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도서관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일 뿐이지만 아직도 전국 곳곳의 도서관에서는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서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사실 모르고 넘어가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 테지만 나는 사서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어떤 고충이 있는지를 함께 나누고 공감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은 도서관에 등장하는 불청객에 대한 이야기 그 두 번째다.
1. 도서관을 카페처럼 생각하는 사람.
카페 문화가 이제 우리 사회에 친숙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일까? '커피'를 떠올리면 그에 어울리는 단어로 책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오늘도 북카페나 일반 카페들을 살펴보면 틈틈이 커피를 옆에 두고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 하루에 가진 여유를 책과 음료로 표현해내는 모습은 영락없이 아름답지만 그 습관을 도서관에서도 적용시키려 하는 분들은 조금만 자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우선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음식물의 반입이 금지되어있다. 이는 음식물의 냄새가 퍼져 자료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며, 실수로 음료를 쏟아서 책이 훼손되거나 쓰레기들로 인해 도서관이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다. 보통은 입구에 들어오기 전 커피나 테이크 아웃 음료를 보관할 수 있는 '음료 보관대'가 마련되어있거나 음식물 섭취를 위해서 도서관 내에 따로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무시하고 자료실 안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몰래, 조용히 먹는다고 신경 쓴다는 것은 알지만 일단 어떤 음식이든 포장을 뜯고 나면 냄새가 난다. 뻔히 풍겨오는 냄새를 모른 척하기도 그런 데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료실에 함께 있던 다른 이용자분들이 "저 사람 뭐 먹어요"라며 제보를 해주시기에 결국 제제를 하게 된다. 가끔 보채는 아이들 때문에 가방 안에 든 과자를 뜯어서 드시는 몰래 드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럴 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사실상 모르는 척을 한다. 다만 이런 배려에도 과자 부스러기나 과자 봉지와 같은 흔적을 남기고 가시는 분들을 보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기러 가면서 한 숨을 쉴 수밖에 없게 된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자료실에서 떠드는 분들이다. 보통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이웃과 함께 도서관에 방문하시는 분들 중 이런 경우가 가끔 있다. 이 유형의 분들은 자료실에 짐을 내리고 한 바퀴를 쓱 돌면서 자료실에 자신들밖에 없는 것을 확인한다. 자신을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소파에 앉아서 이웃분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시는데, 팔을 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카페의 모습이 상상된다. 물론 자료실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그냥저냥 넘어가지만, 점점 이야기하는 주제가 심오해져 목소리가 커지면 그때부터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가정사부터 자녀분들의 공부 이야기, 친구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시는데 가끔 데시벨이 높을 때는 자제를 해달라고 눈치를 주긴 하는데, 보통의 이용자라면 이를 알고 '우리 나가서 이야기하자'라며 자리를 옮기시지만 '왜? 뭐?'라는 눈빛으로 계속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더 어찌할 수가 없다. 그냥 빨리 저 이야기 주제가 끝나기를 바라는 수 밖에는.
2. 시작부터 끝까지 반말하는 사람
일상생활에서의 습관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실수인지는 모르지만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을 할 때 문장을 짧게 가져가는 사람이나 끝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거 반납인데 어떡해?'라던가 '책이 연첸가?'라는 식으로 반말 아닌 반말을 하는데 이럴 때는 그냥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넘긴다. 하지만 이런 실수를 넘어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대하듯이 사서를 부리는 사람이나 반말을 하면서 무례한 사람이 있으면 '저 지금 불쾌합니다.'라는 사인을 조금 준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 그 말 나한테 한 게 맞아요?(다시 한번 말해봐.)'라는 의미로 이용자분께 "네?"라며 되물으며 눈을 마주치는데 보통은 이 단계에서 이용자분이 눈치를 채시고 말투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도 "이것 좀 해달라고."라며 계속 사서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시를 하면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맡은 임무를 마무리한다. 이런 걸로 말다툼을 해봐야 민원만 올라올 것이기 때문에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하며 나를 달래면서 말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존대하는 태도를 보일 때, 그 사람만의 품격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본다.
