 축 쳐져있었고, 눈은 실눈을 뜬 것처럼 옅게 흰자만 보였으며,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가녀리게 진동하는 가슴뿐이었다. 인사과장님과 나는 가까이서 고양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탈수가 생겼을지도 모르니 마실 물이라도 좀 떠오겠습니다."

"오 좋다. 그래그래"


 산책이라고 생각했던 여정의 끝에 이런 걱정이 생길 줄이야. 나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저 고양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숙소 안으로 뛰어들어간 나는 정수기의 물을 한 컵 뜬 후 서둘러 보일러실로 달려갔다. 그러곤 다시 인사과장님과 둘이 누워있는 고양이 앞에서 쪼그려 앉자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햇빛이 너무 뜨거우면 지치지 않을까?"라는 인사과장님의 말에 양산으로 그늘도 만들고, 정신이 들게 손에 물을 묻혀 톡톡 뿌려보기도 했으며, 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채질도 했다. 그렇게 30분을 꼬박 쪼그려 앉아 있자, 새끼 고양이는 우리의 걱정에 응답을 해준 것인지 처음으로 앞 발을 파르르 떨었다.


"야야 너도 봤냐? 방금 움직였다 얘"

"예 저도 봤습니다."

"이제 좀 살아나는 건가 보다."

"진짜 다행입니다."


 그 후로 5분이 지나자 건전지를 갈아 끼운 로봇 장난감처럼 뒷발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을 뜨고 입 안으로 한 방울씩 떨어뜨려준 물을 핥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노력은 고양이 혼자서 다한 것이지만 그래도 생명이 살아나는구나를 깨달았던 그 순간 가슴에 밀려오는 감동과 뿌듯함은 정말 엄청났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우리는 이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얘 이제 어떡하지? 데리고 있을까?"

"관사에서 동물 못 키우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걸리면 큰일 납니다."

"그럼 이거 그냥 여기 둘까?"

"기운 차릴 때까지 있는 건 좋은데, 사람 냄새가 많이 나면 어미 고양이가 안 데려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 근데 데려갈 거였으면 진작에 오지 않았을까? 아침에도 안 오고 우리 있을 때도 안보였잖아?"

"혹시 주변에 있는데 저희 때문에 못 오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두고 점심때 다시 와봅니까?"

"얘 혼자 있다가 주변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가 와서 물어버리면 어쩔 건데? 짬타이거 걔들도 덩치 겁나 크잖아?"


 나는 혼란스러웠다. 관사 안에서 동물을 키우면 관사를 점검할 때 들킬게 분명하니 징계를 받을 각오를 해야 했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인사과장님이 말한 것처럼 다른 동물이 해코지를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점차 네 발을 까딱거리기 시작하는 고양이를 보고 있는데.


"에이 안 되겠다. 그냥 키우자"


 인사과장님이 오후의 햇살만큼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키우자는 제안을 던지셨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이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나는 몇 가지 걱정되는 사항을 물었다.


"고양이 먹을 거랑 이런 거는 어디서 사실 겁니까?"

"시내에 큰 마트 가면 있지 않을까? 안 되면 인터넷으로 시키지 뭐"

"얘 키우는 거는 어디서 키웁니까?"

"너희 방"

"예? 저희 방 말입니까?"

"어. 거기 방 여러 개잖아 방 하나 정해서 그냥 키워"


 나와 후배 네 명은 같은 관사에 살았다. 좁은 복도를 기준으로 포도송이처럼 방이 왼쪽에 두 개, 오른쪽에 두 개. 그리고 복도 가장 안 쪽 가운데에 내 방이 있었다. 여기는 군대이고 계급이 곧 힘이 되는 곳이었기에 아마 인사과장님이 키우라고 한다면 나약한 소위들은 이 낯선 고양이에게 공간을 내어줄 것이 뻔했다. 물론 나 또한 인사과장님의 결단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는 키우면 어떻게 키울지, 또 어떻게 안 들킬지를 고민해야 했는데 이것은 좀 더 나중에 고민할 문제였고, 당장에는 후배들이 싫은데도 억지로 들여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가 가장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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