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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dwarf Apr 12. 2022

자기 확신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의 꿈을 명확히 알고 또 자신의 일을 즐기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의사결정이 분명하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분명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는 것이며 그 외에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남들의 평가가 어떤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남들의 평가는 항상 2번이 되어야 한다. 1번은 언제나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는 것이야 그들이 외부적으로 보이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실상 나의 과거와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으므로 내가 현재의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자존감의 획득을 좌우한다. 내가 스스로 나를 평가할 때 이루어놓은 성취나 결과물로 평가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내면의 평소 생각들이나 내가 스스로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 같은 것이 더 큰 평가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오히려 외적인 성취들은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를 평가할 때 내리는 요소이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가령 열등감에 사로잡힌 만년 2등이라는 외부환경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외부에서 아무리 훌륭한 평가를 하여도 스스로 1등에 대한 열등의식으로인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고 계속 부정적인 상태에 머무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자존감은 우선 남과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비교에서 얻어지는 것은 우월감과 열등감으로서 양극단으로 치우친 불완전한 상태이다. 오로지 나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끊임없이 발전하며 언제나 현재에 머물러 있어서 온전히 삶을 가득 누리는 사람만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다.


외부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스스로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한 말은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믿고 있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동도 그런 맥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나 자신이 멋지게 느껴질 만한 생각과 말과 행동과 책임을 이어나간다면 언제나 자기 확신 속에서 찬란한 시간들을 지금 현재에서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기 확신은 고집불통과 혼동되기 쉬운 면이 있다. 우선 웬만해서는 자신의 뜻을 꺾지 않으려는 성향이 같다. 그러나 자기 확신은 생산성이 있는 고집인 반면에 고집불통인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납득시킬만한 설득력이 없다. 다음의 예를 보면 이 둘의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동료: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 사 왔는데 한잔 너 마셔~

자기 확신: 아, 좀 전에 나는 마셨어. 다른 사람 줘~

동료: 그냥, 놔뒀다가 한잔 더하면 되잖아?

자기 확신: 아니, 요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 줄이는 중이거든. 다음번에는 미리 물어봐주면 좋겠다. 저번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상황이 이렇게 엇갈릴 수 있으니까~

동료: 됐다. 그냥, 내가 2잔 마실게. 그리고 이제는 그냥 나 혼자만 마실 거야.


위의 지문에서 '자기 확신'은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커피가 왔을 때 이미 커피를 마신 상황이었고 커피양을 줄이고 싶어 하였기에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하였다. 그런데 '자기 확신'에게 선심을 가지고 커피를 사 온 '동료'가 바로 고집불통의 역할을 맡았다. 이 동료(고집불통)는 지난번에도 이렇게 미리 말하지 않고 무언가를 사 와서 '자기 확신'이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면 이제 고집불통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집불통은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생색을 내거나 그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확신'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단지 도움을 주려했을 뿐인데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꽤 불쾌하게 여겨졌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그와 같은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 확신'이 자신에게 언젠가는 신세를 지게 만들겠다는 오기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자기 확신'은 언제나 자신에게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일이 끝나고서는 고집불통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하고 물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고집불통은 자신의 도움은 받지 않으면서 자신을 도와주려는 자기 확신이 너무 얄밉게 느껴져서 언제나 도움이 필요하였지만 그의 도움을 거절하였다. 그 이후에도 고집불통은 '자기 확신'에게 선심 쓰듯 행동을 하였는데 언제나 위의 상황처럼 타이밍이 안 맞았고 오히려 '자기 확신'이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이면 일을 하고 있는 고집불통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나 커피 사러 갈 건데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고집불통은 자신의 마음이 왜 이토록 미움이 가득해지는지 모른 채 더욱더 자기 확신이 싫어지고 있었다.



