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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Aug 12. 2021

짬타이거 냥줍 하던 날 (2편)

 새끼 고양이를 키우자고 인사과장님께서 말씀을 하신 날로부터 이틀 후 그 고양이는 나와 후배 3명이 사는 관사에 살게 되었다. 발견한 첫날 오지 않은 것은 인사과장님이 그 새끼 고양이를 관사에 살고 있는 간부들에게 모두 구경시켜준다고 돌아다닌 탓이었다. 고양이가 오던 날은 무척이나 부산스러웠다. 일과를 끝내고 내 방에 앉아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자 들려오는 후배들의 목소리와 함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후배 세 명이서 복도를 걸으며 각자의 방을 확인하는 소리가 잠시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 방은 안 되겠다. 이거 니 방에서 키우자"라고 하는 한 후배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복도는 조용해졌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로 나왔는데 문이 비스듬히 열려있는 후배의 방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파다닥' 하는 가볍고 경쾌한 동물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궁금함에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뭐 택배라도 왔어? 복도에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던데?"
"아! 선배님. 새끼 고양이 좀 보십시오, 진짜 귀엽지 않습니까?"


 한 명의 후배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고양이의 귀여움을 어필했다. 나머지 두 후배는 옷걸이에 기다란 줄을 엮어 새끼 고양이와 사냥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뱀처럼 꼬인 줄의 끝을 쫓으며 쉼 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고양이를 슬쩍 보니, 인사과장님과 내가 구한 그 새끼 고양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건강해진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일단은 처음 본 척을 했다.


"고양이가 갑자기 어디서 난 거야?"

"인사과장님 방에 있던 고양인데, 저희보고 키우라고 하셔서 데리고 왔습니다."


 나는 직접 보진 않았지만 대뜸 고양이를 키우라고 하는 인사과장님의 모습과 갑작스러운 제안에 물음표를 띄웠을 후배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그래. 근데 고양이는 어디서 키우려고? 이 방에서 키울 거야?"

"네 선배님. 일단 이 방이 저희들 방 중에서는 제일 크니까 여기서 키우려고 합니다."

"쉽지 않을 텐데... 고양이는 야행성이라 밤에 울텐데 너희들 잠 못 자면 어쩌려고?"

"괜찮습니다. 일단은 여기 두고 저희가 틈틈이 돌아가면서 키우겠습니다."


 일을 할 때 보여주던 엄하고 진지한 모습들은 어디 가고 괜찮다며 아이처럼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웃는 후배들. 이틀 전 내가 저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했던 여러 걱정들이 무색하리만큼 후배들의 얼굴은 밝았다.


"그래 잘 키워봐. 혹시나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하고."

"네 선배님! 좋은 밤 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던가 관사 점검 때 걸리면 정말 큰일 난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그날은 후배들의 미소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후배들은 주말을 맞아 번화가로 나간다고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약 한 달 동안 당직근무와 큰 훈련으로 인해서 밤낮을 제대로 쉴 시간이 없었는데 마침 다들 시간이 비게 되어 서로 계획을 잡은 것이다.


"선배님!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고생했는데 오늘 하루는 진짜 재미있게 놀다 와."

"선배님도 같이 나가시겠습니까?"

"아이~ 내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인 줄 아나. 너희들끼리 가서 신나게 놀아 난 하루 종일 잘 거야."

"하하. 알겠습니다. 선배님. 저녁에 뵙겠습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세명의 후배들이 부리나케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고요해진 관사를 만끽하기 위해서 이내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오늘은 옆 마을까지 길게 산책이나 할까?'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순간 옆방에서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뭐 금방 그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켰는데, 1분이 지나도록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얘가 계속 울지?"


 나는 결국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후배의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을 열자 방구석에 놓인 커다란 종이 박스가 보였다. 박스 안을 들여다보자, 푹신한 수건을 밟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박스 옆에 쪼그려 앉아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왜 울어? 배고파서 그래?"


 고양이는 나의 목소리에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어 잠깐만."


 나는 고양이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방바닥에 고양이 사료와 물을 각각 준비하고, 공사장 모래를 가지고 급하게 만든 고양이 화장실을 놓아두었다. 그 후 손님을 맞이하듯 고양이를 안아 들어 그 사이에 놓았다. 그러자 고양이는 여기저기를 뒤뚱거리며 돌아보다가 마침내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수월하게 정답을 맞혔다는 생각에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준비했던 사료와 물을 옆으로 치우는데 이 녀석이 어느새 다가와 나의 뒤꿈치를 발톱으로 긁었다. 나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놀고 싶어?"


 고양이는 쓰다듬는 내 손을 피하듯 바닥에 발라당 누워 내 손가락에 펀치를 날렸다. 가슴을 가볍게 쓰다듬어줄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보면서 참 귀엽고 하찮다는 생각을 했다. 더 놀고 싶으면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내 방으로 걸어가자 고양이는 내 발걸음에 맞추어 따라왔다. 그 후 내 방에서 약 2시간을 정도 사냥놀이를 했다. 가끔 줄을 잘못 채서 손가락이나 정강이가 할퀴어지면 상처가 나거나 따갑기도 했지만 신나게 뛰어다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그냥 웃음만 나왔다.

