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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Jul 20. 2020

쓸데없는 반감

댓글인재는 댓글을 포기합니다

    

82년 김지영에 대해 부정적인 게시글을 올린 적이 있다. 영화에 나오는 김지영이 김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 민폐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 남편, 시댁은 안티로 나오고 유일한 조력자는 친정뿐이다. 70년대 아침드라마 같은 설정이었지만 흥행을 했다는 점이 궁금해 뒤늦게 본 영화인데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신파였다.    


연출 작가 배우 3박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공감과 이해보다는 반감과 짜증만 유발해 신랄한 비판 소감문을 올렸더니 생각지도 못한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 멘털을 부여잡아야 했다. 방탄조끼도 없이 온몸으로 총알을 맞고 있는, 딱 그 기분이었다.

 

나름 댓글 인재였던 나는 답 댓글 달기가 무서워 답 댓글을 포기한 체 한 줄 한 줄 나에 대한 반감들을 들여다봤다.

당신도 공격하면 상처 받듯 영화를 공격하면 영화 만든 사람도 상처 받는다 라는 댓글이 보였다.

반감을 표현했지만 격하게 공감하는 댓글이었다. 중반부로 가자 사이사이 공감이 보이기 시작했고 후반부에는 대부분 공감이었다.

반감을 표한 글에는 공감보다 반감 댓글이 먼저 달리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수백 개의 댓글 중 공감과 반감은 대충 오십 대 오십이었다. 첫 댓글은 반감이었으나 마지막 댓글은 공감이었다.     

50년생 60년생 김지영이라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82년 김지영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반기를 들고 남편도 공동 육아 살림을 선언한 세대 출신이기 때문에 82년 김지영 은 시대에  뒤떨어진 영화라는 게 공감 쪽이었고. 여성 해방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반감 쪽이었다. 여성해방의 정점은 육아보다는 직장을 다녀야만 자아실현된다는 반전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을 다닌다는 동료나 친구를 본 적이 없다. 솔직히 육아보다 직장이 편하다는 소리를 다들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도 육아보다 직장이 편하다는 소리를  많이 하더라. 까지 곁들이면서 공감 표를 얻었다.  결혼을 안 한 나로서도 그 말은 이해가 되었다. 김지영도 어쩌면 육아보다 회사일이 더 편해서 그랬던 건데 영화라서 포장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 봤다.     


sf도 아닌데 현실과 동떨어진 스토리가 나올 때면 쓸데없이 반감만 생긴다.     


충무로 유망주 김태리가 출연한 리틀 포레스트에는 고사리를 캔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 표현이 나오는 순간 영화를 꺼버렸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도 끝까지 보는 게 취미인 내가 그 영화를 포기했다. 고사리는 꺾는 것이지 캐는 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꺾는 거나 캐는 거나 뭐가 달라 라고 할 수 있지만 고사리만큼은 다른 나물과 다르게 꺾은 자리에서 또 나고 또 나고 그렇게 한철을 반복하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씩 그 장소를 방문해 고사리를 꺾어 풍년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고사리 밭은 손자며느리도 안 알려준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고사리를 캐다니.. 호미 들고 캐냐... 그건 뿌리가 어딘지도 몰라 캐지 못하는 식물이라고.. 이 태리야.... 씨로 번지는 씨 받이 식물이라고..... 이 감독아...


힐링을 주제로 내세운 영화를 보다 스트레스만 잔뜩 받았다.


원래 인권영화 많이 만들고 나름 소신 있는 유명한 감독인데 그 감독이 만든 그 전 영화들까지 신뢰가 떨어졌다. 그럴 감독이 아닌데 그래서 더 실망했다. 이제 그가 떠드는 모든 말들이 입만 벙긋하는 금붕어처럼 보였다.

감독 앞으로 댓글을 남기려다 관두었다. 그러나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남녀평등 진급 비율 성비도 법으로 규정한 요즘 직장문화는 어떨까

얼마 전 개인 사업주라고 밝히면서 올린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직원들 사기와 위로를 위해 1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회식을 주도하는데 젊은 신입 사원 한 명이 꼭 빠진다는 거였다.

회사에서 회사 돈으로  맛있는 거 사주겠다는데 빠지는 신입사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90% 이상이 신입사원 지지 내용이었다. 지지하다 못해 사업주를 비난하는 댓글까지 마구 퍼부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회사에서 회식을 안 시켜주면 안건으로 올라올 정도로 회식을 원했고, 심지어 1년에 한 번은 야유회를 가야 한다는 규정까지 있었던 세상이었다.

회사는 어려워도 야유회는 꼭 가야 했다. 근로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그런 세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격세  감이다.

공감 댓글을 달아주려 했던 나는 반감 댓글에 시달릴까 관두기로 했다.     

공감을 바란 기대와 달리 비난 댓글에 멘털이 무너졌는지 그 글은 곧 삭제되었다.          


얼마 전까지 계약직으로 일했던 직장에서는 회식 회비로 문제가 생겼다. 여자 6 남자 10 정도의 성비 구성인데 한 여직원이 회비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여자들은 비주류인데 주류값을 회비에서 계산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너무 야박하다는 반대 의견, 그럴 수 있다는 찬성 의견이 나왔지만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나이랑은 상관없이 성격의 차이라고 말해야 되겠지만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구성된 직원들은 선뜻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 시대라면 당연히 돈보다는 정으로 움직인 사회였다. 돈에 연연하면 저질로 취급받던 시대였다.

그래서 후배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도 먼저 계산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는데.. 요즘은 서로 밥값이 아까워 만남을 주저하거나 더치페이를 하거나 각자도생 하는 분위기니 지금껏 살아왔던 정서랑은 안 맞을 수 있다.     


회사는 가끔 10명의 침묵보다는 1명의 소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결국 수십 년을 이어왔던 그 회식 회비는 폐장의 길을 걸었고 앞으로 직원들끼리의 정식 모임은 연말이 아니면 하기 힘들어졌다.


불만을 제기했던 직원은 동료들이 동료애가 없다며 또다시 불만을 토로했다. 개인 사정으로 당직근무를 바꿔야 할 때 동료들이 잘 안 바꿔 준다는 게 이유였다.

딱딱 자로 잰듯한 성격의 그  반감 직원이 정작 자신한테는 늘 관대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요즘 브런치 글들을 읽다 보면 반감을 표현하고 싶은 글들이 가끔 보인다.  

그럴 땐 댓글창을 한참 누르고 있다가 호흡 한번 크게 하고 그냥 빠져나온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반감의 댓글들을 억누른다.

한때 댓글 인재였던 나는 이제 댓글을 포기한다. 감정이 다르다고 굳이 상처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반감은 늘 쓸데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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