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다 Jul 11. 2022

중학생 연애상담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아질 나이기도 하고, 반년 뒤면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기 때문에 그럴까? 요즘은 아이들이 연애상담을 하러 도서관에 자주 온다. 다른 선생님들도 있는데 왜 이리로 오는지를 물었더니, 여자 선생님들께 말하기는 부끄럽고, 나이가 조금 있으신 남자 선생님께 질문하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서 나를 찾는다고 했다. 상담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 빼고는 대개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는 게 전부. 아이들은 이성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서로 열띤 토론을 펼친다. 가끔 논쟁을 할 때 튀어나오는 순수한 단어들에 피식 웃음을 짓기도 하는데, 이날은 문득 한 친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쌤은 고등학생 때 어떻게 지냈어요?"


 무언가 이목을 끄는 질문이 나오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궁금했던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글쎄, 나는 중학생 때 친했던 친구들이 전부 다른 고등학교로 갔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는 구석에서 조용히 책만 읽었던 것 같아."


 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실망을 한 듯, '우우~'하며 점잖은 야유를 보냈고 그중 한 명은 "그럼 쌤은 고등학생 때 "아싸(아웃사이더: 내향적인 사람)'셨네요?"라고 소리쳤다. 그것이 틀린 말은아니었기에 나는 "뭐,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웃으며 조용히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얘들아 너희가 고등학교를 가보면 느끼겠지만, 외향적이라고 해서 이성에게 엄청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내성적이라고 해서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게 아니야. 너희는 내가 '아싸'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나는 여자 애들이랑도 잘 지냈어."


 나의 말에 아이들은 서양문물을 처음 본 조선시대의 사람들처럼, 호기심과 부정적인 느낌이 반반 섞인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서둘러 나에게 "어떻게 그게 돼요?"라는 질문을 했다.


 "어디 보자... 처음에는 혼자 책만 읽으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긴 했지. 근데 당번이라던지 자율학습 같은 거 할 때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랑 짝을 짓게 되잖아? 그때 같이 있던 애들한테 친절하게 대했는데 그게 컸던 것 같아."


 아이들은 타인에게 건넨 친절이 왜 인연으로 이어지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눈빛이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몇몇의 얼굴에서는 '그게 왜?'라는 단어가 보일 정도였다. 나는 미어캣 같은 아이들의 모습에 짧게 미소를 지었다가 그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주기 위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 친구들도 처음에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는데, 친절한 모습을 보이니까 의외로 나쁜 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래. 근데 그 소문이 점점 퍼지다가 내가 괜찮은 놈인지 궁금해하며 다가오는 애들이 생겨났고, 한 명씩 이야기 나누다 보니 주변에 친구들이 늘어난 거지."


 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오~"라며 낮은 목소리로 감탄을 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법, 다른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이들은 턱에 손가락을 올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중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또 다른 아이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쌤, 그럼 착하게 대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나는 그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착함' 혹은 '친절'이란 베푸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또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다 무언가 여러 예시를 가져와서 말하는 것보다, 내가 그 시절에 했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과 노력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잘 캐치했던 것 같아. 그래서 각각의 아이들이 나한테 말을 걸어올 때면 그 아이의 특성에 맞게 칭찬을 했지. 예를 들면 미술을 잘하는 친구에게는 그림 실력을, 음악을 들려주는 친구에게는 음악에서 느껴지는 매력을, 그리고 꿈이 있는 친구에게는 걔가 가지고 있는 계획과 열정들을 칭찬했어. 그밖에는 숙제나 청소와 같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조금 더 고생한다는 생각으로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


 아이들은 내가 꺼낸 이야기에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호오~'라며 입을 벌린 친구도 있었고, 더 깊은 고민에 빠진 듯 인상을 찌푸린 아이도 있었다. 나는 설명이 어려웠나 하는 생각도 들고, 더 이야기하면 속히 '꼰대' 같은 느낌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게 될까 봐서 짧은 말로 빠르게 마무리했다.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서 굳이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뀔 필요는 없어. 너희의 성격이 어떻든, 좋아하는 게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장점과 매력을 있는 그대로 발전시키는 게 좋아. 그렇게 하다 보면 너희가 가진 색깔이나 느낌을 좋아하는 애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거야. 물론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건 기본이 되어야겠지?"


 잠시 뒤 수업 예비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우르르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가고 나서도 나는 내가 살짝 괜한 소리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행동을 곱씹어보았다. 조금 더 설명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냥 웃으면서 아쉬움을 털어내기로 했다. 내가 겪었고 헤쳐 나간 학창 시절처럼, 아이들 또한 때가 되면 저마다의 잠재력이 터져 나와 아리고, 헤픈 추억을 남겨갈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면서 만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