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다 Jul 22. 2021

원치 않는 생각의 확장

 나는 글을 쓸 때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빠르게 썼을 때 왠지 모르게 정갈한 느낌도 들거니와 다 쓰고 나서 퇴고 작업을 할 때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자주 일어나듯 내가 글을 쓸 때도 글쓰기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생각의 확장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각자 글을 쓰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는 글을 시작할 때 큰 틀 세 개를 정해 핵심이 되는 문장을 빠르게 적는다. 큰 틀이란 '주제',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 '결론' 이 세 가지다. 보통 이 틀들에 대한 생각이 정해지면 살을 붙여도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크게 어긋남이 없다. 그러나 가끔 스파크가 튀듯 오래전에 떠올렸던 생각이나 경험들이 내 손끝에 개입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서 선원들에게 소리치는 선장처럼, 글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내 안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의 확장이 도움이 된다. 글에 담을 이야기들과 시각들이 풍부해지니까. 다만 이 생각들이 가지를 뻗어나가, 마치 중세시대의 영주처럼 각각 한 문단씩을 차지하고 커져 나가다 보면 서로 다툼을 일으켜 결국 전체적인 글을 망치게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새어나가지 않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생각은 잘 보이는 곳에 메모 써두고, 재미용이나 화제 전환용의 생각은 거의 끄트머리에 모아놓는다. 결국 글을 거의 완성할 쯤에는 써놓았던 글의 70%를 지우곤 하는데, 애써 떠올린 생각이라 아쉬움이 조금 들면서도 덕분에 글의 일관성이 드러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긴 하다. ('해님달님'이야기에 '아이언맨'이 등장하면 안 되는 거니까.)


 마무리된 몇 천자가 안 되는 글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짧은 글을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과 고민을 했다는 생각에 진이 빠지곤 한다. 하지만 이 피곤함은 마치 격렬한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할 때 느껴지는 쾌감처럼 나를 기분 좋게 해 준다. 왜냐하면 그만큼 나는 글을 하나 쓰는데 진심을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그냥 글을 쓰는 역량이 부족한 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하튼 오늘도 하나의 기록을 남기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이것은 가벼운 글이지만 가벼운 만큼 때 묻지 않은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일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게 될까. 오늘 남긴 글을 통해 나는 내일의 나를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겹살이 먹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