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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ul 07. 2022

글을 쓰면서 만난 사람들

 온라인 매체에 글을 써온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사실 이렇게 될지 몰랐다.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소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또래의 아이들 몇몇과 대화를 할 목적에서 게시물을 남긴 게 그 시초였는데, 그것이 점점 쌓이고 쌓였던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려고 하니, 하나하나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고 주제 또한 분류가 되어있지 않아 정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이윽고 나는 내가 쓴 것들을 저장하고자 SNS에 아무도 모르게 아이디를 하나 만든 후 내가 썼던 글들을 하나하나 저장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지금 나의 취미생활이 되어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SNS 계정의 첫 팔로워는 우리가 흔히 보는 광고성 글을 게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소통해요', '저에게도 놀러 와 주세요' 뭐 이런 댓글을 남긴 다음 휑하고 사라지는 이상한 사람들. 나는 처음 기록된 댓글을 보고 그 당시 크게 놀랐었다. 애초에 내가 가입했다고 소문을 낸 적도 없었고,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게시글을 남겼는데, 그 틈을 비집고 댓글을 남긴 것이 은근히 소름이기 때문이었다. 첫 팔로워의 충격이 있고 난 이후부터는 '그냥 신경 쓰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꿋꿋이 글을 썼는데,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것인지 점차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2년 정도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처음과는 다른 왁자지껄한 계정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보통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도 별다른 표식을 남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끔씩 좋아요를 누르고 가거나 친구들을 태그 해서 댓글에 자신들의 아이디를 남겨놓는 것이 전부였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평온하기만 한 상황에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핸드폰에 특이한 알람이 울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알람을 따라가 보니 누군가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안내글이 적혀 있었고, 대화창을 열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가 확인해보니 서울에 거주하는 어느 제과점 사장님이 보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까지는 자주 댓글을 써주시던 분이었는데, 잘 봤다는 말이나 자신의 감상을 남겨주시던 사람이라서 쉽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불쑥 메시지를 보내주시니 나는 무얼까 궁금해하며 메시지를 읽어보다. 


"그동안 써주신 글들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직접 만든 과자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순간 놀랐다. 그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의 글을 쓴 것뿐인데, 그것을 읽던 누군가로부터 감사를 받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완곡하게 거절을 하려고 했으나, 사장님께서는 취미로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친절하게 권유해주셨고, 나는 직장 주소(도서관)를 적어 보내어 같이 일하던 직원분들과 즐겁게 나눠먹은 기억이 있다. (커다란 과자 하나에는 분홍색과 흰색으로 '그리다 작가님께'라고 써져있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던 나머지 그 과자를 앞에 놓고 몇 번이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이 메시지를 받고 난 이후에도 한두 명씩 메시지를 보내주시기 시작했는데 학생분들은 연애 관련 상담을 주로 보내왔다. 길게는 2년 가까이 상담을 이어간 적이 있는데, 학생 특유의 순수함과 고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외에는 음악을 하시던 분이 내가 쓴 글을 가사로 써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었고, 어느 병원에서 홍보용 글귀로 쓰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낸 경우도 있었으며, 때때로 독서모임의 팀장으로 초빙하고 싶다는 메시지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또 기억에 남은 사람이 있다면, '그저 읽어만 주셔도 좋습니다.'라며 이메일로 아직 출시도 안 한 시집을 보내주셨던 어느 감성 깊은 시인과, '제 책을 소포로 보낼 테니 편하실 때 서평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어느 문학 관련 단체의 직원분이 있겠다. 기타 캘리그래피를 하시는 개인이나 학원 원장 선생님들께서 글을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시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가게 홍보용으로 글귀를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매번 흔쾌히 허락을 하곤 했다.   


 물론 앞서 말한 수익과 관련 없는 상황들 외에도 직접적인 수익과 연관이 되는 제안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액자를 제작해서 파는 사장님이 나의 글을 액자에 담아서 팔아도 되는지 문의를 하는 경우를 시작으로, 감성 글을 주제로 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에 대한 협업 제안. 신간을 홍보해주면 건당 얼마씩의 비용을 주겠다고 하는 출판사 담당자의 제의도 있었다. 기타 문학 작품 전시회를 하는 곳에서 내게 좋은 작품을 선정하여 제출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제안이라던가, 모 대학교에서는 홍보효과가 클 것이라는 말을 하며 졸업식에 내가 쓴 책 몇십 권을 협찬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개는 수락을 한 것이 있고, 몇 개는 계획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거절한 것이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이 수익을 불러들이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글을 오래 써오면서 항상 행복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통 나는 글을 남기는 것을 제외하면 SNS를 탐색하거나 활용하지 않는데, 우연히 나의 글을 그대로 가져다 쓴 글을 보고선 실망한 적이 있다. 애초에 나는 글을 쓸 때 항상 오른쪽 아래에다가 작은 글씨로 필명을 남긴다. 글 밑에다가 필명을 커다랗게 쓰는 건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글에 온전히 집중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다가 필명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필명 부분만을 잘라내고, 글 사진과 설명글을 그대로 가져다 써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얌체 같은 사람을 보게 된 것이었다. 사실 그 게시물을 보고서 나는 너무 낙담한 나머지 글을 그만 쓸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지금은 우연히 이걸 찾은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이 사람 외에도 모른 척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밖에도 태그 하나 남기지 않고 멋대로 내 글을 가져가는 사람이라던가 쓴다고 말도 안 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게 되었는데, 저작권이라든지, 지적재산권 관련법이 강해진 현대사회에서 저 사람들은 과연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추억을 갈무리하고 기록을 정리하다 보니 당시의 고민들과 웃음, 그리고 눈물도 함께 떠오른다. 이전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무척이나 새롭고, 신비한 사람들이었기에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은 또 누가 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의 글이 누군가에겐 공감이 되고, 힘이 되어주었듯이 나는 모든 글에는 저마다의 힘이 실려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글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글을 써보고 싶지만 익숙지 않아서 펜을 손에서 놓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가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인상을 쓰며 남기는 글은 훗날 크나큰 행복을 선사해줌과 동시에 스스로를 빛나게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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