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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가 물들인 붉은 광장 : 모스크바, 러시아

by gridamemory

바실리카 대성당&크렘린 궁, 모스크바



Red square in Moscow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내가 저기 가 있었나 싶은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그런 기억이다. 그래도 열심히 고개를 치켜들고 사진 찍기에 몰입해 있는 내 모습이 일행들의 사진 속에 남아있는 걸 보면 분명 저곳에 내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Episode 1. 모스크바의 겨울을 난 보지 못했다.


그해 모스크바의 겨울은 법인 친구가 "요즘 우리나라 마치 유럽 같아~"하고 말할 정도의 이상 기온으로 이상하리만치 한국보다도 따뜻했다. 덕분에 안 입던 내복까지 꾸역꾸역 터져나가는 여행 가방에 밀어 넣어 가져 갔던 나는 고스란히 그 내복을 다시 낑낑대며 여행 가방에 쑤셔 넣어야 했다. 그래도 호텔과 법인만 왔다 갔다 거리는 나에게 그나마 여기가 모스크바임을 각인시켜 주던 건 3시면 어두워지던 신기한 바깥 풍경이었다.


Episode2. 보드카의 위력


출장 마지막 저녁

"그래도 러시아 왔는데 보드카는 마셔야지"하며

권하는 보드카 속에 그나마 이틀 밤을 꼬박 새운 후 얼마 남아있지 않던 나의 밀알과 같은 정신력과 체력은 바닥이 났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일명 꽐라가 되어 호텔로 기어들어가기 바빴다.

다음날 아침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는 일행에 어젯밤 뭘 잃어버렸다는 사람까지 그 후유증은 요란했다. 체크 아웃 후에도 짐들을 가지고 법인에 모인 모두가 퀭한 눈과 풀풀 풍기는 술냄새를 가지고 회의실에 엎어져 있던 건 당연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Episode 3. 핑핑 돌아도 볼 건 봐야지. 붉은 광장


그때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 외쳤다

"그래도 모스크바 오셨는데 공항 가기 전에 붉은 광장은 보시고 오셔야죠! 차 대기시켰으니 다들 가시죠!"


"아...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아...차 타면 난 토할 거 같은데..."

"진짜 난 두고 가도 되는데.."


다들 한 마디씩 하다 그래도 다들 아쉬운 마음에 꾸역꾸역 기어 나와 차에 올랐다. 차에 타자마자 다들 바람이 휘휘 들어오도록 창문을 양껏 내린 채 널브러졌다.

하지만 이 숙취에 시달리던 술꾼들을 깨운 건 붉은 광장에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는 바실리카 대성당이었으니 유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방금 전까지 안 간다, 두고 가라 하던 사람들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셀카 찍고 같이 찍고 서로 찍어주고 하며 완전한 관광객 모드로 붉은 광장을 남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결국 요 짧은 1시간이 지금도 기억하는 모스크바 방문의 하이라이트였다. 아직도 출장 중 샤슬릭을 못 먹어 본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블라디보스톡 때도 난 샤슬릭을 결국 맛보지 못했다. 샤슬릭 너는 나와 인연이 너무 없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너를 들고 또다시 보드카를 한잔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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