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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Oct 28. 2021

바리스타 (2편)

 커피와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해서 손이 익어갈 즈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한 최종 단계인 실기시험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계도 컵들도 너무나도 익숙했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손끝이 떨려왔다. 심사위원은 총세분이 오셨고, 원장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주방 바로 뒤편. 카페로 치면 주문을 받는 카운터와 같은 형태의 탁자에 나란히 앉으셨다. 나의 개인정보와 사진이 붙여진 종이를 스윽 한 번 보시더니 가운데 앉아계신 분께서 본인 확인을 위해 내 이름을 부르셨다. 약간은 형식적인 절차. 떨리는 나의 눈을 한번 쳐다보시고는 "준비됐으면 시작하세요."라고 신호총을 발사하셨다.


 정해진 실기 절차대로 나는 실제로 손님을 응대하는 것처럼 처음은 쟁반에 물과 컵을 담아 서빙을 했다. 넘치지 않게 물을 적당히 붓고 심사위원분들 앞에 놓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 배점은 낮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듯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었다. 이후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하신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라며 대사를 한 후 메인 평가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심사위원들의 눈은 매서웠다. 점검하고 실행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보며 바쁘게 펜을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머릿속으로 순서를 생각하며 기계의 상태를 점검하고, 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예열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작 커피 두 잔을 준비하는데도 나의 발걸음은 정말 분주했다. 기계 앞과 그라인더 앞을 오가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행동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작업. 제한시간 내에 커피들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기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실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유난히 길었던 3분. 나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완성했다. 물론 컵에 옮겨 담으면서 얼룩이 지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하며 심사위원들 앞으로 서빙을 했다. "주문하신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나의 대사가 끝나자 흘러가던 초시계를 정지하는 심사위원들. 기준표와 초시계에 적힌 시간을 번갈아보던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앞에 나온 에스프레소의 추출양. 향기. 맛 등을 확인하였고, 아메리카노에는 온도계를 꽂아 온도와 크레마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유심히 채점을 하는 동안 나는 다시 "다음은 카페라테 한 잔과 카푸치노 한 잔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실기 시험의 마지막이자 정수인 라테류 커피 만들기. 이번에는 아메리카노를 만들 때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제한시간은 조금 더 길지만 직전에 커피를 만들어낸 포타 필터의 청소와 스팀 압력들을 조절하는 작업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에스프레소를 뽑아낸 포타 필터를 청소하고, 추출구에서 아래로 떨어진 커피 방울들을 닦아 내었다. 그리고는 다시 라테에 들어갈 에스프레소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두 잔의 검은 액체가 준비가 되고 나는 피쳐에 우유를 부어 스팀밀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도 이 앞에서 우유에 스팀을 쳐봐서 알지만 스팀밀크는 수증기가 들어가고 순환시킬 때의 소리만 들어도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콰과각'소리 나 '슈르릅'하는 소리는 추출구가 너무 표면에 가깝거나 잠긴 상태라는 것을 뜻하므로 최대한 '샤라락'하는 소리가 나게끔 조절하여 수증기 레버를 돌렸다. 소리는 일단 성공. 뒤에서 심사위원 한 분이 "오~"하며 감탄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살짝 자신감이 붙은 나. 수증기 때문에 피쳐를 타고 손 끝이 뜨거웠지만 아직 스팀밀크는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거의 손이 데기 직전의 온도. 그 느낌까지를 계속 기다려야 했다. 점차 하얀 거품이 조밀하게 차오르고 자판기 우유의 냄새가 살짝 코를 터치할 때쯤 나는 서둘러 레버를 정지 방향으로 돌렸다.


