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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ul 16. 2021

삼겹살이 먹고 싶어

 가을바람이 살랑이던 10월의 어느 저녁. 나는 방안에 누워 TV에서 방영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삼겹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설명하는 요리사들. 삼겹살을 굽는 방법, 적절한 소금의 양, 곁들이는 사이드까지. 참 다양한 방법으로 삼겹살의 매력이 표현되고 있었으나 나는 오로지 익어가는 삼겹살만 보였다. 옅은 선홍색의 고기가 선보이는 완벽한 마블링. 달궈진 불판에 고기가 올려지는 순간 터져 나오는 매혹적인 소리. 그리고 겉은 노르스름한 색을 띠며 약간 바삭하게, 속은 세상 부드럽게 변해가는 육질. 분명 저녁을 먹고 난 후였을 텐데도 나는 삼겹살로 인해 탄생한 오묘한 배고픔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한 마리의 좀비처럼 삼겹살을 갈망했다. 내일은 꼭 삼겹살을 먹고야 말겠다고.


 다음날 나는 일과시간의 대부분을 삼겹살을 떠올리며 보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저녁에 어디로 가야 할까? 가장 맛있는 삼겹살집은 어디일까 등등을 고민했다. 인근에 유일하게 식당이 있는(재래시장이 아주 작게 형성된) 읍내로 나가면 고깃집이 몇 군데 있긴 해서 연락을 했는데, 그곳은 혼자서 고기를 먹겠다는 사람을 환영하지 않았다. 보통 식당을 이용하는 분들의 평균 나이 때가 5~60대, 그리고 단체로 오기 때문에 혼자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되게 의아해하셨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타고 약 2시간여를 가야 하는 포항으로 눈을 돌렸다. 검색을 하다 보니 포항에는 유일하게, 혼자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한 고깃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고작해야 평범한 삼겹살집인데도 불과하고 나의 이 깊은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행복감에 일찍이 취해버렸던 것이다.


 일과시간이 끝난 주말 5시. 나는 100M 달리기를 하는 선수처럼 부리나케 마을 앞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5시 15분쯤 지나가는 마을버스. 내가 있던 곳은 하루에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이 버스를 놓치는 순간 나의 애틋한 염원은 그것으로 종료되는 것이었다. 걸어서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쉼 없이 뛰었다. 멀리서 구불길을 헤쳐오고 있는 마을버스를 보며 간신히 시간을 맞춘 나는 마을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그리고 다시 포항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숨을 돌린 후에 나는 버스 안에서 15분에 한 번씩 핸드폰을 열었다. 오늘 가려는 고깃집의 이름과 위치를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검색을 해도 운영 시간은 적혀 있었으나, 운영되는 요일은 적혀있지 않아서 속으로 제발 오늘이 휴무일이 아니기를 빌었다. 


