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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Apr 12. 2022

기억에 남는 사람


 늦은 저녁, 친구네 집에서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한 친구가 조용히 나를 불러내었다. 불이 꺼진 방처럼, 가로등 불빛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 앞 골목. 친구는 감상에 젖은 듯 물끄러미 하늘을 보다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해 보면 내 멋대로 불러낼 때가 참 많은데, 매번 싫은 소리 없이 이렇게 우리 집에 와줘서 참 고맙다."


 나는 친구가 분위기를 잡았던 이것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되려 불러준 것에 감사하며, 친구를 다독였다. 그러나 친구는 무언가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지 또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나 같은 놈이 친구면 바로 손절할 것 같은데, 너는 무슨 이유 때문에 계속 나랑 친구로 살고 있냐?"


 나는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몇 가지의 생각이 얼핏 떠올랐으나, 굳이 지금 복잡한 이야기를 할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혼잣말처럼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야,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이 기억에 남는 줄 아냐? 그냥 머뭇거리거나, 평범하거나, 친절하기만 한 사람은 기억에 안 남는다. 너처럼 예상치도 못한 시간에 전화해서 멋대로 불러내고, 만나면 또 오랜만에 본 것처럼 반겨주는 사람이 누군가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기 마련이다. 너는 나한테도 그렇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렇고 항상 기억에 남는 사람이니까 네 옆에 매번 사람이 있는 거다."


 나의 말이 끝나자 친구는 나를 쳐다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무언가 쑥스러웠던 것인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나는 쓸 때 없이 또 말을 길게 했구나 하는 마음에 '아차!' 싶었지만, 우리가 자리를 꽤 오래 비웠다는 것을 깨닫고는 친구를 이끌어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후 나는 침묵하며 스스로에게 말을 줄이자고 반성을 했고, 그 친구는 평소보다 과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을 칭찬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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