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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Dec 15. 2021

딸기가 좋아

 딸기의 계절이 왔다. 붉은색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해주는 딸기.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새콤달콤함의 향연은 어느 과일을 비교해도 부럽지가 않다. 케이크나 잼, 여타 디저트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그만큼 친숙한 과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사실 나는 딸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오랫동안 먹어왔기 때문에 그렇다. 모르고 먹어도 맛있지만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딸기를 위해서 나는 내가 겪었던 딸기에 대한 이야기와 재미난 정보들을 나눠보고 싶다.


 딸기와 어떻게 친해졌는가를 물어본다면 나는 자랑스럽게 농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딸기밭에서 살다 보니 나는 곱셈, 나눗셈 보다 딸기 따는 법, 운반, 선별, 포장 방법들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20년 넘게 쌓여 (베테랑 농부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지만) 딸기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


 품종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마트에서 딸기를 살 때 보통 사람들은 딸기의 품종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포장지에 작게 표시하는 농가가 더러 있지만 구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품종이 무엇이든 그냥 맛만 있으면 되니까 어쩌면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우리나라에 딸기 품종이 몇 개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서너 개 정도를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하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었거나 개발되었던 품종들을 합치면 서른 가지 정도나 된다. 물론 실패한 품종도 많았기에 상품성을 인정받은 소수의 품종들만 살아남았고 그것들이 오늘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에 일본 품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밭도 물론이고 온 들판에서 딸기를 키운다는 사람들은 죄다 '장희(아키히메)'와 '육보(레드펄)' 밖에 몰랐으니까.(나 또한 이것들이 너무 흔해서 일본 품종인지 조차 몰랐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국내 품종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처음 심던 때의 이름은 '논산 2호'와 '논산 3호'. 지금에서는 이 품종들이 '매향'과 '설향'으로 명명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계속 연구가 거듭되던 품종이었기에 그렇게 불렸던 것 같다. 일본 품종인 장희는 단맛으로 유명했는데 매향과 설향은 장희의 맛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또한 과육의 저장성이 좋으면서도, 생장력도 좋아 농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런 여러 장점 때문인지 해가 거듭될수록 일본 품종은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국산 품종의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은 산타, 죽향, 킹스베리, 아리향, 비타베리 등등 너무나도 다양한 딸기 품종들이 개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농촌진흥청과 여러 연구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품종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딸기의 생장과 관련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처음 식물을 기를 때나 과일들을 기를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보통 우리는 열매 속에 든 씨앗을 채취한 후 땅에 심어 새싹을 틔워낸다. 딸기도 과육에 달린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딸기에게는 다른 과일에는 없는 자가 복제 기술이 한 가지 더 존재한다. 흔히 '순'이라고 줄기가 바로 그것이다. 딸기가 꽃을 틔우고 어느 정도의 시기가 되면 굵고 긴 줄기 하나가 옆으로 나기 시작한다. 얼핏 보면 이파리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줄기는 끄트머리에서 독자적인 이파리들을 하나둘씩 생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생이 가능할 만큼 성장을 하면 줄기 아래로 하얀 뿌리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사람으로 치면 팔을 옆으로 뻗었더니, 손등으로는 어깨와 머리가 돋아나기 시작하고 손바닥으로는 몸통과 다리가 자라는 거라고 해야 할까?) 뿌리가 돋아난 순은 땅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모체만큼 성장하게 되면 두 개체를 잇고 있던 순은 자연스럽게 썩어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고는 다시 두 개체는 성장을 하고 각자 순을 뻗으며 다시 번식을 하는 것이 반복된다. 나는 순을 통해서 번식을 하는 방법이 있음을 알았을 때 놀라웠다. 왜냐하면 교과서에서는 씨앗을 심는 것이 식물의 싹을 틔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만 배웠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한껏 담고 있는 것이 이 딸기의 순이지만 모종을 기를 때 외에는 사실 순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딸기가 순을 성장시키는데 모든 에너지를 써버리면 열매가 잘 자라지 못하기에 주기적으로 농부들은 이 순을 잘라내게 되는 것이다.


