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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성휘 Feb 23. 2024

책방으로 출근합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내 인생에 전부가 되었다.

매주 월요일에 나는 책방으로 출근한다. 그렇다고 출퇴근하는 진짜 직장인은 아니다.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가 된 지 6개월 차, 나는 프로(?) 백수다. 허구한 날 침대에 누워 책이랑 꽁냥거리는 내 모습을 한심하게 보는 가족들의 따스한(..) 시선과 운동 좀 해라,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좀 해라. 등등 다정한 잔소리를 쏟아내는 언니를 피해 책방으로 출근한다. 처음에는 그저 가족들에 과한 애정을 피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때울 곳이라 여겼던 책방이 지금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책방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시간이 넘쳐나는 대신 돈이 부족했던 나는 적은 금액 대비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이런 나의 니즈를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나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딱 캐치해서 정확하게 피드에 올려주는지…… 그날도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피드에 뜬 글들을 보고 있었는데 운명처럼 글쓰기 관련 모임을 한다는 책방의 게시글을 보며 환호했다. ‘와 이거다! 내가 원하던 게 여기 있었네!’하며 바로 신청했다. 때마침 글이라는 세계는 어떤 세상일까? 하는 아주 작은 호기심이 있었다. 게다가 집에서 책방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고 참여 비용도 매우(?) 합리적이었다.     


글쓰기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실은 글을 쓰는 것보다 책 읽기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별종’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책 읽기에 열정적이었다. 오죽하면 다른 집 아이들은 코를 박고 TV를 본다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코를 박고 책을 본다며 혀를 찼을 정도다. 다른 엄마들은 차라리 책을 보는 게 훨씬 좋은 게 아니냐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결론은 전자나 후자나 눈이 안 좋아지는 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애들이 책을 좋아한다고 딱히 공부를 잘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와 언니가 책에 미쳐 사는 것을 딱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32살 인생을 되짚어봐도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딱히 큰 기대가 없었다. 원래 글쓰기에 관심 자체가 아주 미미한지라 그저 처음 가는 책방에 분위기가 좋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아주 찰나의 시간 중 하나라 여겼고 큰 기대 없이 책방에 온 그날, 나는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글이라는 녀석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썼다. 나름(?) 단편소설도 써보고 책에 관한 이야기도 써보다가 어느덧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인물이지? 라는 호기심이 든 순간 머리가 띵- 해졌다. 사는 동안 나는 누구라는 질문에 깊이 고민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굳이 알아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면서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라는 주제로 나는 나에게 수도 없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수많은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거의 없었다. 애매한 대답들 사이에 내린 결론은 어쩌면 한평생 알고 싶지 않아 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허나 모르면 몰랐지 나라는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을 깨달은 이 순간을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었다. 백 퍼센트 내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더라도 책방을 꾸준히 다니면서 정의해 보자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나를 알아가기 위한 출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힘들었다. 글을 꾸준히 쓰던 사람이 아닌지라 맞춤법은 물론 글의 시점부터 흐름까지 엉망진창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엉망진창이다) 이런저런 형식과 틀 사이에 허우적거릴 무렵, 책방지기님은 오히려 나의 형식과 틀을 지키는 모습을 칭찬해 주셨다. 책방 사장님을 ‘책방지기’로 호칭하는데 매번 글이 형편없다고 느낄 때마다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해 주신 덕분에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글쓰기를 꾸준히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나란 존재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쁜일, 뿌듯한 일, 그리고 뭉클한 일이구나, 라는 것을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알게 된 사실을 적어 보자면, 나는 꽤 다채로운 사람이다. 무미건조한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시각은 편견이었음을 알아냈다. 감정 표현이 솔직하고 타인에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는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격려하며 응원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예민한 감각을 살려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잘 파악한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타인에게 “무슨 일 있어? 걱정된다”라고 말해준다. 덕분에 눈치가 빠르다, 잘 챙겨준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한때 이런 나의 예민함을 싫어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글쓰기를 통해 깨달았다. 덕분에 나는 내가 누군지부터 나의 예민함까지 사랑하게 되었다.    

  

책방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나의 감정을 차분히 정리하며 글을 쓸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다. 마음을 위로받고 정화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혹은 잘못된 편견을 씻으며 글을 쓸 수 있는 배움을 주는 곳이다. 매주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이런 곳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좁고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던 내 세상이 넓어진 것은 책방 덕분이다. 2023년 최고의 선택은 책방에서 글을 쓴 순간이다.      


지금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책방을 만나지 못했다면? 글쓰기에 조그마한 관심도 없었다면? 결론은 시절 인연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말하고 싶다. 조금 시기가 늦어졌을 뿐, 반드시 글쓰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책방에 출근하면서. 나는 매주 일요일 저녁에 책방에 출근하기 위해 미리 짐을 싼다. 마음을 내려놓고 편히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나를 알아봐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는 책방에 출근하기 위해. 이번에는 어떤 글을 쓰게 될까? 나는 매주 탄생하는 글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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