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의 정수 알함브라
알함브라는 명성대로 건물의 무늬 하나하나가 화려함의 끝판 왕이었다.
집착 환자 정도는 되어야 저 문양을 한 땀 한 땀 반복적으로 만들어내지
싶을 만큼의 집요함이 묻어나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
(덕분에 그 집요함을 따라가지 못해, 알함브라를 그림에 담는 게 보통이 아니네..)
몇 년 전 현빈이 나왔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를 한다기에 기대하며 다시 한번 그라나다를 봤을 때는, 내가 좋아했던 알함브라 궁전이 그저 드라마 배경으로 그친 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현빈의 아름다움이 더 돋보였달까..ㅡ_ㅡ;;
성도 성이지만 알함브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알함브라의 정원이다.
유럽의 성들은 어느 나라를 가든 정원들이 비슷비슷한데, 알함브라의 정원은
역시나 '나는 유럽이 아니라오'하며 그 개성을 뽐낸다.
덕분에 당시 여행 메이트였던 꽃/나무 좋아하시는 엄마는 건물보다 오히려
알함브라의 정원을 마음에 들어 하시며 너무 예쁘다를 계속 내뱉으셨다.
역시 그라나다는 곧 알함브라다.
이걸 두고 떠나다니
늘 맛집을 찾아 떠나는 식도락에 방점을 두고 여행 계획을 짜는 나는, 그라나다는
알함브라로도 유명하지만, 타파스로도 유명한 곳이라는 정보를 듣고, 스페인 여행 중 타파스를 먹을 곳은 바로 이곳 알함브라라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언어 장벽이 있는 나에게는 일반 서서 먹는 타파스 골목 가게에서 주말 오후 복작거리는 현지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가 먹고 싶은 타파스들을 손짓 발짓으로 쟁취해 올 엄두가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까다로운 여행자인 40년 전통의 우리 집 베테랑 요리사 장미금 여사님을 세워둔 채 그 입맛과 요구사항을 모두 맞출 자신도 없었다.
"이걸 먹자고 여기 서서 기다려야 하는 거니?"
"사람이 왜 이렇게 많니?"
"이건 뭐가 이렇게 짜다니"
이 누구보다 냉정하고 까다로운 고객인 엄마를 모시고, 이 모든 예상되는 공격을
깔끔히 방어해내기 위해 찾아낸 곳은, 가격은 좀 있지만 타파스를 콘셉트로 한
숙소 앞 광장의 깔끔한 스페인 레스토랑.
이곳에서 모둠전 같은 개념으로 모둠 타파스를 시키고, 멋들어지게 와인까지
시켰다. 어때~! 맘껏 골라봐. 분명 이 중에 엄마 입맛에 맞는 게 있을 거야~ 움하하
예상대로 엄마는 마음에 들어 하시며 맛있게 드시기 시작했다
"어머~ 식당이 깔끔하니 고급지구나"
"맛있네. 이것도 맛있고, 요것도 맛있고"
"그치그치? 맛있지? 이건 뭘까? 이것도 먹어봐 엄마"하면서
나 또한 알함브라 구경하느라 지쳤던 몸과 허기진 배에 충전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반이나 먹었을까.
"나 배 아프다. 속이 너무 안 좋아. 미슥거려"
"응? 음식이 뭐가 안 맞나? 그럴만한 게 없는데"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음식을 먹어서 속이 탈이 난 거 같아.
난 숙소 갈래. 너 마저 먹어"
"엄마 숙소 혼자 못 찾아가잖아. 기다려 나가자"
마드리드-톨레도를 거쳐 까삘레이아-그라나다까지. 강행군이기는 했다.
이슬람 세력이 그라나다를 떠나면서 알함브라 궁전을 사랑했던 왕이 알함브라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아쉬워했다는데, 나는 이 맛있는 타파스 모듬을 두고 떠나야 하다니.
너희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니. ㅠ.ㅠ
그 길로 엄마는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소화제, 지사제 등등을 드시고,
바르셀로나까지도 급습해 오는 장트라블타 때문에 고생을 하셔야 했다.
그래, 언젠간 다시 스페인 타파스 골목에서 자신 있게 주문을 외쳐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