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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Aug 01. 2022

선생님의 회초리

 요즘은 학교 이야기가 뉴스에 많이 뜬다. 대개는 학생과 제자의 좋지 못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나 학생이 흉기를 들고 선생님을 위협하는데, 정작 선생님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과거에는 자신이 졸업한 학교, 자신과 함께한 동문을 자랑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성인이 된 후 졸업한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사진이 졸업 앨범에 남아서 평생 조리돌림을 당할까 봐 앨범 촬영을 거부하는 선생님들도 많아졌고, 아이들의 모진 장난을 버티지 못해 자진해서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나는 무언가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올바른 학교의 모습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나의 학창 시절 추억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나의 학창 시절은 요즘의 아이들과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장난기가 많았다. (사실 예전까지는 학창 시절을 점잖게 지냈다고는 여겼었는데 지금의 애들을 보니 나도 그 당시에 심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장난기를 다스릴, 선생님들의 무기 또한 다양했다. 청소시간에 쓰는 나무 빗자루를 쓰시는 선생님들부터, 기다란 밀대 자루를 붕붕 휘두르는 선생님들까지. 빈 교실에 놓인 회초리의 형태를 보고도 이번 수업의 선생님이 누구인지를 알 정도로 회초리는 선생님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대개는 이름이 없었지만 몇몇의 회초리는 '동방 신검'이라던가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는데, 그 네임드 회초리에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와 같은 특별한 이야기 또한 붙어 있어서 아이들에게 참 많이 회자되곤 했다.


 지금은 체벌이 금지되어 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쳐도 선생님들이 점잖은 말로 지도를 하시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그대로 회초리가 날아들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수업시간에 떠들면 선생님께서 "나와, 엎어"라는 딱 두 마디의 언어를 말하셨는데, 이 말은 아이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모르쇠로 일관하면 주변에 있는 애들까지 싹 다 앞으로 나가서 맞아야 했기에 반항을 길게 하지 못했다. 또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 어김없이 선생님께 회초리를 맞았다. 지금에서야 아이들을 화장실에 못 가게 하면 부당한 처사였다면서 선생님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로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안 가고 뭐했냐?'라는 인식이 당연했기 때문에 수업시간 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진짜 급한 애들은 얼굴에서부터 티가 났기에 선생님들도 꾀병이 아닌 것 같은 애들에 한해 융통성 있게 화장실을 보내주셨다.) 이외에도 틈만 나면 아프다고 한다던가, 수업시간에 태도가 안 좋다는 소문이 선생님들 사이에 나면 어김없이 맞곤 했다.


 이밖에도 학급의 아이 하나가 돈을 잃어버리면 범인이 나올 때까지 모든 학생들이 나와서 회초리를 맞는다거나 반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그걸 지켜봤다는 명목 하에 전원이 또 회초리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타 주말 자율학습 시간에 친구들과 몰래 분식집을 가거나 슈퍼마켓을 다녀왔을 때도 어김없이 선생님 앞에 엎드려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맞았는데도 친구들과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또 분식집을 갔다.)


 지금 와서 그때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그때의 회초리가 슬펐기 때문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때의 매는 추억이 있었고 가르침이 있었다. 지금은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면, 때린 이유는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때린 선생님을 매도하지 않던가? 하지만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선생님에 대한 미움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내가 회초리를 맞아도 내 잘못이니 여기며, 엇나간 행동들을 수정할 수 있었다.


 물론 부당한 체벌이라던지 부조리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두 팔 벌려 환영을 한다. 하지만 삭막해지고, 팍팍해진 학교의 분위기는 무언가 내게 커다란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고충 못지않게 선생님들의 고충 또한 만만치가 않다. 분명 한 학생이 말을 듣지 않고, 수업 시간에도 제멋대로 교실을 이탈해버리는 등의 사고를 쳤음에도 담임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오히려 그 학생이 "선생님이 자유를 침해한다."라며 자신의 부모님께 일러바쳐 학교가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시선으로 봐도 정말 사고뭉치인 애들이 보이는데도 그 잘못을 지도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 학생에게는 학생다운 모습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데, 선생님에게는 선생님 다운 행동을 하라는 것은 모순이 아니던가?


 이런 생각들을 써내려 가다 보니 참 많은 고민이 떠오른다. 체벌금지라는 명목 하에 도를 넘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그저 저렇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만약 체벌을 한다면 체벌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해야 할지를. 또 비단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가족에게서 예절을 배울 시간이 없다면 그런 사회적 구조 또한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다양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훗날 내 자녀가 그 상황을 맞이할 것을 상상해보니 선뜻 결론이 서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오늘따라 나는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었던 선생님의 회초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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