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고등학교 수업을 들은 사람이라면 사람의 심리에 관한 내용에서 프로이트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융, 아들러와 더불어 심리학에서는 굉장히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프로이트는 분석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본능과 쾌락을 중시하는 이드(id), 합리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에고(ego), 도덕과 이상을 추구하는 슈퍼 에고(super ego). 나는 이 세 가지 중 슈퍼 에고의 비중이 높았는데, 그것이 내 연애세포를 갉아먹는 시발점이 되었다.
절제와 도덕심(슈퍼 에고)이 높아지게 된 계기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청소년 시기부터 나는 철학이나 심리에 관한 책을 좋아했고, 그에 따라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딱히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매력적인 이성이라도 눈에 담지 않으려는 마음.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이성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려는 마음. 요즘은 이런 일편단심을 고수하려는 사람이 인기가 없겠지만, 그때의 나에게 이런 행동양식은 단순한 선택을 넘어 무조건 지켜야 하는 신념이었다.
한결같은 성격 때문이었는지 20대 초반 무렵에는 비슷한 유형의 이성들과 인연이 있었다.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고, 서로에게 집중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 당시에는 '밀당(연인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벌이는 심리전)'이 꽤나 유행했는데, 나는 그 밀당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사과할 것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혜가 나에게는 더 큰 가치였다.
기회는 시련의 손을 잡고 나란히 온다고 했던가? 내 20대의 중반은 이런 기회와 시련이 가장 크게 들이닥친 순간이었다. 가장 많은 이성에게 대시를 받았던 시점이지만, 한순간의 다짐으로 내 연애세포를 스스로 죽여버린 가장 안타까운 시기였다.
장교 후보생이던 20대 중반의 시절, 한창 혈기가 왕성할 나이다 보니 나 또한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연애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서 체력단련을 했고, 일과 중 쉬는 시간은 물론 주말까지 무작위로 집합을 하다 보니 다른 것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때 연애를 하고 있던 동기들 또한 연락이 잘 안 되고, 데이트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와 틈틈이 싸웠기에, 나 스스로 '지금 연애를 하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저렇게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딱히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는 동기대로 정말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걸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보였고,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대로 당연히 서운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중 나는 결국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욕망을 따라서 연애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연애는 나만 행복하자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바쁘다.', '힘들다.'라는 말을 변명처럼 여자 친구에게 매일 하면서 상대방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올바른 연애관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런 결심이 서자 나는 곧장 이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애매하고, 추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확실히 구분이 될만한 기준을 잡고 이를 내 마음속에 새겼다. 그것은 바로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연애 따위는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
되게 심플한 생각이었는데, 소위 말해 이렇게까지 약발이 잘 들 줄은 몰랐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긴 자동차 마냥 이성에 대해 들끓던 마음이 그날 이후 쑥 하고 사라졌다. 이성을 보는 것이 마치 마트에 놓인 당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의 절제력과 도덕심(슈퍼 에고)이 이렇게까지 나의 다짐과 잘 결합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 느낌이 참 좋았다. 무언가 시선이 맑아지고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을 마주할 때도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보는 능력이 생겼고,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마음이 생겼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정욕이 제거된 듯한 느낌. 이성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자 나는 내 일상에 더 충실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하루와 감정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기뻤다. 하지만 이때 나는 준비했어야 했다. 이성에 대한 내 관심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군대에 가서도 사실 이성에 대한 필요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보통은 군인이 되면 이성에 대한 끌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환경적으로 나는 공감이 잘 안 되었다. 부대 주변 풍경이라고 해봐야 작은 동사무소 하나를 제외하고는 벼와 이삭이 전부였고, 영내에서는 일말 상초를 겪는 병사, 또 여자 친구 때문에 매일 밤 죽고 싶다 말하는 간부들을 달래는 일이 많았기에 사람을 안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더 심해졌다. 오죽하면 야간 순찰을 함께 갔던 운전병들이 "장교님 혹시 고자십니까?"라고 했을 정도로 그때의 나의 연애세포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전역을 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는 나의 감각이 무척이나 무감각해져 있었다. 나이도 적당히 어려서 이성에게 관심을 많이 받은 시기였는데도 마음이 삐걱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이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느껴지는데, 좀처럼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게 된다거나 엔도르핀이 상승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딱 어느 선까지의 친절만을 베풀고 있다는 느낌. 이때 나는 지금의 내가 조금 심각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의 변화를 추구했지만 몇 년 동안 녹슬어있던 감정이라는 자물쇠를 열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연애 말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다른 무언가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이성을 소개받아도 뭐랄까 사람이 뻔하게 느껴지는 경향도 있었다. 호감이 있어서 표현을 하면 연애를 하기 전인데도 밀당을 하려 한다거나, 나는 성숙한 연애를 원하는데, 상대방은 20대 초반에나 볼 법한 애매하고 가벼운 행실을 보여주니 내 입장에서는 실망하게 되는 마음이 더 컸다. 지금에 와서 명확해진 것이지만 20대 때 했던, 마음 졸이고, 궁금해하고, 복잡한 연애보다는 뭔가 솔직하고 편한 연애를 하고 싶어진 탓이었다.
하지만 이런 엇갈림에도 나는 상대방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너무 고지식해져 버린 나를 자책했다. 또 다들 그 나이에 맞고, 스스로가 바라는 연애상이 있을 텐데 내 형태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반성했다. 그리고선 처음으로 사람과 사랑에 대해서 공부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좀 더 사랑에 민감해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든 시도는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나의 변화도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똑같은 긍정적인 표현이라도 이성에게는 조금 부드럽게, 혹은 쉽게 표현하는 단어들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또 어색하긴 했지만 행동이나 제스처에 있어서도 조금 더 배려를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를 고민한다거나 감정에 따른 즉각적인 행동을 자제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나의 습관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치다 보니 더 많은 인연을 맞이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물론 이 노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특징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죽어있던 연애세포를 강제로 활성화시키니, 이전에 없던 떨림을 느끼기 시작했고, 설렘이라는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면 요리에는 젓가락이, 국 요리에는 숟가락이 어울리는 것처럼 사람마다 나와 맞는 사람이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성향에는 '다름'이 있을 뿐 '틀림'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조바심에서 벗어나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요즘은 점점 더 연애나 결혼을 하는 인구가 적어지고 있다는 통계가 보인다. 각자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안 될 이유보다 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다.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지만 몸은 나이를 먹기에. 또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처럼 사람에게는 인연을 붙잡아야 할 시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나를 좀 더 나를 준비하려 한다. 내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려 한다. 누군가 말하길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고 하지만 사랑 앞에서 내가 손해를 보는 행위를 후회라 불러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러고 싶다. 어차피 다 내어 주어도 후회하는 게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