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기당했어."
오랜만에 통화한 명희(가명) 언니의 첫 마디. 놀라서 무슨 사기냐고 물었다. 돈 좀 벌어보려고 시작한 주식. 회원가입을 유도하는 주식 광고 유튜버에 혹해 한 달 전 회원가입을 했다. 회비는 백만 원.
없는 돈 끌어다 회비를 낼 만큼 간절했다고 한다. 회원이 되면 정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돈 많이 벌었다는 그럴듯한 후기를 보니 더더욱 빠졌고, 설마 설마 하면서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홀딱 넘어갔다고 한다.
내가 믿는 것이 맞다는 착각
▲ 아무리 친한 사람이 주는 정보도 의심하는 것이 주식이다. 특히 우리 같은 개미에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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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돈 아껴 쓰던 언니가 회비 백만 원을 냈다는 말에 절박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안다. 그 절박한 욕망이 사기 당하는 최적의 조건임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마법에 빠지는 순간임을. 그때부터 그들이 하는 말은 절대적이다. 말만 잘 들으면 큰 수익을 가져다줄 것처럼 얘기하기 때문에.
가입하자마자 이상함을 느껴 빠져나오려 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고. 의문을 가지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원천 봉쇄한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냐고 묻길래 "이천"이라고 답했단다. "언니! 돈 없다면서 무슨 이천" 나도 모르게 그 타이밍에 소리를 질렀다. 카드 빚을 냈다고 한다. 맙소사. 신도 모르는 게 주식인데.
안그래도 몇 달 전 언니가 주식 추천을 하길래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냐고 추궁했었다. 그냥 얼버부리며 둘러대길래 "주식하지 말고 유튜버들 믿지 마"라고 강조 했었다. 아무리 말해도 이미 빠진 사람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처음 주식에 입문하는 사람은 정보를 얻고자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방송, 카페, 유튜브. 나도 그랬다. 내가 아는 정보가 마치 나만 아는 것처럼 착각했다. 많이 속아 봤고 많이 당해 봤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주는 정보도 의심하는 것이 주식이다. 특히 우리 같은 개미에겐.
언젠가 한 지인이 내게 "사기 당하기 딱 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분이 상했다. 나를 사기나 당하는 허술한 사람으로 보다니. 언짢았다. 나름 신중하고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성격인데.
남의 말은 잘 믿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성격도 아니다. 나이 반백살. 도대체 어딜 봐서 사기 당하기 쉽다고 하는 걸까. 그것도 나를 안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이. 자존심을 숨기고 겨우 물어봤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자신이 믿는 세상에 타인의 믿음은 도움이 안 된다. 미련하게도 자신이 믿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사기는 사람의 간절함을 이용하는 심리전이라 했다. 간절할 것이 없는 내가 무슨 사기를 당한다고. 동의할 수 없는 말투로 "한 번도 사기 당한 적 없는데요"라며 다시 한번 불편한 속내를 보였다. 그런 내게 지인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따끔하게 일렀다.
작은 친절에 '매우' 고마워하고, 자기 것을 내어주는, 정이 많은 사람은 사기꾼들에게 훌륭한 먹잇감이라고. 그들은 치밀하게 계획해 오래 동안 상대방이 자신을 완전히 믿게 만든 후 일을 벌인다고 했다. 즉, 오래된 사람에게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훅 들어온,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단순하게 생각하지 누가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 당시는 화가 좀 났는데 시간이 흐른 뒤엔 앞으로 살아갈 내게 '주의'를 준 셈이니 명심하고자 했다.
돌아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똑똑지 못해 손해 본 적이 있다. 일상에 널려 있는 크고 작은 사기들로 아찔했던 적. 그러고 보면 누구나 사기 한 번쯤 당한 적 있지 않을까. 가깝게는 인터넷 쇼핑에서 넓게는 삶 속에서.
결코 멍청해서가 아니다. 작정하고 속이면 속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당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속은 사람을 탓하지만 속아본 사람은 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감당할 만큼의 경험은 교훈을 남기지만 뒷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누구를 탓하랴. 인생공부 했다는 합리화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뿐이다.
누구나 사기꾼을 만날 수 있다
▲ <범죄의 재구성> 포스터ⓒ 쇼박스
명희언니는 "내가 미쳤지 미쳤지"를 연발했다. 시키는 대로 하다 돈 팔백을 잃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계약을 해지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아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서야 회비 백만 원 중 칠십여만 원을 돌려받았다고. 그것도 어디냐며 숨을 끌어내린다.
남편 모르게 한 주식. 대출도 못 갚고 있다고 한다. 돈 좀 벌어보려다 되려 잃었다며 욕심이 화라고 했다.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 경제 지식 없이 요행은 아닌 것 같다며 후회했다. 그리곤 덧붙였다.
"네가 남의 말 믿지 말고 유튜버 믿지 말라고 했는데.... 안 들었어."
"응... 언니 원래 그래. 이해해."
나 역시 그런 유혹에 빠질 뻔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인간은 꼭 자신이 직접 경험해야만 깨닫는다. 어리석지만 인간은 그렇다. 그렇기에 인간인지 모른다. 경험해 보지 않고 깨닫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지만 그건 신의 영역.
먼저 걸어본 길이기에 "나는 그러했기에 너는 그러지 말라" 조언해도 너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만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명희 언니는 언제나 그렇듯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잃은 팔백 찾겠다고 더 버티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칠십이라도 건진 게 어디니. 아휴 나쁜 놈들. 진짜. 다 사기꾼들. 속으면 안 돼 진짜. 욕심내면 안 되는데 내 욕심도 한몫 했지. 다시는 요행을 바라지 말아야지."
달콤함을 찾아 쫒았지만 결국 불타버리는 불나방처럼, 비용 없이 인생을 깨닫기엔 삶이 심심한 걸까. 숫자로 삶을 망치기에 삶은 곱다. 조심하자. '사기' 하면 떠오르는 영화 <범죄의 재구성> 마지막 내레이션은 의미심장하다. 알면서도 속는 게 인간이지만 대가는 혹독함을 기억하자.
"탐욕스러운 사람, 세상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 모두 다 사기꾼을 만날 수 있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