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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Aug 13. 2021

세상의 반은 남자 그리고 여자라지만

 인간관계에 지치거나 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쉽게 세상의 반은 남자. 혹은 세상의 반은 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과연 그 사실이 우리의 인생에 큰 의미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인구 비율이 미세하게 남자가 많지만 5년 뒤부터는 성비가 똑같아지니 세상의 반은 남자고 또 여자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반이 나와 다른 이성이라고 해서 나와 만날 이성의 수가 늘어난다거나 좋은 인연을 만날 확률이 늘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원하는 이성을 만나게 되는 수는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대도시에 살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원하는 이성을 만나게 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는 통계청의 자료를 참고하여 그 확률을 계산해보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300만의 인구 중 어린이와 학생, 노인을 제외한 청장년층은 약 100만 명. 그중 결혼을 이미 한 사람을 제외하면 40만 명. 여기서 살고 있는 지역이 같거나 동선이 비슷한 사람을 추리면 8만 명. 자신과 유사한 연령대로 인구를 추리면 2만 명. 학력과 소득, 재산 수준이 비슷한 사람으로 줄이면 2000명. 외모나 체형, 능력이 맞는 사람을 가려내면 140명. 여기서 취미와 성격이 비슷하고 생각이 온건한 사람까지로 추리면 10명 이내. 마지막으로 실제로 만나서 깊은 관계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인지까지를 고려하면 만날 수 있는 이성은 고작 2~3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다. 기준을 어떻게 잡았는지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많을 수도, 더 적을 수도 있겠지만 그 숫자가 말도 안 되게 희박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이런 간단한 통계를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인간관계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는 것.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 사람은 살면서 내가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이전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여겨질 테니까. 아직 적당한 인연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눈높이를 조금 낮추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확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 가지 기준만 없애더라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은 훨씬 넓어지니 말이다.


 세상의 반이 이성이라는 사실은 이렇듯 우리의 삶에 아무런 위안을 줄 수 없다.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며 인연에 대한 착각을 하게 만들 뿐이다. 오늘 우리는 자신과 인연이 닿은 소중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너무 당연한 사람이라 여기며 홀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붙잡은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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