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도서관으로 들이닥치는 아이들. 나는 게임이며 만화며 각자가 좋아하는 주제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리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서 와", "좋은 아침이야"라며 인사를 건넨다. 서로의 얼굴도 알겠다 이제는 익숙한 자세로 인사를 받아주는 아이들도 있지만 때때로 "제 이름을 어떻게 외우셨어요?"라며 신기해하는 아이들도 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아놓으면 학생 수 만해도 수백 명이 넘어가는 공간.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저런 반응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오늘도 꿋꿋이 머릿속에 아이들의 이름과 특징을 눌러 담는다. 그 이유는 그저 다수를 향해 던지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통해 "내가 유일한 '너'를 반긴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부르게 된 것의 시작은 학창 시절로부터 기인한다. 보통 학교를 다닐 때는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의 별명을 부르면서 친근함을 표현하지 않던가? 안타깝게도 나는 나를 지칭할만한 뚜렷한 별명이 없었다. 내가 별명으로 불리지 않다 보니 나 또한 누군가를 별명으로 잘 부르지 않게 되고, 그런 방식이 굳어지면서 점차 이름을 부르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이후 예절이나 격식을 지키는 것을 선호하고 그 방법들을 배우게 되면서 어찌 보면 예의 바르게, 또 어찌 보면 나이에 맞지 않는 딱딱함을 유지하며 성장했던 것 같다.
이런 방식이 나름의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은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기업에서도 가끔 '김대리', '박 부장'이라고 사람을 부르듯, 군대에서도 사람을 직책으로 부르는 것이 흔했다. 보통 군수과와 관련되면 "야, 군수"라던가 인사과와 관련되면 "야 인사! 내 자리로 와"처럼 대충 부르며 호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직책으로 부르는 것이 편리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병사나 후배 간부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고수했다. (군복에는 각각 이름표가 달려있어서 이름을 외우기가 수월했던 탓도 있다.)
처음에는 병사들도 조금 어색해했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는 곳이다 보니 웃음보다는 짜증이. 존중의 말보다는 욕을 듣는 게 더 익숙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런 방식에 적응을 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병사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서 흔히들 하는 "야", "너", "저기", "인마"와 같은 말을 안 쓰게 되니 사용하는 어휘가 바뀌게 되고, 선로에 오른 열차처럼 자연스럽게 그에 어울리는 순한 언어를 즐겨 쓰게 되었다.
이렇게 갈고닦은 언어 습관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나보다 나이나 직책이 낮은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일하는 것이 평범해지는 환경. 어찌 보면 꼰대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동안 내가 사용해온 언어들이 나에게 '존중'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키며 바른 길로 이끌어주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나에 비해서 어리다는 것일 뿐, 그들 또한 사회에 나가면 언니, 오빠, 선배님이라 불리는 소중한 인격체가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보니 '미숙하다'라는 생각이 아닌 '특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도 겸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긍정적으로 변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나 말을 꺼내게 될 때 나를 지칭하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변화가 찾아왔다. 보통은 한 사람이 나이가 어린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서두에 이런 말을 많이 붙인다. "형이 말이야", "오빠가 말이야", "선배가 말이야" 등등. 하지만 나는 여태껏 이런 단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동생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몇 없다는 것도 있지만) 저 말들이 '나는 너보다 아는 게 많아.'라는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긴 하지만 내가 말을 할 때는 항상 "나는"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고, 이런 변화가 (지인들이 내게 해주는 말에 따르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화에서의 불편함을 약간 감소시켜주었던 것 같다.
글의 끝단을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학생들이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처럼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너희는 나에게 있어 그저 '아무나'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동안 이름을 잘 외우기 위해서 상대방의 특징들을 캐치하려 했던 나의 행동. 불필요하다 여겼던 그 습관이 이제는 상대방의 장점을 잘 느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장점이 되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이름을 부르고, 장점을 칭찬하고, 상대방의 말에 경청을 하는 일. 그것이 상대방과 나의 자존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나와 마주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을 선명한 목소리로 부른다. 내가 그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그 증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