 분명 몸집은 내가 더 컸는데 먼저 지친 건 신기하게도 나였다. 나는 고양이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자 고양이는 계속 노는 줄 알았던지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와 내 손을 깨물었다. 나는 "아니 난 진짜 쉴 거야. 너도 좀 쉬어."라며 양손으로 등과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고양이는 내 마음을 알았던지 내 배 위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10여분 뒤 내 다리사이로 가서 잠을 청했다. 고양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깨우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고정했다. 분명 내가 쉬려고 누운 건데 고양이 덕분에 주객전도가 되어버렸다. 졸음을 재촉하는 햇살에 나도 잠시 잠을 잤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으니 후배들이 돌아왔다. 손에는 고양이 간식과 자그마한 고양이용 소품들이 들려있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지치니까 얼른 데려가라."라고 말하고는 나의 방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자. 고양이는 부쩍 몸이 커져 튼실해졌다. 이전에도 자주 그랬지만 퇴근을 하고 나면 나무를 타듯 종아리에서부터 어깨 위까지 발톱으로 찍으면서 올라왔는데 이제는 군복 사이로 침투해 들어오는 발톱이 많이 아프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더 늦게 오길 바랐던 관사 점검의 날이 다음날로 예정되고야 말았다.

 대대장님과 주임원사님의 주관으로 간부들의 생활태도나 청소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 간간히 시행되는 관사 점검. 우리는 고양이를 숨긴다고 숨겨보았지만 노하우가 가득 찬 그분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 한 마리 키우는 걸로 뭐라 하겠어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군대는 규율을 어기는 것에 민감한 집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반려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규율을 어겼기에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잠시 마당에서 대대장님과 주임원사님이 가장 선임이었던 중대장님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리고 한 1분 정도 뒤에 결론이 난 듯 선임 중대장님이 우리 관사로 걸어오셨다.


 "관사에서 동물 키우면 안 되는 거 알지?"

 

나와 후배들은 고개를 숙이며 '알고 있다.'라고 대답한 뒤 중대장님의 다음 말에 주목했다.


 "대대장님이 징계는 생략하는 대신 고양이는 소초에 데려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둬."

 "네. 알겠습니다."

 

 관사 점검이 끝나고 나와 후배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때의 감정은 참 오묘했다. 정든 고양이가 떠난다는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소초에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함께 들었고, 큰 징계 없이 다행히 잘 넘어갔다는 안도감도 함께 들었다. 우리는 이후 소초로 들어가는 소대장에게(소초는 여러 개의 소대가 3~6개월 단위로 교대를 한다.) 고양이 용품을 맡기며 잘 키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소초 교대가 두 번 정도 지난 7개월 뒤 고양이는 다시 관사로 돌아왔다. 복귀하는 소대장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연대에서 해당 소초로 점검을 나왔을 때 고양이와 관련된 말이 나와서 데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마당을 걸어 다니고 있는 고양이를 보니 이전에 있던 무늬가 아니면 못 알아볼 정도로 몸집도 훨씬 커지고 뚱뚱해져 있었다.(아마도 염분 때문에 몸이 분 것 같았다.) 뚠뚠 해진 고양이는 예전에 사냥놀이를 했을 때의 활기는 온데간데없고 되게 느릿느릿하고 게을러졌다. 그래도 가끔 퇴근 후에 관사 마당을 걷고 있는 녀석을 보면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특유의 사교성으로 인해 관사의 마스코트가 된 고양이는 여러 간부들의 사랑을 받고 관사 마당에서 키워지게 되었다. 부대에서 금손으로 유명했던 어느 부사관은 나무 조각들로 뚝딱뚝딱 고양이의 집을 만들어 주었고, 보금자리 주변에는 고양이 장난감과 장식품들로 조금씩 채워졌다. 가끔 기존에 있던 늙은 짬타이거와 영역 다툼을 하거나 나비를 쫒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튼튼하게 성장했다.


 고양이가 관사를 걷고 있는 풍경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전역을 하게 되었다. 이제 진짜 떠난다는 생각으로 관사의 짐을 싸고 있을 때도 고양이는 실눈을 뜬 채로 관사 마당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야옹아 밥 먹자"라고 소리치니 언제나처럼 쪼르르 달려와서 발에 얼굴을 비볐다. 나는 잘 먹는 사료에 간식을 섞어서 고양이에게 주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고양이의 등을 몇 번 쓰다듬으며 고양이와 군생활에 대한 푸념을 했다. 그러고는 정말 마지막으로 "나 간다. 잘 지내라."라는 말을 하고서는 관사 후문을 지나 영원히 안녕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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