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와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비슷한 유형의 걱정을 한다. 그것은 바로 살면서 내가 남들에게 잘 휘둘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대화를 나눌 때 보면 항상 "아 진짜?"라던가 "오 신기하다.", "흥미롭네." 등의 추임새를 넣고 또 매번 눈을 마주치며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다 보니, 지인들은 내가 남들에게 잘 휘둘릴 거라 생각을 하나보다. 어찌 보면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내 모습이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나는 그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타인의 말에 잘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밖으로는 유해 보이고, 웃음을 자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스스로에게 조금 엄격한 기준을 세우면서 나다움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래서 웬만한 말들에는 흔쾌히 타협을 하려 하는 것과 별개로 지나치게 나를 구속하려 한다거나 변화를 야기하게 만드는 말의 경우 슬쩍 흘려보내는데 능숙하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과 그 뒤에서 꼿꼿하게 서있는 '깃대'처럼 유연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유연하게 행동 하지만 그 중심을 지키고 있는 마음은 굳건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타인에게 흔히 하는 말투 속에서도 내가 가진 특성이 잘 드러난다. 보통 나는 타인에게 명령조로 얘기하지 않는다. 대개는 권유를 하듯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라고 조언을 한다던가, 질문을 한 사람이 스스로 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중간 힌트를 제시하곤 한다.
본래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안 하지 않던가? 나 또한 그렇다. 내가 타인에게 명령하거나 강요하는 말투를 쓰지 않는 것은, 나 또한 누군가로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되는 상황을 꺼려한다는 반증과도 같다. 즉, 나는 겉으로 보여주는 표현들을 통해서 '내가 열심히 듣는 사람이긴 하지만 명령이나 통제가 섞인 말에는 그리 호의적인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내가 타인의 교묘한 심리 조작이나 강요, 가스라이팅 같은 말에 잘 당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런 것에 '휘둘릴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보통 상대방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 자기가 보고 확인한 것이 실제로 옳은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부족하여 타인의 말과 지식에 은근슬쩍 넘어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자존감의 형성 여부도 이런 것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굳이 논쟁이 필요하지 않은 주제들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화 주제들. 예를 들면 타인에 대한 폄하나 이간질 등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수용하는 것을 보류한다. 또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이나 앞으로 미치게 될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다방면에서 깊게 탐구한 뒤 경험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이미 나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지식과 그에 대한 믿음이 두텁기 때문에 타인에게서 은근슬쩍 새어드는 지식이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시시각각 터져 나오는 논쟁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 주제들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여느 때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네 말도 틀린 건 아니다."라면서 열린 결말을 제시한다. 이런 모습은 타인이 보기에 모든 것에 수긍하는 사람이라고, 조금은 귀가 얇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싸움이 일어나는 상황을 싫어해서 그러는 것일 뿐, 모든 것에 긍정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상대도 조금은 알아주었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싫은 건 싫다고 하는 성격이다.)
앞서 적은 글에서 풍기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순한 양보다는 우직한 들소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내가 가진 성격을 긍정적으로 평가해볼 수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이 된다면 고집불통이 된다거나 냉소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나를 체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진중한 사람의 모습이 되려면 어떤 습관을 들여야 할까? 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함부로 남의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라며 내게 신신당부를 했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