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다 Mar 18. 2022

성격은 돌고 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서로가 가진 성격이나 특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별자리나 혈액형, 12개의 띠 등으로 사람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관상이나 손금 같은 것으로도 운세와 성격을 판단하기도 했다. 그런 관심사는 어느 시대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요즘은 MBTI라는 방법이 유명해졌다. TV나 SNS, 유튜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MBTI는 서로의 성격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같은 유형들끼리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어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성격과 관련해서 보통 사람들은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처럼 한 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직 굳지 않는 나무의 줄기는 어디로든 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성격 역시 경험이나 노력에 따라서 계속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나도 어린 시절부터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뜻밖의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유턴을 하듯 성격이 각양각색으로 변해왔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던 시절의 나는 굉장히 외향적이었다. 처음 같은 반이 된 친구를 보더라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거나, 함께 하면 좋은 놀이들을 친구에게 제안하는 것을 좋아했다. 등교를 할 때나 방과 후에 친구들을 꼬셔 축구나 농구 등을 즐기기도 했고, 주말에는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서 놀거나 뒷산으로 모험을 다니는 등 또래 아이들보다 활발하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운동을 자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육특기생으로 뽑히기도 했고, 친구들 앞에 나서는 행동을 많이 해서인지 리더십도 생겨 거의 매년 학급 반장이나 부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처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기만 할 것 같았던 내게도 성격을 보완해줄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학교에 새로운 도서관이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후화된 학교를 개선할 목적으로 학교에서는 지원금을 받아 아예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되었는데, 이때 생겨난 도서관은 100m 달리기를 해도 될 만큼 커다랬다. 나는 당시 책이 좋은 것보다는 넓은 실내 공간을 뛰어다니는 것이 재미있어서 도서관을 자주 찾게 되었고, 이것이 책과 가까워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중학생으로 진학을 하면서 나의 성격은 조금 더 활발해졌다. 처음 1학년이 되던 시기에는 매일 보던 친구들이 아닌 시, 군 각지에서 온 낯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했기에 조금은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으레 아이들은 같이 뛰어놀다 보면 친해지게 되어있듯이, 체육활동을 하고 쉬는 시간에 주로 농구를 함께 하다 보니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에 친구들과 내가 얼마나 농구에 열정적이었느냐 하면, 토요일만 운영하는 체육관의 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7시부터 집을 나선 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5시까지 거의 반나절을 농구에만 매달릴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 외적인 활동에만 모든 신경을 쏟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1학년 시기 학교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국어 선생님께서 나를 독서부로 편입을 시키신 것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쨌든 내가 도서 부니까 도서관에 자주 와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셨고, 그 덕분에 나는 맑을 때는 밖에서 농구를, 비가 오는 날에는 도서실로 가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독서부로 있는 동안 국어 선생님께서는 틈틈이 시를 읽는 방법이나 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때 들었던 내용들은 지금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당시에 나는 선생님을 뵐 때마다 그냥 국어를 전공하신 분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지역 문인회 회장까지 역임하고 있는 작가셨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향적이었던 성격이 매우 내향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갑자기 성격이 바뀐 이유는 바로 고등학교 진학과정에 있었다. 나는 중학생 시절 일주일 중에 거의 매일을 동고동락하던 친구들과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전에 우리끼리 모여 '어떤 고등학교로 가자'라는 식에 협약(?)을 맺어놓은 상태였는데, 해당 고등학교의 입학 정원이 초과되었던 탓에 이상하게 나만 그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외로운 섬처럼 홀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나는, 왠지 모를 억울함과 친한 친구가 사라졌다는 슬픔에 성격을 바꾸게 되었다. 중학교 사놓고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두꺼운 뿔테안경을 끼게 되었고, 좋아했던 농구를 그만두게 되었으며, 쉬는 시간이면 그저 말없이 책만 읽게 되었다.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모난 돌처럼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던 탓일까? 당시 아이들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무서워했는데, 시간이 지나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그때의 나는 옆에서 떠들거나, 실수로 건들면 때릴 것만 같은 이미지였다고 한다. 여하튼 2학년이 되면서 친구도 조금 생기고 성격도 적당히 말랑말랑해지긴 했으나 그동안의 행동 덕분에 내향적인 성격이 나의 주된 정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의 활동반경은 화장실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옆 반조 차 가지 않는 수준이었으며, 대화의 경우도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따로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기에 말수도 대폭 줄어들었다. 음침한 느낌이 가득해 보이는 고등학생 시절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대화 예절은 철저히 지켰던 탓에 학급에서는 '착한 사람'으로 불려 무난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던 시절에는 내향적인 성격이 더 심오해졌다. 다시 한번 친한 친구들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것이기에 조금은 방어적인 성격이 되었다. 대학교 특성상 휴학이나 군입대를 하면 서로 친해질 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1~2년 정도. 나는 적은 인원이라도 사람을 오래 보고 깊게 사귀기를 좋아해서인지 대학교 친구들과는 깊게 사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거기다 신입생이라는 이유로 뭐가 그리 강제로 집합시키는 것이 많던지, 개인적인 시간을 소중히 생각했던 당시의 나로서는 강제로 나의 시간을 뺐는 학과가 좋게 느껴질 리 없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아싸'처럼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1년 동안 친구를 사귀지 않고 혼자 생활했다.


 나이도 어느덧 스물이 넘었겠다, 더 이상의 성격 변화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의 성격은 다시 한번 신기한 형태로 변모했다. 때는 1학년 2학기가 끝난 겨울 방학. 기숙사의 짐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는데, 문득 '이번 1년 동안의 내 모습은 과연 옳았는가?' 하는 반성이 그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서로를 처음 만났기에 어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해지기 위해서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인데, 그런 용기 있는 행동에 나는 심드렁한 반응만을 보여준 꼴이 되었으니 질타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모르는 2학년 학기 중에는 친구들에게서 받은 선함을 돌려줘야겠다고.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어 첫 강의를 듣게 되었을 때, 나는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친구들과 마주할 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척 봐도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느낌에 아이들이 어색한 눈으로 쳐다보았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 스스로도 '역시 이렇게 인사하는 건 오히려 애들한테 부담이려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쯤, 나의 행동은 큰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나에게 어떤 수업을 듣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매일마다 다양한 그룹의 친구들이 점심을 같이 먹자며 연락이 왔다. 또 쉬는 날 모임이 있을 때나 놀러를 갈 때도 매번 나에게 시간이 되는지를 조심스레 물어오기도 했다. 혼자 있었던 시간이 길어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점차 나도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함이든, 미안함이든지 솔직하게 표현을 하고,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생 시절에 변화되었던 나의 성격은 특별한 변화가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군대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경험이나 직장에서의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긴 했지만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MBTI 방식으로 검사해보니 지금 나의 성격은 INFJ-A라고 나온다.) 지금 이 성격이 앞으로도 쭉 고정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일들은 수 없이 많을 테니. 물론 타인 또한 특정한 경험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착했던 사람도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거나, 반대로 악했던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 선해지는 단적인 예도 드문드문 보이곤 하니까.


 글을 마치며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까를 상상해보니, 조금은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가슴을 스친다.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나 스스로가 너무 재미가 없다는 확신이 드니까. 어떤 모습이든 간에 어쨌든 나는 언제나처럼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땅에서는 어떤 식물이든지 크게 자라듯이, 내가 좋은 사람이면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지 간에 적어도 나쁜 사람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