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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Mar 26. 2023

마감 세일


 늦은 저녁이 되니 마트는 점점 더 한적해진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할인을 한다는 방송이 끊임없이 들리고, 뛰어다니는 종업원들에 의해서 덩그러니 놓인 고기에는 10%에서 30%로. 또 거기서 다시 50%로 할인한다는 스티커가 붙는다. 고기라는 이름이 붙어 한때 부러움을 샀지만 결국 선택받지 못한 것들. 무언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나는 저것이 처한 당연한 현실을 본다.


 스스로는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 적당한 변명들을. 쉽게 떠올리자면 자신이 눈에 띄는 곳에 놓여있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오늘은 그저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사람들이 고기를 고르는 눈이 낮아서 그런 것이라 뻔뻔하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물가가 올라가고 있는 요즘, 그 어떤 것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소비자이기에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얼추 떠올릴 수 있다.


 저 고기가 줄 수 있는 행복의 양은 크지만, 굳이 저것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행복을 줄 수 있는 먹거리들이 주변에 널려있기 때문에. 또 고기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행복의 가치보다 포장지에 붙어있는 가격이 과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선하다'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처음의 가격대로 자신의 가치를 고수하려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버티면 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끝끝내 선택받지 못한다면 저 고기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자신을 가장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 남들이 치근덕 대거나 차가운 시선을 보낼 때조차 유일하게, 이 고기의 가치는 높다고, 좋은 고기라고 소리쳤던 담당 부서 직원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혹여나 벼랑 끝에서 내민 그 손조차 잡지 못하면 결국은 차가운 냉동고에서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될 것이다.

 

 내가 고기 한 덩이에 이다지도 길게 푸념을 하는 이유는, 남아있는 저 고기의 모습이 어째선지 나의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24시간으로 나누었을 때, 점점 문이 닫히는 저녁시간을 향해 가고 있는 나. 삶이라는 것에 정답은 없으나, 적어도 쓰임새 없이 버려지는 삶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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