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채찍과 당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말(馬)을 다룰 때 쓰는 요령에서 나온 이 말은 일상에서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때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이냐를 구분 짓는 말로 많이 쓰인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채찍이냐 당근이냐를 선택하는 비중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 글의 제목처럼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매번 일관되게 당근을 선택해왔다.
주변 사람들은 보통 조직을 관리하거나 인간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채찍을 선호했다. 유하게 하는 것보다는 강경하게 하는 것이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쉬웠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본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누군가가 보여주는 강경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무언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명확한 규칙의 제정과 그를 어겼을 때에 따른 처벌. 엄격함과 차가움만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볼 시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사람은 누구든지 나이가 들거나 직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 마련. 물론 스무 살 중반 시절의 나도 그랬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내가 유함을 택하게끔 하는 많은 이정표를 남겨주었다.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나와는 성향이 다른 어떤 간부가 있었다. 그 사람은 말을 듣지 않는 병사들을 모진 말로 질타하며 벌점과 징계를 통해 엄격하게 지도했다. 그 간부가 관리하는 병사들은 겉으로 보면 다른 집단들보다 계획된 일들을 미루는 일이 적고, 성과 또한 높았지만 무언가 시간이 갈수록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서 지친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불평불만이 곳곳에서 텨져나오기 시작했고, 반발심에 일부러 지시를 듣지 않으려는 병사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내가 그 간부의 행동을 지적하면 그 자체가 월권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느긋하게 차를 한 잔 권하며 그 사람의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애들은 좋게 말하면 절대 안 듣는다.", "해야 될 걸 안 하면 어떤 손해를 보게 되는지 제대로 느끼게 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취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은근한 말투로 "애들 사정 다 들어주면서 맞춰주다 보면 결국 애들은 나태해진다. 여기서 그러면 안 된다."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내가 지시를 하는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성과가 더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빨리 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공포심을 심어주지 않았다. "늦어도 괜찮다." 라던가 "일정을 며칠 더 늦출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너 지금 하고 있는 거 먼저 끝내고 이후에 천천히 얘기하자."라는 식으로 소속원들의 의견을 먼저 들으려고 했다. 또한 무언가 작은 일 하나라도 끝까지 해내거나 계획에 맞추어 진행하는 모습을 보이면 "잘했다.", "고생했다."라며 독려의 말을 건넸다. 물론 그렇게 시간이 흐를 때마다 주변에서는 계속 '늦다.', '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어차피 걔들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인데 해야 할 게 예정되어 있으면 어련히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들어 꿋꿋하게 내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런 내 진심이 마침내 아이들의 마음에 닿았던 것인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되어 나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점점 아이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일정이나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이어서 자신에게는 이런저런 일들이 남아있지만 최대한 빨리 끝낸후에 지시한 것을 완료하겠다고 말하며, 내가 추진하는 것의 일정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했다. 또 한때 내가 일처리가 느리다고 상급자에게 크게 혼나는 일이 발생하자, 이 사건을 어떻게 알았던 것인지 아이들은 나에게 (자신들 때문에 그리 된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점점 더 꼼꼼하게 업무를 하려고 했다. 책임감 혹은 죄책감이 그들의 안에서 원동력이 되어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일정이 미뤄지는 경우는 줄어들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모든 일정이 착착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들이 계속되자 구성원들끼리의 돈독함이 생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져갔다. 내심 아이들도 만족감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같이 있는 게 불편할 텐데도) 개인적인 모임이나 파티가 있을 때 나를 불러준다던가,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 자신들이 도와주겠다면서 우르르 몰려와 손을 빌려주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는 내가 일을 갑자기 더 잘하게 된 것도, 인품이 훌륭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채찍이 아닌 당근을 고집하면서 이루어진 결과들. (무언가 당근을 과도하게 먹여 질리게 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끈끈한 신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끼며 사람을 유하게 대하는 방식도 강경한 것 못지않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내 삶에 새기게 되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모든 만남과 모든 사건 등에서 이런 유함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다. 말랑말랑한 근육이 자리를 잡으려면 그 안에는 단단한 뼈가 있어야 하듯이, 유함이 있으려면 그것을 언제 사용할지에 대한 분별력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일에는 당근을 들되, 이기적인 것이 과하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채찍을 들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런 행동이 사회적인 통념상 결코 해서는 안될 '절대적인' 잘못이었기에 그리했다.
지금은 딱히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없기에(그런 사람을 일부러 옆에 두지 않는 것도 있고), 이런 둥글둥글한 자세가 확실한 내 얼굴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평소에 쓰는 말투 역시 달라져서,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지'로, 실패에 대해서는 '다음에 잘하면 되지'로 말하는 일이 잦게 되었다.
냉혹하고 쌀쌀맞은 세상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나의 당근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들을 설득하기보다 그냥 내 생각을 넌지시 이야기 해주곤 한다. 채찍질도 많이 하다 보면 결국 상처가 곪아서 죽는 것이라고. 무엇이든 과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해보고 싶다. 당신이 건넨 당근은 어떤 메아리로 돌아왔는지, 또 그로 인해 당신의 인생에서는 무엇이 가장 감사했냐라는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