 피쳐에 담긴 스팀 밀크는 성공적이었다. 다만 라테와 카푸치노는 지금부터였다. 두 개의 피쳐를 사용하여 한쪽에는 우유가, 또 다른 한쪽에는 우유 거품이 담기도록 분리를 해야 했다. 주둥이를 과하게 기울여 부으면 내용물 전체가 왈칵 쏟아지기 때문에 와인을 부을 때처럼 미세하게 우유가 흘러나오도록 조절했다. 라테 한 잔과 카푸치노 한 잔이 딱 나오게끔 만든 것이기에 손에 느껴지는 무게로 분리를 하고 제조에 들어갔다. 먼저 라테는 우유는 아래로 잠기게끔 하고 에스프레소의 크레마가 갈색으로 올라올 수 있게끔 섬세한 조절을 했다.(사실 그냥 우유를 왕창 붓고 숟가락으로 섞어도 라테 맛은 난다. 하지만 지금은 시험이니까.) 쪼르륵 소리를 내면서 검은 에스프레소 아래로 잠기는 우유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유는 에스프레소를 들어 올리며 커피를 갈색으로 변화시켰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라테. 이제 남은 건 카푸치노였다. 카푸치노 역시 우유 거품을 그냥 부어버리면 되지만 그렇게 하면 위쪽에는 하얀 거품만이 가득 차게 된다. 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모양과 비율. 본래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후드가 달린 원피스에 흰색 모자를 쓴 수도사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나온 것이기에 그와 비슷하게 만들어야 했다. 가운데에는 흰색의 거품이 둥글게 나오고 그 옆으로 고리 모양으로 크레마가 섞인 갈색의 거품이 나오게 하는 것. 여기에는 컵을 적당히 기울이고 섬세하게 우유 거품을 붓는 작업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우유를 부었음에도 모양이 드러나지 않아 살짝 당황했지만 3초 정도 뒤 서서히 가운데로 차오르는 거품에 쾌재를 불렀다. 여기서 손이 떨리면 둥근 모양이 망가지기에(흔히 말하는 라테 아트는 이 과정에서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린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 한 방울이 나올 때까지 손을 고정했다. 완성된 두 잔의 커피를 내어가자 심사위원들은 커피 윗부분의 모양과 거품의 깊이, 층별로 커피와 우유, 거품이 고르게 나뉘었느지 등을 확인하고 채점을 하였다. 나는 채점이 진행되는 동안 다음 사람을 위해 다시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무리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멀뚱히 서있으니 심사위원분이 "고생하셨어요. 잘하시네요."라며 내게 말을 건네시고는 "자 다음 시험자분"이라며 사람을 불렀다. 나는 그 순간 쌀포대처럼 쌓여있던 어떤 무게감에서 해방되는 것이 느껴졌다. 대기장소로 돌아가자 함께 시험을 준비했던 분들과 원장님이 "흠잡을 데 없이 잘했다."라며 격려를 해주셨다.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 뒤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받아보게 되었고 커피에 관한 노력은 여기서 끝내게 되었다.


 자격증을 따자 커피에 관한 질문들이 친구들과 지인들의 입에서 쏟아졌다. '커피 맛이 다르게 느껴지냐?'라는 것이나 '여기 카페에서 만든 커피 맛은 어떠냐?'와 같은 자질구레한 질문들. 그런데 사실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유명 레스토랑의 요리사도 집에 돌아오면 입맛이 그렇게 까탈스럽지 않은 것처럼 나는 그냥 커피를 조금 더 알게 된 것일 뿐, 다 이해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커피를 몰랐을 때보다 말을 더 아끼게 되었고 주변 사람의 질문에 "느끼는 건 너나 나나 다 비슷하다. 자기한테 맞는 커피가 그냥 좋은 거다."라고 짧게 답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커피맛을 제대로 구분하고 원두의 특별함을 느끼는 것은 커피 커핑(coffee cupping)이라는 기술을 통해 할 수 있는데, 커핑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사실 엄청 큰 차이는 못 느끼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나는 가끔 커피를 한 잔 하면서 과거의 일을 추억하곤 한다. 커피 한 잔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수 있구나 하며 나를 다잡게 된다. 가끔 이 경험 때문에 카페를 하는 친구가 "커피 만들 줄 아니까 네가 만들어서 먹어라."라고 냉대했던 것에 대해서는 가슴이 좀 아프지만, 어쨌든 커피에 대한 지식이 늘어서 전보다 행복해졌음에는 틀림이 없다.(커피는 남이 타 준 게 맛있다.) 다음에 나는 무엇을 도전하고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하니 잊혔던 두근거림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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