3. 반납하는 책들을 던지고 가는 사람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오는 사람들은 보통 기계로 조용히 반납을 한 후 반납 영수증을 가져가시거나 "이 책들 반납 좀 부탁드릴게요"라며 데스크로 찾아오신다. 도서관에서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들이기에 몸에 베인대로 반납처리를 하고 책을 제자리에 꽂는 일을 한다. 다만 이런 절차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서인지 데스크에 책을 왕창 올려두고는 그냥 쌩하고 가버리시는 분들이 있다. 몇 년 전 공항을 나오면서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캐리어 가방으로 노룩 쓰루패스를 시전 해서 화제가 된 어떤 국회의원처럼, 해당 불청객도 사서는 일절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일만 끝내듯이 책을 던져놓고 사라진다.
예전에 서버의 문제인지 PC가 늦게 작동해서 책을 반납하러 온 이용자분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안내를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분은 내 말을 못 들은 것인지 데스크 위로 올려진 내 손 위로 '쾅-'하고 10권이 넘는 책을 떨어트리셨다. 손이 찧은 고통에 '악-'하고 소리를 질렀음에도 그분은 '내 알바 아니다'라는 식으로 자기가 들고 온 나머지 책들을 왕창 놓고 유유히 사라지셨는데, 그날 나는 그분이 사라지고 난 후 한동안 욱신 거리는 손을 어루만지며 '와..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안내는 못 들었다 치더라도 내가 아프다고 소리를 친 건 꽤 커서 들렸을 텐데 눈길 한 번 안 주고 사라지는 이용자분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집이나 밖에서 어떤 불쾌한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이용자분께서 최소한 어떤 용건이 필요한지는 한 마디 정도 해줬으면 좋겠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일을 도서관에서 당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4. 대출이 불가능한 책을 몰래 들고나가는 사람
도서관마다 취급 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도서관마다 대출할 수 없는 책은 항상 비치되어있다. 보통 이런 책들은 아이들의 훼손하기 쉬운 플립북이거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고서. 혹은 전시용 책이나 수서 작업 중인 책 등이 될 수 있다. 작은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도난 방지 태그가 있어서 책을 무단으로 가지고 나갈 시 입구에서 소리가 나게 되어있는데, 문제는 주말처럼 이용자가 도서관에 넘쳐날 때나 이용자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데스크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 발생한다. 전시용 책의 경우 겉표지가 화려하기 때문에 가끔 아이들이 가지고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은 부모님들이 경고음이 울리면 "그 책은 못 들고 가는 거니까 제자리에 두고 오자"라며 아이를 타이르고는 책을 제자리에 두고 오신다. 그러나 경고음이 울려도 '이게 왜 소리가 나?'라고 고개를 한 번 갸웃하시고는 그냥 나가시는 경우, 사서가 직접 따라가서 도서를 확인해 보거나 당사자분께 문자를 드려서 도서의 확인을 부탁하게 된다. 데스크에 사람이 많은 시기를 틈타 몰래 반출하는 분도 계시는데, 다급히 그 이용자분께 "저기 이용자분! 대출된 책 한 번 확인해드리겠습니다.!!"라고 소리를 쳐도 모른 척 달아나시기에 이럴 때는 업무가 끝난 후 CCTV나 대출 흔적들을 추적하여 그분께 직접 전화를 걸게 된다.(보통 이렇게 전화를 걸면 "그래요? 저는 잘 몰랐어요."라며 대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5. 회원가입이 어렵다며 육두문자를 내뱉는 사람
과거 어린이 도서관에 있을 때 회원가입과 관련해서 이런 문제들이 많이 발생했다. 회원가입은 핸드폰이 있는 성인의 경우 본인의 신분증과 핸드폰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인증하여 회원증 발급이 가능하지만, 어린아이의 경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어린아이는 인증절차부터가 까다롭긴 하다. 핸드폰이 있는 경우, 본인인증을 바로 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이핀을 통해서 본인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핀은 온라인으로 발급받거나 행복복지센터(주민센터)에서 발급을 해주는데 이 절차가 약간 번거롭다. 본인 인증을 통해 가입을 완료하더라도 카드 발급을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이 경우 아이들은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증명서가(가족관계, 의료보험증 등) 필요한데, 해당 서류들은 특별한 일 외에는 들고 다니지 않으므로 수고로움이 곱절이 되는 것이다. 사실 어린아이의 회원가입 절차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절차 중에 생략할 수 있는 것이나 자질구레한 정보 기입들은 모두 사서가 처리를 해주지만 본인 인증과 관련한 부분들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위험이 있어서 확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에 이런 이유들 때문에 생전 처음 도서관에서 욕을 먹어본 적이 있다. 7살가량 된 아이의 회원가입을 하기 위해 찾아오신 어떤 어머니. 