 딸기의 생장에 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먹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시중에서도 가끔 보이긴 하지만 진짜 순도 100%의 딸기 주스를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독특했던 맛을 잊지 못한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냥 과일을 통째로 먹는 것이나 즙을 짜 먹는 것이나 큰 차이가 있겠냐 싶겠지만 퍼먹는 수박과 짜 먹는 수박의 맛이 묘하게 다르듯이 딸기도 그와 비슷하다. 호기심이 강했던 당시의 나는 과일들로 이런저런 실험을 많이 했다. 박스채로 받은 사과를 강판에 갈아서 마셔본다던가 수박을 짓이겨서 주스를 만들어본다던가 하는 장난을 많이 쳤다. 물론 딸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딸기 주스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으로 도시락 하나 정도의 분량(큰 딸기 30개)을 갈아보았는데 머그컵의 반도 채 채우지를 못했다.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딸기를 믹서기로 간 후 면 보자기에 싸서 즙을 짰고 머그컵 가득히 따라진, 기대하고 고대하던 순도 100%의 딸기 주스를 들이켜게 되었다. 과일로 먹을 때보다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면서 풀향기도 살짝 섞여서 나는듯한 유니크한 맛. 마트에서 파는 것들은 결코 이 맛을 흉내 낼 수가 없다. 지금은 딸기의 가격도 비싸거니와 과정도 귀찮아서 사람들에게 먹어보라 추천할 수 없지만 만약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 맛을 다시 보기 위해 또 시도를 했을 것 같다.(여담으로 그날 저녁 나는 어머니께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라'며 등짝 스매시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딸기잼의 경우 호불호가 많이 느껴진다. 시중에서 파는 쨈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일단은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과 입자가 미세하고 고르다는 것, 그리고 만드는 것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나는 집에서 만든 쨈만을 먹었기에 있었기에 마트 쨈에서 느껴지는 인위적인 딸기향과 푸딩과 젤리의 중간 느낌의 점도가 여전히 어색하다. 내가 생각하는 만들어 먹는 쨈의 장점이라 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입자와 단맛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또한 딸기 본연의 향이 많이 나서 (맛은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진짜 딸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고, 나름의 건강적인 측면에서도 무언가 혜택을 보는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시중에 파는 것과 만드는 것 모두 마음을 담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어느 하나가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재미 삼아 딸기잼을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흔히 먹는 커다란 딸기 말고도 쨈용 딸기라고 해서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에 손가락 마디 1개 정도 크기의 딸기를 왕창 담아서 파는 것이 있다. 그걸로 쨈을 해 먹으면 설탕을 덜 넣어도 될 정도로 달고 맛있다.)


 끝으로 맛있는 딸기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1/4 정도 덜 익은 딸기를 고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맛이 다르고 질감이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항상 꼭지 부분에서 약 1~2cm 정도 덜 익은 딸기를 고른다. 그 이유는 많은 딸기를 먹으며 단련된 나의 미뢰 세포가 그런 딸기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선 내가 배가 고프다거나, 목이 마르다거나, 가끔은 심심하다고 할 때도 만병통치약처럼 내게 "딸기를 먹어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밭에 가면 팝콘을 먹듯 딸기를 입에 욱여넣어왔다.(생각 없이 먹었을 때는 한 자리에서 20만 원 치가 넘는 딸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은 적이 있다.) 딸기맛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많은 딸기를 먹는 대신 가장 맛있는 딸기 하나만을 찾아서 먹게 되었고 그중 살짝 덜 익은 딸기가 최종적으로 남게 되었다. 반 정도 익은 딸기는 단맛은 좀 적지만 신맛이 많다. 꼭지까지 빨갛게 익은 딸기는 과즙이 많고 숙성된 단맛이 나서 좋다. 그러나 나는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색깔을 잃지 않은 딸기를 선호하기에 덜 익은 딸기를 고른다. 사실 어떤 것이든 딸기는 최소한 제 맛을 내기 때문에 이것은 나만의 기준이며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딸기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포털 사이트에 잠시 딸기를 찾아보았다. 저렴한 것은 2만 원에서부터 양이 좀 되는 것은 7만 원이 넘는 것 까지. 마트에서 파는 딸기를 볼 때도 같은 마음이지만 딸기의 가격은 모두가 가볍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저렴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주면 보석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딸기를 맞이하러 고향에 내려가는데 이상하게 기쁨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온다. 마니아들은 없어서 못 먹는 귀한 딸기를 이렇게 냉대하는 것이 퍽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딸기를 먹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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