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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Mar 25. 2022

남자 사서로 살아가기

 점심때가 되면 왁자지껄해지는 학교 도서관. 오늘도 밀려드는 아이들을 응대하면서 무난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도서관을 자주 오는 씩씩한 목소리의 한 친구가 질문이 있다며 내게 다가왔다.


"쌤. 저 사서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돼요?"

"물론이지."


 오랜만에 들어본 사서에 대한 질문. 나는 사서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참 대견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엇을 물을지 나름 기대를 했다. '어떤 것이든지 친절하게 답변해주어야지' 하고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그 친구의 질문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원래 사서 쌤은 여자가 하잖아요?"

"...응?"

"그럼 쌤은 뭐예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버젓이 도서관에서 상주하는 나를 사서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물은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도 '사서를 보는 아이들의 인식은 이렇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곤 차근차근, 질문을 한 친구에게 나 역시나 똑같은 사서고, 자주 보기는 힘들겠지만 남자 사서도 존재한다는 식으로 답을 해주었다. 그 학생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실로 돌아갔지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질문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리곤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사람들이 남자 사서에 대해 낯설어하는 이유와 그런 시선 속에서 살아온 사서로서의 나의 삶을.


 어떤 인식이 자리 잡고 굳혀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분포에 오차가 적어야 한다. 따라서 '남자 사서는 어색하다.'는 인식이 생겼다는 것은 상당한 기간 동안 남자 사서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 수가 희박했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자 사서는 적을까? 이 물음의 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장 내 주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자들은 사서가 가지는 직업적 특성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하는 남학생부터가 적다. 학과에 50명의 정원을 뽑는다고 치면 남학생의 수는 4~5명 남짓. 내가 있던 기수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10명의 남학생이 입학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비율로 치면 20%가 채 되지 않는 안타까운 수치다. 이 학생들이 모두 사서를 직업으로 택한다면 간간히 남자 사서의 인식도 커졌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안타깝게도 학과를 졸업해서 사서 일을 하는 남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확실한 근거를 하나 들자면 함께 입학한 10명 남학생들 중 지금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 혼자 뿐이니까.


 어째서 남학생들은 사서로 취업하지 않는 것일까? 학과를 시작하면서부터 졸업을 한 이후까지 쉬지 않고 찾아오는 시련들은 대부분의 남자 사서를 떠나가게 한다. 우선 고등학생 시절 단순이 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문헌'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과를 선택한 친구들은 무언가 자신이 원했던 학문이 아니라는 생각에 전과를 선택한다. 그리고 남은 남학생들 중 절반은 도서관의 비전이 그리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일찍 사회로 뛰어나간다. 이렇게 걸러지고 남은 소수의 남학생은 끝끝내 졸업을 선택하게 되지만 도서관 등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떠나간다. 그 이유는 생각했던 것만큼 임금이 많지 않다는 것과 도서관의 대부분이 계약직으로 사람을 뽑기 때문에 지속해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고용 불안정성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사서를 뽑는 도서관이 적다던가 이미 경력이 가득한 베테랑 사서들에 밀려 면접은커녕 서류 전형에서 조차 선발되지 않는다는 것도 갓 졸업한 남자 사서가 도서관을 기피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 역경들을 뚫고 운 좋게 사서를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험한 길을 돌파했으니 이제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지만 남자 사서로써의 나의 첫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공공도서관 계약직으로 시작한 첫 사서 업무. 어찌 보면 시작으로 무난하게 보일 수 있으나 내게는 이때가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다. 함께 일했던 어떤 공무원 때문에 사서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수십 번이나 했었으니까. 보통 대학생도 1년 간 휴학을 하면 전공 지식을 많이 잊게 되고, 직장인도 긴 휴직에서 돌아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버벅거리지 않던가? 나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2년 반 동안 군대를 다녀왔기에 당연히 전공 지식의 대부분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나의 부족함을 알았고, 가르쳐 주는 게 있으면 겸손한 자세로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직원들을 대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힌 그 공무원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마주한 순간부터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업무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내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면 그 사람은 대뜸 나에게 "대학교 졸업한 거 맞아요?"라거나 "전공 제대로 배운 거 맞아요?"와 같은 인신공격을 쉼 없이 쏟아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있는 사무실에서 내가 한심하다는 듯 크게 한숨을 쉬거나, 모든 사람이 듣게끔 빈정대는 말을 내뱉으면서 나의 자존감을 미친 듯이 깎아내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군대를 포함해서 거의 3년 동안을 전공과 척을 지기도 했고, 이제 막 업무를 시작한 사람인데 조금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항변을 하고 싶었으나 첫 근무지에서부터 사고뭉치로 소문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매일 내 마음을 억누르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이 사람은 화장실 한 번 안 다녀오고 4시간 동안 일하고 있는 나에게 와서 "아직 이것밖에 못했어요? 점심시간인데?"라며 비꼰다거나 업무 교대시간을 교묘하게 속여 내가 점심 먹으러 가는 것을 방해하긴 했지만 나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었다. 이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벗어나서도 급한 일이라고 해서 뛰어갔더니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사무실에 출현한 벌레를 잡게 시킨다거나, 무언가 힘쓰는 일이 있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불러내어 잡부처럼 일을 시키는 것도 나를 회의감에 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노이로제에 걸릴 만큼의 괴롭힘과 업무량을 1년간 꾸역꾸역 버텨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단단해졌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가끔 유난스러운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웬만큼 모난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면 항상 웃는 모습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내가 변해도, 시간이 흘러도 남자 사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남자 사서가 있네?'라는 시선도 그대로였고, '남자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생각도 그대로였다. 도서관에 택배가 온다거나 물품들이 새로 들어오면 쉬고 있는 직원이 많은데도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물건을 옮기라는 지시를 했고, 컴퓨터나 기계들이 고장 나면 나를 불러다가 수리하게 만들었다. (못질, 망치질을 해야 하는 잡무 등도 나를 시켰다.) 사실 이런 일들이야 조금만 집중하면 금세 해낼 수 있는 일이라 별 억울함 없이 넘길 수 있지만, 정말로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다른 사서들의 태도였다. 나 혼자 일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함께하면 금방 끝나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그들은 모른 척, 안 보이는 척을 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휴식을 즐겼다. 또 땀을 뻘뻘 흘리고 와도 잠시 쉬었다 하라는 말조차 없이 (괜히 자신들이 업무를 조금이라도 더 하게 될까 봐) 내가 해야 할 업무를 나열하며 나를 바로 업무에 투입시켰다. 물론 배려심이 있는 몇몇 사서 선생님들의 경우 내가 맡은 업무를 쪼개어 대신해주신다거나 "고생했어요."라며 격려해주시긴 했지만, 상당수의 이기적인 사서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힘듦만을 생각하는 태도를 보였기에 나를 한숨짓게 했다.


 지금껏 내가 겪었던 몇몇 이야기들을 풀어냈지만 그 당시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게다가 지금은 학교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삶의 만족도를 찾아가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물론 여기서도 사서를 보는 것이 드물고, 남자 사서는 더욱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선생님들이 많아 어깨를 으쓱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실에 가장 먼저 미소를 짓는다. 남자 사서가 낯선 사람들에게 사서는 어떤 일을 하고, 남자 사서가 적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니까. 아득한 미래가 되겠지만 나는 과연 언제까지 사서 일을 하게 될까? 나는 오늘도 이런 고민을 하며 '사서'라는 편견의 최전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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