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성휘 Feb 23. 2024

순하지만 예민합니다.

순한 사람이 예민하면 안된다는 무례한 편견

최근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 (글감도 주는) 독서 모임을 발견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바로 하나의 책을 정하고 토론하는 시간이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각자 생각하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 신기하다. 지정 독서를 하는 날에는 노트에 공백이 없을 정도로 좋은 이야기들이 우수수 나와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꿀팁 덕분에 나밖에 몰랐던 내 세상이 무너져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다.          


마음의 힐링을 하고자 독서 모임을 신청했다. 그날은 오해와 편견에 관련된 책으로 사람들과 이것저것 책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었다. '편견 때문에 억울했던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나는 "순한 사람이 예민하지 않다는 편견 때문에 억울했던 적이 있었다"라고 대답했다. 내 말을 듣자마자 다들 '응? 그게 무슨 소리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한때 저런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순하다는 것과 예민하다는 서로 너무 결이 다른 성격인데 편견이라니? 맞는 말 아닌가? 라고. 나의 이러한 편견을 깨준 사람은 바로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공황장애로 쓰러진 이후 정신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검사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나는 기질적으로 성격이 예민한 사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어서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선생님에게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 어릴 때 별명이 순둥이였어요……" 라고. 그러나 선생님은 "순한 사람이 예민하지 않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둘은 완전히 달라요."라는 말을 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순하다는 성격 뒤로 나의 예민함을 감추고 살았구나.       


성격은 단 하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알록달록한 감정들이 섞여 단 하나의 '나'라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익히 당연하다 말하지만, 사람들에게 은근히, 혹은 본능적으로 남들이 들어도 좋을 법한 성격을 먼저 말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순한 편에 속했다. 어릴 때 남들도 다 겪었을 법한 사춘기가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반면 사춘기가 제대로 온 언니가 중학교 1학년 때 이름 날리는 날라리(?)가 되어 학교를 뒤집고 다녔는데, 언니와는 반대로 엄마와 담임선생님은 나를 '순둥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순했냐면 생활기록부에도 온화하고 다정하며 순한 성격으로 반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말을 써주셨을 정도였다.     


그런 나의 성격과 정반대인 인물이 바로 언니였다. 엄마는 언니를 보고 "지랄 맞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예민 그 자체였다. 언니는 상대방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과하게 반응하고 쉽게 화를 냈다. 언니의 말버릇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야?" 였고 자신은 공정하게 행동하는데 상대방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며 답답하다고 화를 냈다. 작은 일에도 크게 흥분하고 상처받았다. 결국 그것들이 쌓여서 폭발하는 날들도 많았다.     

     

그런 언니의 예민함이 사춘기랑 만났으니 당연히 이름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언니의 예민함이 하늘을 찌르는 날에는 엄마와 크게 부딪쳤다. 욕설이 오고 가며 물건을 던지며 울고 소리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언니와 늘 비교 받으며 자랐다. 문제 있는 언니에 비해 순하고 착한 동생. 그게 유년기 시절 나의 타이틀이었다.     

     

원치 않는 왕관을 뒤집어쓴 나는 그것도 나름대로 감투라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예민한 기질을 봉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성격을 표면적으로 뒤집어쓰며 속 안에 있는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향해 "너는 이 세상에 나오면 안 돼. 나한테 너는 어울리지 않아."라고 깊은 내면에 파묻어 버렸다. 그 허술하고 안일한 결박이 얼마나 갈 수 있었을까. 성인이 되고 세상과 부딪치면서 참고 살았던 예민한 기질이 '나도 세상 밖으로 나올 거야!'라고 말했다. 그 에너지가 폭발하며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장애로 표현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예민함은 그저 감정의 민감성을 나타내는 것뿐인데 순하다는 것과 예민함은 서로 다르고 같이 쓸 수 없는 말이라 여기며 나의 예민함을 인정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에 대가는 너무 컸다. 이따금 예민함이 밖으로 툭 튀어나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날에는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너 원래 안 그랬잖아.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라고 말하며 착한 아이로 다시 되돌아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모습에 '나 원래 예민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그런 순한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그제야 내가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아… 오늘은 제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순한 표정을 지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어쩐지. 괜찮아? 컨디션 많이 안 좋은가 봐. 힘들면 반차 쓰고 병원 가봐."라고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며 괜찮다고 말하며 거짓말을 했다.     


그 이후 나는 순하고 다정다감하며 온화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회의를 느꼈다. 순한 사람이 예민하면 안 되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내가 만든 지옥에 빠져 살고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공황장애가 터졌고 밖을 나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결국 회사에서 퇴사하고 말았다.     

     

"선생님, 예민한 감정을 이제 표현하고 싶어요." 나는 울면서 말했다. 이제 더는 숨길 자신도 없었지만, 나의 예민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했다. 선생님은 휴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도 됩니다. 참지 마세요." 그 말 한마디에 내가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들이 흘러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내 성격을 묻는 말에 '순하지만 예민하다'라고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결이 다른 성격이 매치가 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 수 있다, 사람은 단 하나의 성격만을 갖고 있진 않으니까'로 나뉘기는 하지만 대부분 후자 쪽에 생각하고 있다. 요즘 챗GPT에 빠져 AI 프로그램은 이러한 성격을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순하지만 예민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순하면서도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감정이 민감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은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고,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정형화된 답변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며 타인에 상황을 공감한다>라는 문구에 '이게 나라는 사람에 성격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의 예민함 덕분에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잘 잡았다. 그 배턴을 이어받은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성격은 타인을 향한 배려와 공감을 통해 그들을 아낀다는 진정성을 보여 주었다. 어느 하나만 있었다면 결코 좋은 방향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러니한 성격을 사랑한다.     

     

나는 순하지만 예민하다. 이 특이한 조합이 나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예민한 감각을 살리며 그 감각을 통해 타인을 생각하는 연습을 한다. 오늘은 나의 어떤 예민함이, 그리고 어떤 순한 면이 어떤 사람에게 닿아 좋은 영향을 줄까? 부디 순한 사람이 예민하지 않다는 편견이 널리 널리 없어지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책방으로 출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