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을 소비하는 사람들

by 영점오

익명으로 기부했다.
처음엔 그게 전부였다.
다만 선한 마음으로, 도움이 닿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떤 누군가가 그 익명을 기사화했고,
누군가는 거기에 의미를 덧붙였다.


“서울 강서구, 이름 없는 기부자 등장…
익명 천사, 매주 2천만 원 상당의 도움 이어져”


뉴스였다.
포털 메인에 뜬 기사였다.

내가 아닌 또다른 익명의 기부자였지만 나는 크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착함은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저기, 저 좀 도와주실래요? 사실... 인터뷰만 잠깐 하시면 되는데!”
나에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집요했다.

“혹시 그 익명 기부자 분 아니세요?”
“진짜 착한 일 많이 하신다면서요.”
“제 동생이 학교를 못 다니는데 혹시 도움을…”

그 말들은 물론 진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다 계산된 접근처럼 느껴졌다.
착함을 끌어내기 위한 '연기' 같은 느낌.

나는 무서워졌다.

그날 밤,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의 글을 보게 됐다.


[#익명기부자
오늘도 진심으로 도왔어요.]


계정에는 나보다는 10살은 연상인 것 같은 남자의 착한 행동 사진이 도배되어 있었다.
버스 좌석 양보, 커피 나눔, 아이스크림 나눔…
댓글은 ‘선함 인증’, ‘천사님 최고’, ‘요즘 이런 분 드물어요’로 가득했다.

나는 그 계정의 배경에 놓인 작은 검은 지갑을 보았다.
내 지갑과 똑같았다.


며칠 후, 나의 지갑이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확실히 진심이었고, 고등학생에게 헌책가방 대신 새로 책가방을 사줬다.
하지만 지갑은 침묵했다.

다음 날도, 다음 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도왔다.
계산 없이, 진심으로.
하지만 지갑은 계속해서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혹시… 이게, 너무 알려졌기 때문인가?’’

어느 날, 한 남자가 내게 접근했다.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었다.

“요즘 지갑 반응 없죠?”
“…누구시죠?”
“나도 있었어요. 그 지갑. 아마 당신 것도… 남이 쓰던 거일 겁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는 조용히 이어 말했다.

“착한 행동이란 건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그게 진심이어도, 복잡해져요.
왜냐면 착함은 소비되면, 진심을 먹어버리니까요.”

그 말은 나에게 도끼처럼 꽂혔다.

그 후로 나는 지갑을 가방 깊숙이 넣어 다녔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말하지 않았고,
기부할 때는 손편지도 남기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명기부자 찾는다”
“도움받은 사람 인증샷 이벤트”
“착한 기부자 위치 추적”


그것은 마치…
내가 신이라도 되는 듯한 소동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진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밤이 되면 한 가지 질문을 계속 되뇌었다.


“이제 진심은 어디에 숨을 수 있을까?”


지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듯이,
말없이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며칠 후, 나는 하나의 행동을 시도했다.
누군가가 보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나는 작은 도서관 뒤편,
휴지통을 뒤지던 소년에게 다가갔다.

말도 없이 따뜻한 도시락을 건넸고,
그가 돌아볼 때쯤엔 나는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그날 밤
지갑이 다시 울렸다.
아주, 조용하게.
그리고 안엔,
한 문장이 적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진심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보여주기 위한 순간, 그것은 역할이 된다.”


나는 그 쪽지를 손에 쥔 채,
지갑을 꼭 쥐었다.

다시, 그림자가 되기로 했다.

착함은,
보여줄수록 사라지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진심은,
누가 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온기였다.

지갑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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