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묵한 편이라고?

by 그리다

어느 날,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있는 카톡방에 알람이 울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터져 나오는 익숙한 대화방. 오늘은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가 보았는데, 한 친구가 대뜸 자신이 대화를 할 때 과묵한 편인지를 묻고 있었다. 이 질문을 가장 먼저 확인한 나는 잠깐 고민을 한 뒤 '그런 편인 것 같은데?'라고 답변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모두 나와 반대되는 반응을 보였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인 방이다 보니 '넌 절대 과묵한 편이 아니다.'라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반론을 시작으로, 과거의 사례를 들어 질문을 한 친구가 과묵한 편이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과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던 그때, 문득 다른 어떤 친구가 나를 언급했다.


"과묵하다고 불리려면 00이(필자) 정도는 돼야지."


나는 내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행동들을 생각하며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하나둘씩 그 말에 공감을 하기 시작했다. 과묵함의 기준이 나라니? 순간 나의 머리 위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솟아났지만 반론을 해본들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침묵했다. 그리곤 가만히 생각했다. 왜 내가 느끼는 나의 모습과 친구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이토록 차이를 보이는 것인지를.


같이 어울리는 다수의 친구들이 나를 과묵하다고 지목을 한 것이기에 객관적으로 나는 과묵한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간의 반항을 해보자면, 나는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말수가 적다는 것이지 결코 조용한 것은 아니다. 대개 나와 만나는 친구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가지고 있고, 목소리도 꽤 큰 편이다. 게다가 유려한 말솜씨로 대화의 주도권을 자신에게로 가져오는데 능숙하다. 따라서 대화를 시작하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친구에게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게 되고, 이런 흐름 때문에 내가 묻혀서 비교적 조용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과묵한 사람으로 보이는 다른 요인으로는 내가 대화를 하는 방식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보통 나는 대화가 시작되면 메인으로 주제를 이끌기보다는 보조적인 포지션에서 대화를 이어간다. 마치 판소리를 할 때 고수가 중간중간 '얼쑤!'를 외치듯이, 상대가 하는 말에 틈틈이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이 목소리에 힘을 준다거나, 즐겁다는 표정을 지으면 적당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화의 맥락 속에서 상대방이 잘 알고 있을 법한 분야들을 캐치할 수 있는데, 나는 이런 '상대가 자신 있어하는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넌지시 던짐으로써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언어와 관련된 요소들 또한 타인에게 내가 조용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대화를 할 때 공격적인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대개 칭찬이나 배려를 섞은 말들을 사용하는데(한 친구는 이런 나의 말투가 성스럽다고 했었다.), 사실 이런 농도의 말은 거친 말보다 뇌리에 잘 안 남다 보니 상대방은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에 대한 느낌이 잘 안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나는 대화를 할 때 자주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눈을 맞추는 등의 비언어적인 표현을 많이 쓰기에 상대가 나의 시끄러움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설명을 한 것을 토대로 정리를 하자면,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느끼는 나의 모습이 차이가 있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이 상충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내가 과묵한 사람으로 보일만한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 또한 누구 못지않게 대화 속에서 무언가를 부지런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나는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대화에 필요한 다양한 표현들을 쉼 없이 누군가에게 건네고 있으니, 나 스스로를 '시끄러운' 사람으로 본다는 점. 하지만 상대방은 내가 굵직굵직한 대화들을 잘하지 않았으니 나를 '조용한'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점. 이 차이가 서로에게 물음표를 안겨주는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어찌 보면 말수가 적다는 것 또한 단점이 될 수 있기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새기게 된다. 대화의 분위기를 생기 있게 만들고, 대화를 할 때 타인을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나는 그런 점에서 친구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배울 점들이 참 많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많은데 막상 입으로 꺼내면 엉망이 되어버리는 나의 말들. 정중한 어휘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딱딱해져 버리는 단어들까지. 이런 부족한 습관들을 천천히 고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분들을 올바르게 고쳐나갈 수 있을까? 오늘은 이와 관련된 책을 사서 읽기보다, 그 돈으로 평소에 말을 잘한다 생각했던 친구를 불러 커피를 한 잔 사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름을 부르는 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