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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성휘 Feb 23. 2024

나만의 출발 의식

불안을 털어내고 싶어서

나는 여행을 가거나 집을 이틀 이상 비우게 되면 방 청소를 하는 의식이 있다. 단순히 쓸고 닦고를 떠나서 가구 위치를 바꾸고 침대 이불보도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며 방을 아예 뜯어고치는 대규모 전쟁(?)을 치르는 편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마스크를 끼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나름대로 거사를 치르기 위한 최고의 상태를 만든 후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한다. 쌓여있는 먼지와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이 하필 여행 전날에 유독 거슬리는 건지… 귀신 나올 것 같다며 방 좀 치우라는 가족들의 잔소리에도 더러운 방을 고수하던 내가 짐을 꾸리는 것도 뒤로 한 채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방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의식을 치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가족들과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5년 동안 서울에서 자취하다가 전세금 문제로 본가인 경기도로 올라오면서 가족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공동체 생활보다는 혼자의 삶을 고집하던 나는 피가 이어져 있는 가족들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며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틀렸다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사상 앞에서 나의 성향은 다 무용지물이요 돈이 없으면 가족이라는 유기체에 속해져야 함을 절실히 깨닫고 화려했던 솔로(?) 생활을 고이 접어두어야만 했다.      


가족들과의 공동체 생활에 정을 붙이고 살고자 노력하고 있을 무렵 언니가 불쑥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여행 전날에 열심히 청소하더라?”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에 나는 조금 벙쪘다. 청소를 끝내고 앞치마를 풀고 있던 나의 손이 어정쩡하게 멈췄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라고 되묻는 말에 언니의 반응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아주 경건한 자세로 청소를 해. 너 몰랐어?” 그 말에 나는 전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나는 네가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소하는 줄 알았지.”라며 깔깔 웃었다. “너는 낯선 곳 가는 거 싫어하고 무서워하잖아. 그래서 무의식중에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게 아닐까?”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내가 그랬구나.’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며 방으로 돌아가 여행 갈 짐을 꾸리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낯선 사람, 낯선 환경에 관한 두려움이 상당히 컸다. 남들은 잘만 적응하는 학교를 나는 졸업하기 직전에 겨우 익숙해질 정도로 생각보다 나의 불안감은 크고 깊었다. 성인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불안한 감정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서 낯선 곳에서 15분에서 20분 정도 미리 가서 산책하듯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적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덕분에 회사에서는 지각 한번 한 적 없고 늘 일찍 출근하는 성실한 사원이라 칭찬받기도 했으나 실은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갈 때는 그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관광지와 호텔을 네이버로 검색해 블로그로 미리 백번 천번 본다고 한들 불안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불안한 감정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청소였던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는 것처럼 내 온몸에 달라붙은 불안을 털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말끔해진 방 안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180도로 달라진 방처럼 이런 나를 바꾸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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