'자기 확신'과 '고집불통'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기 확신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인정하는 반면 고집불통은 외부로부터 오는 반응들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고집불통은 대부분 인정에 목마르다. 그리고 이 갈증은 외부로부터 자신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 않을 때마다 끊임없이 찾아오며 긍정적일 때도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기에 인정을 위한 처량한 처세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 확신은 스스로 자아상이 건강하며 자신을 거의 존경할 정도로 스스로 가치 있는 것을 지키고 발전해나가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 그리고 모두가 유익한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자신감이 넘치며 누군가의 비뚤어진 비평에도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알기에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위로할 줄도 알고 성과에 대하여 인정할 줄도 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인정해주기 전에 이미 자신을 인정할 때를 알고 충분한 인정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진심으로 인정할만한 과정을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 암시적으로만 일시적으로 사용한다면 껍데기만 '자기 확신'이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힘들게 되는 것이 큰 특징이 된다. 대부분의 정신병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그것이 행동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라면 더욱더 끔찍이도 멀리한다. 그러므로 더 나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배우고 그것을 통해 깨닫고 지식을 통해 행동을 다스리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더욱 나은 결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그 누구의 비평보다도 자기 스스로의 평가가 들을만한 것이기에 '자기 확신'과 '자존감'이라는 멋진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높고 자기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도덕적 가치가 제1순위면 좋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착한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욕망 덩어리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욕구를 해소시키기 위한 생각과 행동들을 가장 최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자아실현의 욕구이며 결국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을 평생에 걸쳐서 찾지 못하거나 찾았어도 그것을 해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과반수가 넘을 것이기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만 하여도 엄청난 성공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내는지는 이제 즐겁게 노력할 일만 남은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운명과도 같다고 느껴지는 때가 온다. 분명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좀 더 발전을 위한 행동을 계속하게 되는 것. 과거의 실패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오롯이 현재 그 일을 하는 순간에만 깊이 몰입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그 상태는 결국 아름다운 미래가 된다. 이것이 밖에서 보았을 때에 운명처럼 보이며 매우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좋아하는 일을 좀 더 잘하려는 행동의 단순한 반복이었음을 당사자들은 알 수 있다. 거창한 목표와 세부적인 계획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무수히 많은 동기와 도구들이 있더라도 본인이 평생에 걸쳐서 발전시키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혼자서 피라미드를 쌓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방법들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첫째로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운명과도 같은 일은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처럼 사랑의 속성을 닮았기에 자신이 가장 열정적이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또 그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들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둘째로 자신이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아직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추구하기 전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구가 평생에 걸쳐서 일어난다. 이것은 그 돈을 가지고 나의 행복을 위한 시간과 여러 가지 경험들을 사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결국 꿈을 찾기 위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인들은 돈을 벌기 전에 꿈을 먼저 찾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자.


셋째로 스스로 세웠던 기존의 고정관념과 자신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생각하자. 무엇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나이나 국적, 성별, 신체, 스펙, 경험 등이 충분히 그것에 유리한 것인지 자신의 고정관념이 엄중히 물을 것이며 외부에서도 칼날과 같은 조언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대부분 하늘이 내린 재능이 시작부터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이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선택하여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이것을 정말 원하는 것인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만일 성공에 대한 보장도 없고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으며 심지어 굉장히 오랫동안 결핍된 시간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만들만한 일이라 생각이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당신에게는 그 일이 '운명'이다. 축하한다. 드디어 자신의 꿈을 찾은 것이다. 이제 매 순간 그 꿈과 행복하게 살면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취업을 준비한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자라나는 꿈 많을 아이들조차 안정된 직종을 바라보는 세상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다. 인류의 문명의 발전은 분명 실패하든 성공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평생을 매진했던 사람들로부터 이루어졌다. 나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일반인이 닿기 힘들 만큼 큰 행복의 실현을 순간순간 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믿으며 그 무엇보다 자신의 길을 자신이 개척하였고 스스로 꿋꿋이 걸어갔다는 점에서 위대한 '자기 확신'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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