 포항에 도착한 후 고가도로를 지나 도로를 끼고 걷기를 30분. 바둑판처럼 생긴 인근 골목을 헤맨 끝에 드디어 고깃집을 찾게 되었다. 문을 열자 입장객을 반기는 종소리. '차라랑'하면서 들리는 익숙한 종소리가 그날만큼은 너무나도 황홀하게 들렸다. 나는 가게의 첫 손님. 사장님은 내게 혼자냐고 묻고 자리를 안내해주셨다. 고깃집의 내부는 약간 일식집과 비슷한 형태였다. 주방과 사장님의 일하는 모습을 마주 보면서 먹을 수 있는 1 인식 테이블이 기역자(ㄱ) 형태로 길게 놓여 있었고, 그 뒤로 벽과 출입문 쪽으로 4명이 앉을 수 있는 가족석이 5개 정도 놓여 있었다. 나는 높은 의자가 놓인 1 인식 테이블 한편에 앉아 주문을 했다. 메뉴는 당연히 삼겹살 3인분. 마음은 10인분의 고기도 비워버릴 것 같았으나 과유불급이라는 단어가 재빠르게 떠올랐던 탓에 가볍게 3인분을 주문했다. 천천히 내 앞에 깔리기 시작한 밑반찬들은 이제 곧 시작될 환상적인 오페라의 전주곡이었다. 잠시 후 주문했던 고기가 나오자 나는 침을 삼켰다. 4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두께의 삼겹살은 초벌이 되어 나왔는데, 이는 육즙이 새지 않도록 미리 초벌을 하는 것이라고 사장님께서 설명해주셨다. 생고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터라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데 형태가 무슨 대수랴. 나는 서둘러 달궈진 불판에 삼겹살을 올렸다. 그 순간 들리는, 고기와 기름이 뜨거운 불판을 만나 들리는 '치익-'하는 소리. TV에서 들었던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툼한 삼겹살이 내는 탄성은 크고 생동감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 쪽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의 왼쪽 편, 입구 앞쪽에 놓인 테이블에 자녀 두 명을 데리고 온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몇 분 뒤에 내 뒤로 친구로 보이는 30대 남자 두 명이 자리를 꿰찼다. 사장님의 섬세한 1대 1 지도를 받아 고기가 거의 익을 때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소주를 한 병을 시켰다. "이제 드시면 될 것 같아요"라는 사장님의 말에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삼겹살에 젓가락을 투하했다. 노랑과 옅은 갈색이 완벽하게 조화된 고기. 살짝 튀겨진 듯 젓가락이 닿자, 바삭- 거리는 소리를 내는 삼겹살은 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후다닥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으려는 찰나. 식지 않은 고기 기름에 입술을 살짝 데고 말았다. 그러나 아픔은 없었다. 그저 속으로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쉽게 먹어버리는 건 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잠깐 식힐 겸 소금에 살짝 찍어 마침내 삼겹살이 입에 들어왔을 때 나는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씹는 순간 터져 나오는 육즙. 오로지 지방만이 줄 수 있는 그 농익은 고소함. 익힌 살코기에서 나오는 담백함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소금만 찍어서 먹은 것이기에 삼겹살이 담고 있던 내공을 온몸으로 모두 받아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쉬울세라 자석처럼 손을 뻗어 목구멍으로 넘긴 소주 한 잔. 더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황홀하다 라는 것뿐. 그저 고기 한 점으로 KO를 당해버린 나는 작게 "우와.. 진짜 미쳤다"라는 혼잣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리고 마중물처럼 배고픔을 느끼던 배는 계속 고기를 들이라고 소리쳤다. 이후에는 무아지경으로 삼겹살을 먹었던 것 같다. 커다란 상추에 삼겹살 두 점과 마늘, 고추, 절인 쌈채소 등등을 넣고 크게 입에 넣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두 눈을 질끈 감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속으로만 '진짜 미쳤다'를 연호하고 감동에 빠진 표정으로 소주를 한 잔 더 넘겼다. 이때 우연히 나는 출입문 쪽에 앉아계신(가족과 함께 온) 아저씨와 잠시 눈을 마주쳤는데, 나를 보던 그분의 표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놀라움과 약간의 부러움. '뭐 저런 사람이 있지?'라는 표정 너머로 설탕물을 들이켜듯 달게 소주를 삼키는 내 모습에 대한 부러움이 느껴졌다. 짧은 교감을 끝내고 나는 어둠이 내려앉은 문 밖을 넌지시 바라보며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혼자 고기를 먹으면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천국은 이곳에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1M 남짓의 공간은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오로지 삼겹살과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마침표를 찍듯, 마지막 남은 소주 한 잔을 깔끔하게 비우고 나는 미련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게, 지금 내가 돈을 벌고 있는 게 참 행복하다고. 또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망설임 없이 달려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삼겹살을 구워 먹곤 하지만 그날 먹었던 느낌으로 삼겹살을 맛있게 먹은 기억은 없다. 그날은 욕구, 고민, 해소의 삼박자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니 삼겹살의 모습이 또 메아리처럼 떠오른다. 오늘은 집에 가기 전에 정육점에 들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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