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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ul 04. 2022

저희 이상한 사람들 아니에요

 장교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에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친한 동생(병사)이 있었는데, 마침 휴가 일정이 나와 겹치게 되었다. 그 친구는 휴가를 나가기 며칠 전부터 나에게 "장교님, 저 여수에 사는데, 휴가 때 괜찮으시면 놀러 오십시오."라고 선뜻 제안을 해주었다. 나는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사양을 했지만 그 친구는 아주 적극적으로 초대 의사를 표현해주었고, 더 거절하는 것은 실례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결국 여수로의 초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휴가를 나온 지 이튿날 오후. 나는 여수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초여름 오후의 햇살은 지나치는 강물들을 반짝이게 만들었고, 창밖으로 뉘엿뉘엿 보이는 여수의 도심을 황홀하게 비춰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동생은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고, 나 또한 "역시, 너는 사복을 입으니까 인물이 확 살아나네."라며 멋쩍은 인사를 건넸다.


 이번 방문이 아니더라도 두어 번 혼자 여수를 방문한 적이 있기에, 동생은 내가 알고 있는 곳을 제외하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여수의 숨겨진 명소와 관광지를 소개해주었다. 사실 나는 그전까지 여수의 볼 곳은 다 돌아보았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알려주는 장소들을 직접 가보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여수는 정말 새발의 피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쁜 곳들이 많았다. 해가 진 저녁의 여수는 다시 한번 낭만으로 물들었는데, 해양공원을 쭉 걸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중간중간 마술이나 독특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또 바닷가의 낭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포장마차도 여럿 있었던 터라,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았다. 나는 내가 느낀 점이라던가 놀라운 것들을 나열하며 여수의 풍경을 칭찬했고, 동생은 별거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는지 더 열정적으로 주변의 모습을 설명해주었다.


 여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우리는 번화가로 향했다. 여수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몇 개의 장소가 있는데, 동생은 자신이 친구들이랑도 자주 가고, 또 맛집도 많은 어느 번화로 나를 이끌었다. 동생이 추천하는 식당에서 술 한 잔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사이 시간은 또 밤 10시를 가리켰고, 나는 너무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자리를 마무리를 했다. 계산을 마치고 주변의 숙박을 할 만한 곳이 어디 있을지를 찾고 있는데, 동생이 스윽 다가와서는 "형님, 우리 집에 가서 주무시죠?"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오늘 이 친구가 시간을 내준 것도 너무 고마운데, 더 민폐를 끼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동생에게 "바로 앞에 숙박되는 곳 있으니까 괜찮다."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동생은 집에도 다 이야기를 했다느니, 지금 안 쓰는 방이 있어서 그냥 오면 된다느니 하며 권유해주었다. '진짜 괜찮다'라고 말하는 나와 '그냥 오면 된다'는 동생의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고, 결국 나는 거듭 고맙다 말하며 동생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 있던 번화가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를 걷자, 높은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아파트 옆면에는 누가 봐도 알만한 유명 건설사 마크가 새겨져 있었으며, 한눈에 봐도 이곳이 좋은 아파트임을 알 정도로 공원의 장식이라던지 도보길이 잘 닦여져 있었다. 실제로 집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예상대로 집이 엄청나게 넓었는데, 집 안에 긴 복도가 있다는 게 너무도 신기했고(정말 달리기를 해도 될 정도로 길었다.), 동생은 복도를 따라 나있는 문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어떤 방이고, 누가 쓰는지를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안내받은 방 안으로 들어가 짐을 정리했는데, 몇 분 뒤 동생의 어머니가 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관으로 나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동생은 나를 같은 곳에 있는 군부대 간부라 말하며 간략하게 나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나는 거실에 오래 머무르고 있으면 부담이 되실 거라는 생각에서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동생 어머니께서 나에게 맥주 한 잔 어떠냐며 나를 부르셨다.


 가정 방문을 온 선생님이 된 듯한 기분. 거실에 놓인 네모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는 조용히 잔을 채웠다. 동생은 워낙 예의가 바르고, 부대 안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남다른 친구였기에, 처음에는 내가 불편할까 봐 어머니의 권유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자 동생의 어머니는 "그냥 너 군생활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하는 건데 뭐?"라며 동생의 제지를 가볍게 쳐내시고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나에게 건배를 제의하셨다.


 군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동생의 군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자 자리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워낙 그 친구가 군생활을 성실하게 했기에 내가 느낀 그대로 칭찬 아닌 칭찬을 하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잘 지도해줘서 고맙다며 연신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셨다.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무렵, 동생의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디서 사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나는 몇 개월 정도 대전에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경상도에 있었기 때문에(군생활도 경북지역) 간단히 부산에서 왔다고 말씀드렸는데, 나의 말이 끝나는 순간 어머니께서는 살짝 침울한 표정과 함께 "그렇군요..."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나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실까 잠시 고민을 했으나 전혀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이어서 나는 분위기를 조금 띄워보고자 하루 동안 느낀 여수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서 떠들어대긴 했지만 자리의 온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왜 침울해하시는 걸까를 고민하며 동생과 내가 눈치를 살피던 사이, 동생의 어머니께서는 잠깐의 침묵 끝에 무언가를 다짐하신 듯 맥주 한 모금을 하시고는 혼잣말을 하듯 말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장교님, 저기 그... 저희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 아니에요."

 

 나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무슨 말을 하시는 걸까 하는 생각에 갸웃했다. 그리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그게 지역감정과 연관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말았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과 동시에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한동안 멍함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나는 그 순간이 오기까지 사실 지역감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지역별로 구분 짓는 것이 터무니없다 여겼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를 경계했다. 그래서 나는 지역감정이란 그저 옛일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동생의 어머니께서는 살아오면서 스친 경험들이 있었기에, 마음 한편에 계속 지역감정에 대한 우려를 간직하고 계셨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의 내 마음엔 깊고 깊은 죄송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갑자기 정적을 이끈 말 한마디에 옆에 있던 동생 또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엄마, 장교님 그런 생각하시는 분 아니다!"라면서 다급히 대화를 수습하려고 했고, 고개를 돌려 자신이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듯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연신 지어대었다. 나 또한 진심을 다해서 답변을 드렸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거라면서. 동생의 어머니께서는 나의 대답에 엷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셨고, 동생은 다급하게 손을 휘둘러 후다닥 자리를 정리해버렸다.


 그날 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가 무언가를 한 게 아님에도 미안한 마음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한껏 낮아진 천장을 눈으로 좇으며 또 한 번의 반성을 했다. 내가 멀리한다고 해서 지역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또 누군가는 오늘도 지역감정 때문에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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