데스크로 오셔서 아이가 회원 가입을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하냐고 물어보셨고,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분들은 방법과 절차를 친절하게 하나하나 모두 설명을 드렸다. 그런데 잠시 뒤, 회원가입용으로 자료실에 비치된 PC 앞에서 '아이 씨'하는 짜증 섞인 소리가 들렸다. 회원가입을 하는 부분에서 무언가 잘 안되었던 것인지 해당 이용자분께서 모니터를 보며 눈을 이글거리고 계셨던 것이다. 이후 데스크로 걸어오시더니 "하나도 제대로 안되거든요!?"라면서 우리에게 화를 내셨다. 당황스럽기만 한 나. 어떤 부분에서 막히시는 건지 여쭙고 싶었으나 해당 이용자분은 이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상태였다. 쉽게 풀릴 일은 아니겠구나 싶어 내가 빠르게 움직였다. "저 PC에서 제가 가입절차를 대리로 해볼 테니 따라와 주시겠습니까?"라며 해당 이용자분을 다독인 후에 회원가입 PC 앞으로 갔다. 알려주신 정보들을 넣고 회원가입을 해보니 너무나도 척척 진행되었다. 홈페이지가 다음으로 넘어갈 때마다 머쓱해하는 이용자. 나는 '그럴 수 있지' 싶은 마음에 "혹시 또 안 되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잘 되겠지 하는 마음에 안심을 하던 찰나,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용자는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이후 쾅- 소리를 내며 자료실 밖으로 씩씩거리며 나갔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며 도서관이 엉터리라며 험담을 시작하셨다. 나와 직원들은 유리문 밖에서 들려오는 그 모욕적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저 꾹 참을 수밖에 없었고 들어오시면 다시 안내를 해드려야겠다며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 이용자분은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분과 함께 자료실로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아내분께서는 팔짱을 낀 채 옆에 서있고 남편분은 데스크 코앞까지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삿대질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 X발 회원가입을 그냥 대충 해주면 되지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놨어! 어!?" 순간 자료실 안의 분위기는 빙하기가 찾아온 듯 차가워졌다. 부산스럽던 공간은 온데간데없고, 책을 보던 아이들은 물론, 함께 온 어른들까지 그 욕지거리를 내뱉은 부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도 화가 났지만 곁눈질로 내 옆에 앉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190cm 중반의 키에 우람한 체격을 가지고 있던 선생님. 평소에는 온화하게 웃으면서 "괜찮아요~"라는 말을 연발하던 선생님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선생님은 자리를 박차고 번뜩 일어섰다. 거대한 비석 하나가 갑자기 바닥에서 솟은 것 같은 웅장함. 선생님은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보시죠."라며 전투태세에 들어갔음을 알렸다. 우리를 내려다보던 그 남편분의 눈은 어느새 선생님의 키높이에 맞추어 올려다보는 지경에 이르렀고, 선생님의 박력에 기가 죽어버린 아내분도 눈치를 살 살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한동안 서로 눈이 마주친 상태로 지속되는 침묵.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은 부부 쪽이었다. "아니, 그 회원가입을 어렵게 해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라면서 눈을 내리까는 남편분. 여기서 화가 난 채로 더 들이받으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서 나는 힘이 잔뜩 들어간 선생님의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여기는 제가 마무리할게요'라는 시그널을 보낸 뒤 다시금 그분들과 회원가입 PC로 가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나는 주눅이 잔뜩 들어버린 그 이용자분들의 모습에 통쾌하기는 했으나 혹시나 집에 돌아가서 민원을 남기지는 않을까 살짝 염려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며칠이 지나도 민원은 없었고, 우리는 해당 도서관에서의 근무가 끝날 때까지 이때의 일을 회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위의 이야기는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어난 특이한 케이스이며 이밖에도 회원가입과 관련한 일로 이용자분들께서 이런저런 짜증들을 많이 내신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은 미리, 그리고 좋은 말로 사서에게 부탁을 하면 회원가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꺼냈음에도 사실 여러 가지 일들로 사서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글에 모든 하소연을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착한 손님들이고 오히려 타인에게 과할 정도로 친절한, 지성인이라는 것을 아니까. 아마도 불청객들은 이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 앞으로도 쭉 자신의 행위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로써 오늘의 나를 달랜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나는 삐죽삐죽 솟아나려는 내 안의 나와 진검승부를 치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